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리 문학공원까지 이어진 묘연(猫緣)
원주에 다녀왔습니다.
특별한 일이 있는 건 아니었고요. 충주에서 1박을 하고 돌아오던 길에 원주 생각이 났습니다.
조금 우아하게 말하자면 '막연한 이끌림' 정도가 될 것 같고, 시원하게 내뱉자면 '걍'이었습니다. 그냥 거기 무언가 있을 것 같다는 느낌, 그런 것 때문에 원주에 갔습니다.
오랜만의 여행이었습니다. 충주에서는 한적한 남한강변에 있는 한옥에서 머물렀는데요. 밤에는 앞마당에서 조촐한 바비큐를 했습니다. 어느 정도 배가 불렀고 삼겹살이 딱 한 줄 남았을 때였습니다. 먹기 좋게 익히고 잘라 접시에 올렸습니다. 한 점 집어 후후 불어 입에 넣으려고 하는데,
냐아아~~옹
입에 넣으려던 고기를 바로 내려 놓았습니다. 고등어 무늬에 발은 하얀 고양이 한 마리가 어둠 속에서 우리 쪽으로 뛰어오는 것이었습니다. 어스름히 안개가 깔린 한옥 마당엔 저와 남편 둘 뿐이었는데, '냐아아~옹'이까지 셋이 되었습니다.
녀석은 사람들에게 먹을 걸 얻어먹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작게 입을 벌려 칭얼대듯 소리를 냈고, 눈을 깜빡이며 사람 다리에 제 몸을 비볐습니다. 그날 밤 마지막 삼겹살 한 줄은 수단 좋은 냐아아~옹이 차지가 됐죠. 자리를 다 정리할 때까지 나무 둥치 곁에 얌전히 앉아 있더군요. 짧은 묘연의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방문을 닫고 들어가야 했습니다. 냐아아~옹이는 한동안 앉아 있더니, 어느새 어둠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원주에 뭐가 있더라. 내비게이션에 어디를 찍어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곧장 떠오른 건 치악산이었습니다. 연이어 산 이름을 붙인 막걸리가 생각났습니다. 목이 타기 시작했죠. 그 막걸리를 파는 주조장에 가야겠다는 참신한 아이디어까지 냈는데, 안타깝게도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4년 전, 일 때문에 원주에 갔다가 알게 된 곳이었습니다.
희한하게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의 이름만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주조장을 찾아가던 길에 봤던 이정표가 떠오른 겁니다.
언젠가 『토지』를 다 읽고 저기에 한번 가봐야겠다,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완독엔 실패했습니다만 ^^;)
박경리 작가(1926~2008)는 통영 출신이지만, 1980년(55 세)부터 타계할 때까지 원주에 살며 집필 활동을했습니다. 박경리 문학공원은 작가가 살았던 옛집을 중심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원래는 토지개발지역에 묶여 철거될 위기에 처했으나, 문화계의 요청으로 막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곳에는 작가의 옛집과 함께 문학의집, 북카페 등의 시설이 들어서 있고, 소설 토지를 테마로 한 산책로가 있습니다.
작가의 숨결이 느껴지는 옛집 뜰을 밟았습니다. 개나리 덩굴과 철쭉이 군락을 이루며 울타리처럼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장독대와 텃밭도 그대로였습니다. 토지를 집필하며 보냈을 20년의 세월이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박경리 작가가 남긴 시 한구절을 소개하겠습니다. 그가 아침을 맞이하는 풍경을 엿볼 수 있습니다.
고추밭에 물 주고
배추밭에 물 주고
떨어진 살구 몇 알
치마폭에 주워담아
부엌으로 들어간다
닭 모이 주고 물 갈아주고
개밥 주고 물 부어주고
고양이들 밥 말아주고
연못에 까놓은 붕어 새끼
한참 들여다본다
<아침> 중에서
원주라기보다는 어느 도시의 변두리, 개나리 울타리에 둘러싸인 어느 공간이라 해야 할 것 같다. 거의 외부와 의 소통이 없는 생활이고 보면 내 거처 밖은 그냥 세상일 뿐 서울, 원주 하며 지역을 말하는 것도 무의미하다.
『생명의 아픔』중에서
작가는 개나리 울타리로 둘러싸인 집에 칩거하듯 살았다고 합니다. 사람 보다는 동물을 가까이 했고, 글을 쓰지 않을 땐 텃밭에서 머물렀습니다. 어쩐지 고양이와 닮은삶입니다. 박경리 작가의 고양이 사랑은 그가 남긴 여러 작품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 박경리 작가가 남긴 고양이 시와 이야기는 다음 브런치로 이어집니다.
충주에서 원주까지,
우연한 묘연(猫緣 - 고양이와의 인연)으로 가득했던 여행이었습니다.
■ <고양이 예술> Brunch 매거진에서는
다양한 예술 작품에 등장하는 고양이의 모습을 통해 그 특유의 매력을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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