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인희 Jul 02. 2015

『토지』의 작가 박경리가 남긴 고양이 이야기

한 송이 두 송이 봄철 꽃 세듯이, 한 녀석 두 녀석  쓰다듬기

박경리문학의집은 육면체 건물이었습니다. 관람은 3층에서 시작해 1층에서 끝났습니다. 사방은 벽과 암막 커튼으로 둘러싸여있었고, 천장과 바닥이 견고했습니다. 가운데 층은 전체가 대하소설 『토지(土地)』에 관한 자료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26년 간 쓰이고 읽힌 이야기가 한눈에 밀려들었습니다. 그 공간만의 조도와 습도에 어우러진 특유의 기운(氣運)이 느껴졌습니다. 근대로 가는 통로 어디즈음인 것 같았습니다. 수없이 쓰고 지 문     .



작가 연보는 벽면 한쪽을 넓게 습니다. 헤아려보니 50년 정도 . 박경리 작가는 『토지』외에도 엄청난 양의 작품을 썼습니다.    을 거라 짐작합니다. 문학의집과 그가 던 집을 거닐다가, 생활인 박경리의 삶을 습니다. 종종 뜰에 나와 텃밭을 일구고 새소리 들으며 세월을 뒤돌아봤겠지요.   . 책 속에 담는 이야기가 커질 수록,    들은 토해내는 고통을 겪었을 테지요.


홀로 문장을 써내려가던 시간이 모여 한 세월이 되었습니다.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에서 그 시절 작가의 생활을 조심스레 엿볼 수 있었습니다.

빗자루병에 걸린 대추나무 수십 그루가
어느 날 일시에 죽어 자빠진 그 집
십오 년을 살았다

빈 창고같이 휭덩그레한 큰 집에
밤이오면 소쩍새와 쑥꾹새가 울었고
연못의 맹꽁이는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던
이른 봄
그 집에서 나는 혼자 살았다

다행히 뜰은 넓어서
배추 심고 고추 심고 상추 심고 파 심고
고양이들과 함께
정붙이고 살았다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나를 지켜주는 것은
오로지 적막뿐이었다
(중략)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옛날의  그 집> 중에서

박경리 작가가 남긴 작품 목록엔  '고양이'가 들어간 제목이 꽤 많이 보였습니다. 마당으로, 부엌으로 오가던 녀석들이 발자국을 남긴 것이죠. 작가는 그 흔적을 오롯이 담아 시와 소설로 만들어냈습니다.

고양이와 작가는 서로에게 곁을 내어주며 온기를 나누는 사이였습니다.

"겨울이면 뒷부엌에 연탄 피워주고 국 끓여 밥 말아주"었고요.

나른한 오후엔 함께 "달콤한 잠"을 청했고

"발자욱 소리, 파도소리" 쓸려오듯이 "눈에 어리"는 옛일을 두런두런 들려주기도 했습니다.

"어느새 웃음"을 짓게 하는 것 역시 고양이들이었습니다.

* "인용" 작품(시): 「들고양이들」, 「도시의 고양이들」, 「살구라는 이름의 고양이」, 「아침」, 「홍합」


박경리 작가는 일찍이 남편과 아들을 떠나보냈다고 합니다. 홀로 글을 쓰며 가정을 이끈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단편 소설 「영주와 고양이」 . 가족의 정을 단단하게 해주는 매개체로 고양이가 등장합니다. 전쟁 후의 어려움을 딛고 일어서는 한 가족의 이야기인데요.   가족처럼 생각하는 반려 의식도 담겨 있습니다. 어린이 동화 『돌아온 고양이』로도 각색되어 지금까지 읽히고 . 1997년 한 인터뷰에서 작가는 고양이에 대해 언급 .  "걔들은 밥그릇을 놓고 싸우는 적이 없다"며 인간의 탐욕 했지요.


'노동'과 '글쓰기'와 '나'는 삼발이 같은 것이었다. 글을 쓰다 막히면 밖에 나가 풀을 뽑고 그러다 보면 생각이 떠오르고 막혔던 것이 뚫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연의 이치, 사람 살아가는 이치를 조금씩 깨닫게 되었으며
......
자연의 공평함과 오묘함, 실로 돈으로는환산될 수 없는 내 세계,
나와 더부살았던 많은 생명들의 세계,
이미 그것은 내 소유에서 떠나버렸다.

『생명의 아픔』중에서

작가는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삶과 문학을 추구했습니다. 2003년엔 문학과 환경문제를 다루는 계간지『숨소리』를 창간했고, 기고했던 글을 모아 환경 에세이집 『생명의 아픔』을 출간했습니다. 이 책에는 자연과 생명을 향한 작가의 단단한 시선이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집니다.

나비가 춤을 추고 꽃과 노닌다는 것도 그래요. 춤을 추는 것도 노니는 것도 아닌,
살기 위한 노동이라는 인식이전혀 없는 거지요. 자연을 무심한 존재로 보았듯이
대부분의 사람들 역시 자연을 무심히 보았던 것입니다.
생명의 본질, 삶의 진실을 인간이라는 연대 속에서 추구했고
그밖의 것은 필요성을 느꼈을 때만 원용했다 할까요.

박경리 작가가 세상을 떠난 지 어느덧 일곱해가 지났습니다. 요즘은 가족의 구성원이 된 반려동물의 사랑스러운 모습이 많이 보입니다. 허나 그만큼 버려지거나 학대받는 동물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갈곳 없는 도시의 고양이들이 살고 있는 지하실 문을 막아서 생매장에 가까운 일을 벌이기도 하고, 시끄럽다는 이유로 쥐약을 놓아 죽이기도 합니다. 그런 일을 마주할 때마다 끝간데 없이 슬퍼집니다. 공존할 수 있는 대안이 분명 있는데 말이죠.

어떤 시인이 와서 말했다

그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
밤이면 푸른 가등 아래
수없이 많은 고양이들
모여들어 노니는데
보기에 좋더라고

쥐약을 놔서
그 수많은 고양이들이
절반 가량
학살을 당했다고도 했다
푸른 가등아래
노니는 고양이들이 보인다
섬광같이
생명의 아름다움이 보인다

버림받은 고양이
집 잃은 고양이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고양이
저이들끼리 모여
살얼음같이 살았을 터인데

목숨의 슬픔이여
정처 없음의 슬픔이여

<도시의 고양이들> 전문

우연히 찾은 원주의  문학공원에서 어여쁜 고양이들 발자국을 잔득 품어왔습니다. 작가가 붙여주었을 녀석들의 이름이 궁금해지네요. 그 이름 하나하나 불러다 봄날 꽃 바라보듯이 천천히 되뇌어 보고 싶습니다. 노란 꽃 한 송이 빨간 꽃 두 송이 세다가, 한 녀석 두 녀석 쓰다듬고 말이죠.


* 지난 이야기 읽기

   - 원주 박경리 문학공원까지 이어진 묘연(猫緣):   https://brunch.co.kr/@songsoon/6


■ <고양이 예술> Brunch 매거진에서는

     다양한 예술 작품에 등장하는 고양이의 모습을 통해 그 특유의 매력을 살펴봅니다.


■ <홀연히 오롯이 고양이> Brunch 매거진 바로가기

     https://brunch.co.kr/magazine/catwriting


매거진의 이전글 #2 시인은 분명 고양이를 알고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