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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인희 Jun 11. 2015

충주 고양이, 원주 고양이

박경리 문학공원까지 이어진 묘연(猫緣)

원주에 다녀왔습니다.


특별한 일이 있는 건 아니었고요. 충주에서 1박을 하고 돌아오던 길에 원주 생각이 났습니다. 

조금 우아하게 말하자면 '막연한 이끌림' 정도가 될 것 같고, 시원하게 내뱉자면 '걍'이었습니다. 그냥 거기 무언가 있을 것 같다는 느낌, 그런 것 때문에 원주에 갔습니다.


오랜만의 여행이었습니다. 충주에서는 한적한 남한강변에 있는 한옥에서 머물렀는데요. 밤에는 앞마당에서 조촐한 바비큐를 했습니다. 어느 정도 배가 불렀고 삼겹살이 딱 한 줄 남았을 때였습니다. 먹기 좋게 익히고 잘라 접시에 올렸습니다. 한 점 집어 후후 불어 입에 넣으려고 하는데,

냐아아~~옹

입에 넣으려던 고기를 바로 내려 놓았습니다. 고등어 무늬에 발은 하얀 고양이 한 마리가 어둠 속에서 우리 쪽으로 뛰어오는 것이었습니다. 어스름히 안개가 깔린 한옥 마당엔 저와 남편 둘 뿐이었는데, '냐아아~옹'이까지 셋이 되었습니다.


녀석은 사람들에게 먹을 걸 얻어먹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작게 입을 벌려 칭얼대듯 소리를 냈고, 눈을 깜빡이며 사람 다리에 제 몸을 비볐습니다. 그날 밤 마지막 삼겹살 한 줄은 수단 좋은 냐아아~옹이 차지가 됐죠. 자리를 다 정리할 때까지 나무 둥치 곁에 얌전히 앉아 있더군요. 짧은 묘연의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방문을 닫고 들어가야 했습니다. 냐아아~옹이는 한동안 앉아 있더니, 어느새 어둠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다음날 아침, 문득 원주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한강변에서 만났던 '냐아아~옹이'


원주에 뭐가 있더라. 내비게이션에 어디를 찍어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곧장 떠오른 건 치악산이었습니다. 연이어 산 이름을 붙인 막걸리가 생각났습니다. 목이 타기 시작했죠. 그 막걸리를 파는 주조장에 가야겠다는 참신한 아이디어까지 냈는데, 안타깝게도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4년 전, 일 때문에 원주에 갔다가 알게 된 곳이었습니다. 


희한하게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의 이름만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주조장을 찾아가던 길에 봤던 이정표가 떠오른 겁니다.


'박경리 문학공원'


언젠가 『토지』를 다 읽고 저기에 한번 가봐야겠다,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완독엔 실패했습니다만 ^^;)


동물과 자연을 사랑한 박경리 작가

박경리 작가(1926~2008)는 통영 출신이지만, 1980년(55 세)부터 타계할 때까지 원주에 살며 집필 활동을했습니다. 박경리 문학공원은 작가가 살았던 옛집을 중심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원래는 토지개발지역에 묶여 철거될 위기에 처했으나, 문화계의 요청으로 막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곳에는 작가의 옛집과 함께 문학의집, 북카페 등의 시설이 들어서 있고, 소설 토지를 테마로 한 산책로가 있습니다.


작가의 숨결이 느껴지는 옛집 뜰을 밟았습니다. 개나리 덩굴과 철쭉이 군락을 이루며 울타리처럼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장독대와 텃밭도 그대로였습니다. 토지를 집필하며 보냈을 20년의 세월이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박경리 작가가 남긴 시 한구절을 소개하겠습니다. 그가 아침을 맞이하는 풍경을 엿볼 수 습니다.

고추밭에 물 주고
배추밭에 물 주고
떨어진 살구 몇 알
치마폭에 주워담아
부엌으로 들어간다

닭 모이 주고 물 갈아주고
개밥 주고 물 부어주고
고양이들 밥 말아주고
연못에 까놓은 붕어 새끼
한참 들여다본다

<아침> 중에서

그는 생전에 고양이를 무척이나 아꼈다고 합니다. 이 집을 찾는 고양이가 18 마리인 적도 있다고 하네요. 마당에는 작가와 함께 고양이 동상이 있습니다. 생전에 작가가 걸터 앉기를 즐겼던 곳이라고 합니다. 옆에 있는 고양이는 꼬리를 말고 편안히 앉아있는 모습입니다.

박경리 작가의 옛집 앞마당의 작가와 고양이 동상
원주라기보다는 어느 도시의 변두리, 개나리 울타리에 둘러싸인 어느 공간이라 해야 할 것 같다. 거의 외부와 의 소통이 없는 생활이고 보면 내 거처 밖은 그냥 세상일 뿐 서울, 원주 하며 지역을 말하는 것도 무의미하다.

『생명의 아픔』중에서

작가는 개나리 울타리로 둘러싸인 집에 칩거하듯 살았다고 합니다. 사람 보다는 동물을 가까이 했고, 글을 쓰지 않을 땐 텃밭에서 머물렀습니다. 어쩐지 고양이와 닮은삶입니다. 박경리 작가의 고양이 사랑은 그가 남긴 여러 작품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 박경리 작가가 남긴 고양이 시와 이야기는 다음 브런치로 이어집니다.


충주에서 원주까지,

우연한 묘연(猫緣 - 고양이와의 인연)으로 가득했던 여행이었습니다.



박경리 문학공원 홈페이지


■ <고양이 예술> Brunch 매거진에서는

     다양한 예술 작품에 등장하는 고양이의 모습을 통해 그 특유의 매력을 살펴봅니다.


■ <홀연히 오롯이 고양이> Brunch 매거진 바로가기

     https://brunch.co.kr/magazine/catwri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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