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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인희 Mar 21. 2024

너의 최초의 기억

치과에 다녀왔던 어느 날의 이야기

너의 최초의 기억은 무엇이 될까?

바다였으면 좋겠다.


작고 짧은 네가 무릎을 찧고 손에 무른 흙을 뭍히고 일어났던 저 들판이어도 좋겠다. 네가 이 섬을 영원히 기억할 수 있게 되리란 믿음이 생겨 좋다.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언제고, 언제까지고 너의 모서리가 되기로 한다.     

치과에 다녀왔다. 열흘 전부터 예약해두고 열흘 동안 생각 날 때마다 맘 졸이던 공간. 새하얗고 말끔한 인테리어가 있는 그곳에 들어가려면 신발을 벗고 실내용 슬리퍼로 갈아신어야 한다. 그때부터 피곤해지기 시작한다. 얼마나 오래 걸릴까, 얼마나 시달려야 할까. 어른도 힘든 치과 치료를 태어난 지 5년도 안 된 저 꼬맹이가 버틸 수 있을까. 머릿속이 웅웅 울리고 온몸에 식은땀이 날 텐데.     


언질해둔대로 머리 속에서 윙윙 소리가 나고 바람이랑 물이 벌레가 싸둔 똥을 치우려고 샤워기처럼 뿌린다고 골백번을 이야기 했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을 것임을 예감하고 있었다. 예감만으로도 힘이 빠지는 일이 부지기수인 육아 생활은 나를 비육아인보다 두세배는 빠른 속도로 늙게 하는 것 같다. 억울해 할 틈도 없이 아이는 분홍빛 침대에 눕혀졌고, 망사 고정대가 씌워졌고, 천장에는 옥토넛이 돌아갔고, 간호사는 나더러 아이 밑에 가서 손을 잡아주라 했다. 거기 진료대 아래에 똥 누는 자세로 주저 앉아 기도 하듯이 두 손 모아 아이의 오른 손을 붙잡고선 떨리는 목소리로 ‘어유, 잘하네, 어유 멋지다. 이거 다 끝나면 멋진 장난감 주신대.’ 하며 요상한 맞장구를 쳐댔다.


의외로 순순히 입을 벌리고 치료를 받은 지 5분 쯤 지났을까, 아이가 꿈틀대더니 갑자기 ‘아으~ 아으~’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엄마의 직감으론, 아, 이제 시작이구나. 드디어 포박을 하든지 아이의 비명과 절규를 들으며 고통스러워 해야 할 타이밍이 왔구나. 싶었다.      


‘왜 그래? 어디가 불편해?’

‘여기?’

‘아으니이-소-온’

‘아, 어머님 손 떼시래요.’     

아..네... 부여잡고 있던 내 두 손은 완급 조절에 실패. 생전 처음 해보는 치과 치료에 아이는 침착한데 나는 손에 땀을 뻘뻘 흘리며 벌벌 떨고 있던 것이었다.      


다 컸구나.          



며칠 전 어린이집 알림장엔 이런 내용이 있었다.


“1년 동안 ㅇㅇ을 보아 온 발레 선생님이 ㅇㅇ를 보시더니 예민하고 겁 많은 성격인 걸 딱 알아 보시더라고요.”          


엄마아빠 둘 다 예민하고 긴장을 많이 하는 기질이니 오죽하겠냐만은, 더블링만 되지 않았으면.      


아이는 유난히 예민했다. 문화센터도 한 달 넘게 울기 일쑤였고, 세 군데 어린이집에서 부적응으로 불명예(?)퇴소를 했다.



아이는 그날 치과에 온 아이들 통틀어 가장 얌전하고 조용하고 빠르게 치료를 끝냈다. 선생님이 아이에게 고맙다고 하셨다.


이렇게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치료 받는 아이는 정말 드물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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