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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솔 Nov 18. 2023

그 선생님은 자기를 존경하는 학생에게 왜 그랬을까

고등학교 때 내가 제일 좋아했던 과목이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윤리였다. 선생님이 서양 철학자들의 사상을 조곤조곤 디테일하게 설명하는 데 매번 빠져들었다. 서울대 출신에, 아는 게 엄청 많은 선생님이었다. 각진 얼굴에 안경을 낀 선생님은 왜소하고 마른 체격이었고 청렴한 인상을 풍겼다. 나는 그 선생님을 마음속으로 존경했다. 


그런데 그 존경이 깨진 사건이 있었다. 아직도 그때 그 일이 잘 이해가 가지를 않는다. 


어느 날 선생님이 필기 검사를 하겠다고 했었던가, 한 사람씩 교탁으로 노트를 가지고 나오라고 했다. 나는 노트에 필기를 하지 않고 종이 낱장에 필기한 뭉텅이를 들고 나갔던 것 같다. 나는 이렇게 열심히 필기를 한데 선생님이 감명을 받으리라는 기대감을 좀 품고 나갔다. 내가 그렇게 열심히 자기 수업을 듣는다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 


선생님이 내 필기 종이들을 쥔 손을 교탁 앞으로 내밀어 바닥으로 한 장 한 장 떨어뜨렸다. 종이들이 교탁 앞에서 흩날렸다. 충격적이었다. 기분이 상한 나는 바닥에 떨어진 종이들을 거칠게 주워서 자리로 돌아갔다. 그랬더니 선생님이 나더러 교실 뒤편에 서 있으라고 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수업 시간 내내 교실 뒤편에 서있었다.  


수업이 끝나는 종이 울렸다. 선생님이 교무실로 따라오라고 했다. 그때까지도 나는 내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교무실에 가서 선생님이 무슨 얘기를 할지 예측이 잘 안 됐다. 아니 내가 그렇게 열성적인 학생이었다는 것을 모르는가. 이 반에 나처럼 수업을 열심히 들은 아이가 있나. 


교무실 안에는 미닫이 문이 달린 작은 방이 있었는데 선생님은 그리로 나를 들어오라고 했다. 니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아냐고 했었던 것 같다. 내가 소파에 앉아 있는 선생님 옆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잘 모르겠다고 했었나. 선생님이 갑자기 소파 앞에 있던 탁자를 있는 힘껏 발로 찼고 탁자가 벽까지 밀렸다. 폭력적이었다. 나는 너무 놀라서 가슴이 벌렁벌렁 뛰었다. 너무 놀라 울었던 것 같다. 그 선생님이 원하는 말인 “죄송합니다”를 하고 그 방에서 겨우 나왔다. 


그 일이 있고 나서 그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은 깨끗이 사라졌다. 그동안 내가 품고 있었던 그 선생님에 대한 기대와 존경, ‘나도 저 선생님처럼 아는 게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 등 그 모든 것들이 사라졌다. 혼란스러웠다. 유일하게 존경하던 선생님이 없어져 버려 아쉽기도 했다. 그 선생님은 자기를 존경하는 학생에게 왜 그렇게 행동한 걸까? 


어쩌면 그 학생의 필기 종이를 흩날린 건 실수였다. 순간적으로 흩날려 보고 싶었을 수도 있고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 아이의 얼굴을 보고 자신에 대한 존경이 끝났음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 상실감. 자신을 존경하던 누군가가  그 존경을 철회했을 때 느낄 수 있는 상실감을 그는 느꼈다. 자신이 실수를 했음을 깨닫고 그는 자신에게 화가 나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 학생에게 존경심을 되돌리라고! 외치고 싶었을 수도 있다. 그렇게 외치지 못하는 대신 그는 탁자를 발로 찼다. 미성숙한 사람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똑똑한 사람이, 철학자들의 사상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던 사람이 그런 행동을 한 건지 정말 미스테리다. 아직도 이해가 잘 안가는 일로 남아 있는 내 과거의 한 조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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