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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교진 Nov 13. 2021

절대쌍교 2020

인물의 개성과 스토리 전개가 백미인 무협소설에 유려한 연출



최근에 스트레스 조절용으로 즐겨본 것이 넷플릭스의 <절대쌍교 2020> 44부작이다. 정주행을 마쳤다.

작년에 김용 원작의 <의천도룡기 2019>를 보고 나서 <사조영웅전> <신조협려>를 한국에서 볼 수 있는 근래작 드라마로 김용의 사조삼부곡을 감상하고는 무협 원작의 힘을 알게 됐다. 무협소설을 결코 하등한 장르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특히 신필이라 불리는 김용의 글들은 예술의 경지에 오른, 대 서사 작품들이다. 마블의 어벤져스 이전에 김용의 3부작이 있다는 것을 유념해 볼 필요가 있다. 세계관과 등장인물이 시대상을 반영하며 하나의 일관된 메시지로 이어간다. 이런 무협소설의 대 작가에는 고룡이란 분도 있다.


절대쌍교는 고룡의 무협소설로 1966년에서 1969년까지 연재된 작품이다. 고룡은 대만의 무협소설 작가로 김용, 양무생과 함께 신파무협소설의 거장이다. 이들의 소설은 중국, 대만, 홍콩에서 영화, 드라마, 컴퓨터게임으로 각색되고, 매년 새로운 배우의 새 버전으로 탄생되고 있다.





<절대쌍교 2020>을 본 간단한 느낌을 남긴다.


0. 절대쌍교는 고룡의 작품 중에 대중적으로 특히 유명한 작품으로, 인물의 개성과 스토리 전개 등이 백미로 꼽힌다고 한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완결된 작품이다.


1. 강소어, 화무결 쌍둥이 형제는 출생 시점에 무림 고수의 연정에 대한 배신감과 이 작품의 중심축인 사악한 인물의 모함으로 각각 따로 길러지며, 서로를 죽여야 하는 운명에 처한다.


2. 화무결이 부유하고 냉정한 이화궁에서 무림 고수로 자라는 반면, 강소어는 악인들이 사는 계곡에서 온갖 잔머리로 생존해 내며 세상에 둘도 없는 똑똑이의 아이콘으로 자란다.


3. 둘이 18세가 되면서 원수가 되어 만나는데 결전을 치르기 전까지 수많은 이야기 플롯이 전개된다.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할 때마다 짧은 시간에 캐릭터에 바로 빠져들게 하고, 셰익스피어 고전에서 볼 수 있는 설정들도 이어진다. 로미오와 쥴리엣, 햄릿 같은 이야기를 절대쌍교에서 볼 수 있다니!


4. 김용 소설에서도 나오지만, 정파와 사파의 고수들이 등장해 대립한다. 대부분 정파는 자존심 강하고, 사파는 그들보다 무공이 한 수 위에 있다. 정파의 선민의식과 강호를 어지럽히는 무리로 일컫는 사파의 실력이 부딪칠 때 사파를 응원하게 된다. 무협 소설의 정파와 사파 갈등은 정통과 사이비의 대결구도가 아니라 어느 쪽이 강호의 선함과 백성을 더 생각하는지에 비중을 둔다. 즉, 자존심과 정통이 뭐가 그리 중요하냐는 질문을 깔고 간다.


5. 이란성쌍둥이 형제인 둘 중 훨씬 많은 이야기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강소어다. 그는 천한 악인들에게 지저분하게 길러지지만 낙천적이며 선한 캐릭터다. 무공은 화무결에 비해 낮아도 점점 무예도 족보 없는 짬뽕으로 익히며 강해지다가 이화궁의 무예도 익힌다. 갈등을 해결하는 것은 늘 강소어다. 그가 위기에서 보여주는 쾌활함 때문에 다른 무협 드라마에 비해 액션 분량이 적어도 재미를 안겨준다.


6. 강소어와 맺어지는 여자 주인공은 40화쯤에 등장할 만큼 많은 여자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다들 화무결과 싸워야 할 강소어를 걱정해 준다.


7. 화무결도 궁에서 길러지다 강소어를 찾아가는 길에 많은 사건 사고를 접하며 성장한다. 친구가 없던 그는 서로가 친형제인 줄 모르는 강소어를 죽이려 하다가 여러 이야기에 얽히면서 우정을 느낀다.


8. 권선징악이 분명해도 악인들에겐 다들 사연이 있다. 그래서 태생적으로 선과 악을 분명하게 구분 짓지 않고 인간의 다양한 측면을 보여주며 설득한다.


9. 44부작에 지루한 회차가 없다. 끊는 기술이 탁월하다. 그만큼 여러 버전으로 많이 재탕하며 우려낸 진한 국물 맛이 있다.


10. 한동안 무협 중드가 CG를 너무 피곤하게 많이 써서 무술 액션 장면이 유치하기 그지없다가 이제 CG 톤을 적절히 설정해 액션도 볼 만하다. 단, 하늘을 날아다니는 경공과 혈도를 막아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기술은 늘 개연성 부족한 억지로 보인다. 이걸 받아들이지 않으면 무협 드라마는 보기 힘들다.


11. 가장 많이 배운 것은 이야기 전개 능력이다. 원작 작가의 글 솜씨겠지만, 이런 엄청난 장르소설을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들다는 점이 안타깝다. 분명 우리에게도 홍길동, 일지매, 각시탈 등이 있는데 중국의 김용, 고룡의 작품에 필적할 만한 유명 장르물은 왜 떠오르지 않을까. 원작 하나로 수십 년에 걸쳐 원소스멀티유즈 할 작품이 중국과 일본에는 많다는 게...


12. 바쁜 일 마치고 여유가 생기면 다음 작품으로 또 무협 드라마를 쉽게 선택하진 못하겠다. 44부나 되는 중드 무협물의 매력에 빠져드는 것보다 적절한 분량의 현대물을 보고 싶다. <겨우, 서른>이나 <이지파 생활>이 딱 내 취향인데.


13. 김용과 고룡의 위대한 필력이 부럽다. 이런 이야기를 쓸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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