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아이코닉 피자', 릭 오웬스
피자를 팔면서 콜라를 안 파는 피자집이 있다.
아니, 피자 팔면서 콜라 정도는 같이 팔아야 되지 않나?
남편에게 볼멘소리를 했다. 이 피자집은 콜라도 안 팔고 샐러드도 안 팔고 그냥 딱 피자만 판다. 맛도 치즈피자, 페퍼로니 피자 딱 두 가지다.
나는 피자를 그렇게 좋아하지도 그렇게 안 좋아하지도 않지만 남편은 피자를 무척 좋아한다. 그래도 오늘은 이 집 피자의 진한 토마토 소스와 치즈맛이 유독 풍미가 좋아서 평소보다 한 조각 더 먹었다. 남편이 피자맛에 감동한 듯 말했다.
난 이 피자집 사장님이 좋아. 고집 있고 주관이 뚜렷하고... 피자만 봐도 알아.
주변에서 콜라도 팔아라, 사이드로 샐러드도 좀 팔아봐라 했겠지.
다른 사람이 아무리 뭐라뭐라 해도 안 듣고 자기 스타일대로 하는 게 멋있어.
이 피자집은 미스터 피자, 도미노 피자 등 대중의 입맛에 두루 맞추기 위해 이것저것 내놓는 가게가 아니었다. 아메리칸 뉴욕 스타일이라고 해야하나? 이 집 이름이 ‘아이코닉 피자’인데 이름 그대로 아이코닉한 이 집만의 맛이 있다.
그러니까 나는 이 맛에만 집중한다. 최고의 ‘이 맛’을 낼 거다. 이 맛이 좋으면 먹고 아니면 말아라. 나는 최고의 이 맛을 낼 뿐이다...라고 말하는 듯 하다.
남편이 좋아하는 이 피자집 사장님이 궁금해져서 인스타 계정을 검색해 찾아가봤다. 대체 누구야? 그런데 얼굴은 없고 자기네 피자 사진, 영업 관련 안내 사항, 미국 여행하며 먹은 다른 집 피자 사진과 피자에 대한 평가, 여행지 풍경 사진(그마저도 피자랑 어울림) 정도만 있다. 피자 사진을 올릴 때의 독특한 점은 피자 앞면과 함께 뒷면 사진을 찍는다는 거였다. 잘 안보이는 피자 아랫면의 크리스피한 정도와 탄 정도를 보는 것 같다.
얼굴을 찾아 스크롤을 내리고 내렸는데 얼굴은 없는 대신 예전에는 치즈피자, 페퍼로니 피자 말고 다른 맛의 피자도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현재의 동그란 형태가 아닌 사각 형태의 피자도 만들었던 것 같다. 흠...그간 여러가지 맛의 피자를 만들었고 그 중 베스트는 치즈와 페퍼로니라고 결론지었나보다. 그리고 그 두 맛을 더 고도화하기로 한 거구나. 형태는 사각이 아닌 원형으로.
Rick Owens is Rick Owens.
(릭 오웬스는 릭 오웬스다.)
패션 디자이너 릭 오웬스가 한 말이다. 릭 오웬스는 ‘고딕 그런지’ 스타일의 다크하고 기괴한 분위기 옷을 만든다. 그는 ‘나는 이런 스타일의 옷을 만들 뿐, 내가 만든 옷이 마음에 안 들면 앞으로도 마음에 안 들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스타일을 고도화할 뿐. 릭 오웬스는 릭 오웬스니까.
점점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또렷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저녁이다. 내가 원하는 방식이 뭔지 알기 위해 피자집 사장님이 두 가지 맛에 집중하기 전 여러가지 맛의 피자를 만들었던 것처럼 일단은 그저 만들고 만들어 보려고 한다. 릭 오웬스도 이렇게 말했다.
만들고 만들고 또 만들고 더 많이 만들수록 네 개성이나 재능이 나타날 거야.
좋든 나쁘든 너의 정체성, 성격, 너의 비전 뭐든간에 네가 작업하고 작업해서 네가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을 충분히 만든다면 편집할 기회가 생길 거예요.
그것들을 편집하면 그게 ‘나 자신’이 되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