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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인희 May 29. 2015

도둑과 길 사이

고양이야, 네 고향은 어디니?

이번 글은 정말이지 잘 쓰고 싶었습니다.

사실 몇 번이나 썼다 지웠습니다. 무심하게도 밤은 빨리 찾아 오더군요. 빈 화면에 깜빡이는 커서와 저만 어둠 속에 덩그러니 남았습니다.

고양이가 대체 뭐길래 말이죠.

꽤나 한가하냐고, 그럴 시간에 어려운 사람 도우라는 질타가 벌써부터 들려오는 듯했습니다.


그럴수록 잘 쓰고 싶은 마음은 더 커졌습니다. 손볼 데 없이 짜임새 튼튼하고, 열렬히 공감할 수 있으며, 다 읽고 나면 어느 정도 전율이 느껴지는, 그런 종류의 글로 '길고양이'를 소개하겠다고 굳게 마음 먹었죠. 그 뒤로도 며칠 동안 고양이에 대해서 아무 것도 쓰지 못했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애초에 그렇게 쓸 수 없는 주제였다고 말이죠. 이럴 땐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직감이 스쳤습니다.


이 이야기는 길 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곳에서 고양이를 처음으로 만났습니다.

그때로 돌아가 봅니다. 한 녀석이 발자국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어디론가로 사라집니다.
저는 부러 발을 세게 굴러 녀석을 쫓습니다.
혹여나 할퀴거나 물까봐 뒤도 안 돌아 보고 집으로 뛰어들어갑니다.

이제야 미안한 마음에, 조심스레 불러 봅니다.
고양이야, 넌 어디에서 온 거니?

길을 가다가 고양이를 마주친 기억, 누구나 있을 겁니다. 갑자기 튀어 나와 놀라거나, 빤히 쳐다보는 눈빛이 무섭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대부분은 웅크리거나 부동자세로 멈춰 있습니다. 바닥에 붙어 있는 그림자 조차 잔뜩 긴장하고 있죠.

열악한 도심 환경에서 새끼를 지키려는 어미 고양이의 눈빛이 애처롭다 *출처: 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http://catstory.kr)
쓰레기봉투를 찢어 먹을 걸 찾습니다. 발정기가 되면 아기가 우는 것 같은 요상한 소리를 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그들에게 '도둑'이란 이름을 붙였습니다. 도둑고양이는 불길하고 더럽다며 발길질을 하고 돌을 던지기도 합니다. 차마 말로 할 수 없는 학대를 가하거나 독극물을 놓아 죽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도 살아야 합니다. 다시 쓰레기 봉투를 뜯습니다. 고약한 냄새가 진동하는 썩은 음식물 찌꺼기를 먹고, 그마저 부족해 비닐까지 삼킵니다. 척박한 도시 곳곳엔 온갖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길고양이의 평균 수명이 3~4년 밖에 되지 않는 이유입니다. (원래 고양이의 평균 수명은 15~20년입니다) 대부분은 굶주리다 병에 걸리거나, 예기치 않은 로드킬로 고단하고 쓸쓸한 생을 마감합니다. 도둑질은 한 번도 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요즘엔 ‘길고양이’라고 고쳐 부르는 사람들이 늘었습니다. ‘지역 고양이’라는 새로운 명칭도 생겨났습니다.


이는 야생고양이도, 집고양이도 아닌 존재로서, 가출이나 유기 등으로 낳은 새끼들을 말합니다. 영어로는 ‘Ally cats’ 혹은 ‘Community Cats’라 부릅니다. 영역 동물인 고양이는 먼 곳으로 이동하지 않는 습성이 있습니다. 누군가 키우던 고양이가 가출을 했거나, 유기되어 길을 떠도는 겁니다. 원래부터 도둑이었거나, 길을 떠돌던 고양이는 없었습니다. 이 지역에 살거나 살았던 누군가에 의해 길고양이가 생겨난 것이죠. 조금 귀여운 호칭도 있습니다. '길냥이'라고 하면 좀 더 친근한 느낌이 듭니다. 속사정은 매한가지이지만요.


길에서 살아간다는 건, 매 순간 죽지 않기 위해 애써야 하는 일들로 가득합니다. 숲과 냇물은 사라지고, 어느 날 갑자기 건물이 자리잡습니다. 이 땅 위에서 인간은 다른 생명과 공존하는 법을 잊은 지 오래입니다.

안락한 내 집이 있는 이곳은 원래는 작은 생명들이 조금씩 나눠 쓰던 땅이었습니다. 그들은 욕심 없이 필요한 만큼만 취하며 살았습니다. 인간은 욕심을 냈습니다. 동물들은 욕심 없이 그 땅을 내어주었습니다.

