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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초 Sep 04. 2023

죽은 나의 아빠는 우울증이었을까





"이제 아빠 못 봐. 영원히 같이 안 살아. 괜찮아?"


열두 살이었던 것 같다. 네 살 터울인 여동생과 나는 캄캄한 여관방에서 엄마 옆에 누워 잠을 청하고 있었다. 우리 엄마가 폭력적인 남편을 피해 아이들과 도망치기로 결심한 날이었던 모양이다. 난 그때 '응.'이라고 대답했다. 진심이었다. 엄마는 내가 워낙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대충 대답하는 아이라고 생각해서 나의 '응.'이 얼마나 진심이었는지 몰랐던 것 같다. 다시는 아빠와 함께 살 일 없다는 말이 내게 얼마나 기쁜 소식이었는데. 1년인지 1년 반인지 그쯤 흐른 뒤에 우린 다시 아빠와 살게 됐다. 아빠가 달라졌다고 생각했던 건지, 아니면 아무리 그래도 애비 없는 자식들로 키우기는 싫었던 건지 엄마의 마음은 알 수 없다. 어느 날 학교에 가려고 현관문을 열었는데 문 밖에 아빠가 서있었다. 예전에 살던 동네를 완전히 떠나온 새 집이었는데 그곳에 찾아온 걸 보면 엄마가 주소를 알려줬을 것이다. 그런데 난 그때 아빠가 여길 어떻게 알고 왔을지, 여기엔 왜 왔을지 너무 혼란스러웠다. 오랜만에 만난 아빠에게 나는 나도 모르게'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다. 내 뒤에 서있는 엄마와 앞에 서있는 아빠 사이에서 나만 유일하게 웃지 않았다.


몇 달 지나지 않았을 때, 아빠가 까만 봉투에 쌓인 무언가를 장롱 속에 넣는 걸 봤다. 그날은 아빠의 기분이 몹시 나빠 보였다. 세 식구에서 다시 네 식구가 된 뒤로 화목했던 적은 없다. 예전처럼, 불편하고 아슬아슬했다. 엄마는 나가서 일을 했고, 아빠는 집에서 시간을 축내고 분위기를 가라앉히고 컴퓨터로 게임을 했다. 작은 탱크로 서로 대포 공격을 한 번씩 주고받는 게임이었다. 가끔 아빠가 웃는 날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무표정이었다. 식사 시간에 이야기꽃이 핀 적은 없다. 밥상을 뒤집어 엎은 적은 있어도. 다 함께 외출한 적 역시 없다. 예전보다 폭력적인 모습은 많은 줄어든 것 같았지만 결국엔 일이 터졌다. 사건이라고 해야 할까 사고라고 해야 할까. 아빠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내가 몇 주 전 목격한, 아빠가 장록 속에 넣어둔 까만 봉지에서 꺼낸 독극물로. 그게 정확히 뭐였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아빠 몰래 봉지를 열어 봤을 때 해골 모양이 그려져 있었던 것 같다. 한글로 독극물이라고 쓰여있는 건 아니었지만 사람이 먹으면 죽게 될 거라는 건 분명해 보이는 병이었다. 난 열세 살이었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현실로 느껴지지도 않고, 무섭고, 불안했다. 아빠가 그 병의 뚜껑을 연 날은 온 가족이 집에 있던 날이다. 저녁을 먹은 뒤 엄마는 거실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부엌 옆에 딸린 좁은 공간에서 빨래를 널고 있었고 나와 동생은 컴퓨터 한 대 앞에 나란히 서서 게임을 하고 있었다. 아빠가 조용히 욕지기를 하며 장롱에서 까만 비닐을 꺼내고 우리 바로 뒤 방바닥에 철푸덕 앉아 컵을 탁 소리 나게 놓는 것까지 전부 의식됐다. 하지만 돌아볼 수 없었다. 난 그 액체가 든 병에 대해서, 아빠가 마시려는 것에 대해 어떤 것도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때 아무것도 모르던 엄마는 나와 동생을 방 밖으로 불러냈다. "아빠가 또 기분 안 좋은 것 같으니까 옆집 언니네 가 있어." 이때까지만 해도 엄마는 아빠 손에 들린 그 병을 보지 못했다. 그저 오늘도 한바탕 할 남편으로부터 아이들을 피신시키는 게 중요했을 테니까. 나는 동생과 함께 옆집 언니네로 갔다. 그 언니는 혼자 사는 언니였다. 30분이 흘렀을까, 그보다 더 흘렀을지도 모르겠다. 엄마가 급하게 우리가 있는 옆집으로 와 집주인인 언니에게 다급히 뭔가를 설명했다. 난 그 내용을 알 것 같았다. 아빠가 그걸 정말 마셨구나. 어떻게 되는 거지. 그때 엄마는 우리에게 아무것도 말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짐작하기로, 구급차를 타고 아빠와 함께 응급실에 갔을 것이다. 구급차 사이렌 소리를 들었다. 다음날 아침 엄마는 사촌언니를 시켜 나와 동생을 병원으로 불렀다. 아빠는 그렇게 죽었다. 마흔셋이었나, 넷이었나.


그리고 5년인가 6년이 흐르고 나는 엄마에게 고백했다. 좁은 화장실에서 쪼그려 앉아 목욕 중이던 비누 거품 잔뜩 묻은 엄마에게. 아빠가 죽기 몇 주 전부터 그 독극물이 장롱 속에 있었다는 것과 그것을 꺼내 마실 준비하던 모든 상황을 나는 다 알고 있었다고. 엄마는 거품과 물이 묻은 채로 나를 안았다. 화장실 문턱을 사이에 두고 우스운 꼴이었지만 나는 한동안 괴롭기도 했기 때문에 흐느껴 울었다. 그리고 그 불안과 상처는 나만 가진 것이 아니었다. 나보다 네 살 어린 동생도 그 상황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엄마를 통해 알게 됐다. 내 동생은 아빠가 자살했을 당시 겨우 아홉 살이었다.


10년 뒤면 난 아빠의 나이가 된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죽은 나의 아빠는 우울증이었던 것 같다. 나처럼. 늘 신세 한탄을 하고 무기력하고 감정 조절을 하지 못했다. 말하지 않고 웃지 않고 혼자 중얼거렸다. 어쩌다 먼저 입을 열 때면 독 같은 말이 쏟아져 나왔다. 아빠는 나처럼 우울증이었다. 아빠의 죽음에 대해 글자를 나열하는 건 처음 있는 일이다. 한 번도 이 일을 내 입이나 손을 통해 뱉어내게 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지금 내가 이 글을 무슨 용기로 쓰는지 잘 모르겠다. 왜 쓰기 시작했는지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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