한 국가의 위대함과 도덕 수준은, 그 나라의 동물이 어떻게 대우받고 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 간디


다들 참 바쁩니다.


앞만 보고 가기도 버거운데, 왔던 길 뒤돌아 볼 여유는 찾기 힘듭니다. 건물과 건물 틈에서, 화단과 주차장 구석에서, 쓰레기통과 하수구 밑에서 누가 무얼 하며 살아가든 None of my business, 그야말로 내 알 바 아닙니다.


산을 깎아 만든 콘크리트 건물에서 여름엔 에어컨을, 겨울엔 난방을 돌리며 편히 지냅니다. 공장식 사육과 구제역, 광우병 파동 때의 끔찍한 실상을 목격하고도 어느 날엔 다시 치맥을 숭배하고, 삼겹살과 햄버거를 먹습니다. 일상은 소름끼치도록 평범하고 위선적입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고민이 여기까지 왔고, 더 이상은 진척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이용한, 2009)라는 책에서 이런 글귀를 발견했습니다. 

좀 더 이해해주고 좀 더 너그러이 바라봐 주는 일은
길고양이뿐만이 아니라 모든 약자에 대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배려

사람의 마음이란 게 참 신기합니다. 처음엔 작고 힘없는 동물이었는데, 어떤 계기로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보다 작고 연약한 모든 존재들과의 끈이 점점 더 견고해집니다. 어느 순간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땅에대한 공간 감각도 탁월해집니다. 사람 말고도 많은 생명이 함께 살아가는 곳이라는 걸 인지합니다. 감히 헤아릴 수 없는 삶들이, 시간을 함께 공유합니다.

길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고양이


도심 속 어린 고양이의 죽음 *출처: 뉴시스통신사 ⓒ`한국언론 뉴스허브`



전 세계 어딜 가도 길고양이는 있습니다그런데 해외에서 유심히 본 사람이라면 금방 눈치 채셨을 겁니다항상 숨어 다니며 사람을 피하는 우리나라 길고양이와 달리다른 나라의 길고양이에게선 느긋함이 느껴지죠심지어 만져도 신경 쓰지 않기도 합니다. 대낮에 인도 옆에서 세상 모르고 단잠에 빠져있는 고양이들의 모습을 처음 봤을 때의 느낌은 충격 그 자체였죠.


이런 차이는 고양이를 불운하게 여기는 우리나라의 풍토에 가장 큰 원인이 있습니다. 멸시와 천대가 일상입니다. 자연히 한국의 길고양이들은 사람을 두려움의 존재로 인식합니다. 발걸음 하나 떼는 일도 눈치를 보며 살아갑니다.

                                        여유로운 외국의 길고양이들 © Magnum Photos


작은 것부터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이제 길에서 고양이를 마주치면 너무 놀라지 마세요. 혹시 마주치면 천천히 눈을 깜빡여주세요. 위협하지 않겠다는 눈인사입니다. 눈을 감았다 뜨면서 녀석들의 건강과 행복을 빌어주면, 괜스레 기분이 좋아질 겁니다. 좀 오글거린다고요? 한번 해보면 알겁니다. 달뜬 기분이 꽤 오래갑니다. 그리고 가끔은, 흔적 없이 바스라져간 많은 생명들을 떠올려 주세요. 언젠가 당신 곁을 수없이 스쳐갔던, 그 작고 힘없는 발자국들을.

고양이야, 네 고향은 어디니?

길고양이에 관해서는 할 이야기가 참 많습니다. 오해와 편견이 많은 주제일수록 조심스럽게, 천천히, 오래도록 다뤄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술이 있기 전에 생명이 있고, 생명을 올곧은 태도로 관통해야 예술이 탄생한다는 믿음이 점점 강해지는 요즘입니다.


어둠 속에서 허리를 굽히고 구석진 곳에서 주위를 살피며 무언가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캣맘’, 혹은 ‘캣 대디’라고 합니다. 길고양이 돌보는 일을 자처한 사람들이죠. 주민들이 수상하게 여겨 신고하는 웃지 못 할 일도 일어납니다. 길고양이에게 먹이 제공은 물론, 개체 수 조절(TNR: 길고양이를 안전한 방법으로 포획해서 중성화 수술을 하고 방사하는 것)과 필요할 경우 구조 활동까지 합니다.

고양이는 절대로 사람을 먼저 공격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람을  무서워하죠.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면 쓰레기봉투를 뜯지 않아 거리도 깨끗해집니다. 중성화 수술을 받은 고양이에겐 발정기가 오지 않고, 더 이상 새끼를 낳지 않습니다. 안락사라는 비인도적인 방법을 피할 수 있는, 선진국형 개체수 조절 방식입니다.

■ <고양이 예술> Brunch 매거진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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