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큰 기회라고 항상 주장하는 미국의 투자자 짐 로저스 회장이 한국을 찾았다. 그는 하노이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에도 여전히 북한은 기회라고 말했다. 그리고 북한이 개방될 것에 대비하여 대한항공 주식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로저스 회장은 6일 한 미디어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개방되어 남북한 간에 경제협력이 시작되면 더 많은 사람들이 한국을 여행하고 한국을 출입국하며 거쳐가는 이들이 많아질 겁니다. 그것은 항공업에 굉장히 좋은 일이죠”라고 말했다. 그의 말을 해석하면 한국을 여행하기 위하여 대한항공을 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이는 대한항공의 수익증대로 이어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북한이 개방되어 한국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대한항공만 좋아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대한항공보다 항공료가 싼 외국 항공사를 이용하는 사람들도 많을 수도 있다. 뿐만아니라 서울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호텔의 수익도 늘어나고 주택이나 오피스의 임대나 구입도 늘어나게 될 것이다. 북한에 진출할 다른 업종들의 주가도 올라갈지 모른다. ‘투자의 귀재’라는 짐 로저스가 아니더라도 이 정도는 누구나 다 꿈꾸는 상황이 아닐까 한다.
우리나라 언론에서 짐 로저스를 소개할 때 ‘투자의 귀재’’, 혹은 “전설적 투자자’라는 수식어가 붙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퀀텀펀드의 성공 때문이 아닐까 한다.
짐 로저스는 조지 소로스와 함께 퀀텀펀드를 공동 설립하였다. 퀀텀펀드는 1970년부터 1980년까지 무려 4,200%의 수익률을 기록하였다. 같은 기간 동안 미국 S&P지수는 47% 상승하였다. 얼른 봐도 미국 주식투자에 비해 1백 배 가까운 고수익을 거두었다. “투자의 귀재”이자 “전설적인 투자”가 아닐 수 없었다.
퀀텀펀드는 초창기부터 국제적인 헤지펀드였다. 벌만큼 번 때문인지 로저스는 1980년 곧바로 퀀텀펀드를 떠나 여러차례 세계여행을 하며 유유자적한 은퇴생활을 즐겼다. 그러다 강연이나 저술에 집중하고 있다. 퀀텀펀드는 1990년대에 들어서도 영국 파운드화와 동남아시아의 통화의 하락에 베팅하여 수십억달러를 챙겼다. 덕분에 해당국가들이 엄청난 고통을 치룬 것은 말할 것도 없다. 1997년 한국에 닦친 외환위기사태, 이른바 'IMF사태'의 한 원인제공자이기도 하다.
그는 1980년대 이후 미국의 주식에 대해서는 일관되게 비관적인 전망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까지도 입만 열면 미국의 주식시장이 최악의 폭락장세를 연출할 것이라고 거듭 전망하고 있다. 짐 로저스가 집중하는 지역은 아시아, 특히 중국이며 투자분야는 주로 원자재이다.
짐 로저스는 싱가포르에서 두 딸들과 함께 살고 있다. 21세기는 아시아에 기회가 있다는 생각 때문에 일찍부터 두 딸에게도 중국 광동어를 배우도록 하였다. 거주지를 중국 상하이나 홍콩 아닌 싱가포르로 정한 이유는 “환경오염을 피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하기도 하였다.
그는 지난 해 샌프란시스코에서 행한 ‘나는 세계를 어떻게 보고,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가?’라는 강연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그는 21세기는 아시아의 시대, 특히 중국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본이나 인도의 장래에 대해서는 비관적이다. 미국의 주식시장에 대해서는 역사상 가장 낮은 이자율이 정상수준으로 올라가면 최악의 약세장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짐 로저스의 주요 투자분야는 원자재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자신의 이름을 딴 로저스 원자재 인덱스도 만들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농업과 농지에 투자하라고 권고한다. 그는 농업지역의 토지를 구매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강조한다. 그 이유는 물론 토지를 농업에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설령 농토가 아니더라도 농민들을 위한 상점이니 주택건설에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로저스는 미래에는 농민들이 부자가 될 것이므로 농업과 관련된 어떤 형태의 토지 소유도 훌륭한 투자가 된다고 강조했다.
2012년 포브스와의 인터뷰에서 짐 로저스는 “미국에서 어떤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 부자가 되는지 거대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증권중개인은 택시운전기사가 되고, 영리한 사람들은 트랙터운전을 배워서 멋진 농부가 될 것”이라며 “농부들이 람보르기니를 몰게 된다”고 주장했다.
한국적인 상황으로 표현하자면 주식을 멀리하고 부동산, 특히 농지에 투자하라는 이야기로 해석될 수도 있다.
앞에서도 지적했지만 짐 로저스가 “투자의 귀재”, “전설적 투자자”라는 평을 듣는 이유는 조지 소로스와 함께 한 퀀텀펀드의 성공 덕분이다. 퀀텀펀드는 투기로 원성을 사기도 하였다. 이러한 세상 사람들의 비난을 의식한 때문인지 조지 소로스는 투기로 번 돈의 일부를 개방사회를 명분으로 하는 여러가지 활동에 기부하고 있다. 최근에는 발전하는 정보통신기술을 국민통제에 활용하는 중국정부를 맹비난하였다.
짐 로저스는 주식을 멀리하고 식량과 광물 등 원자재와 농업용 토지에 투자하라고 권고한다.
지난해 짐 로저스는 사람들에게 짐바브웨에 투자하라고 권고했다. 미국의 주식시장은 “생애 최악”의 상황을 연출할 것이므로 미국 주식 대신 짐바브웨에 투자하라는 이야기였다. 그는 “짐바브웨는 지난 40년 동안 미치광이 독재자 때문에 폐허가 되었다. 새로운 인물이 나타났다. 그도 나쁠 수 있지만 더 좋아질 수도 있다. 그는 확실히 다르다. 짐바브웨를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짐 로저스가 농업이나 농지, 짐바브웨나 북한 같은 곳에 투자하라는 이야기를 곰곰 생각해보면 당장 수익률을 올리기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구와 가난한 인류를 위한 투자를 권고하는 것 아닌가 한다. 어딘가 따듯한 마음씨가 느껴지기도 한다. 퀀텀펀드 시절 악덕 투기로 떼돈을 번 전력을 의식한 '착한 투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본다면 미국 주식을 버리고 짐바브웨에 투자하는 일은 고수익을 노린 고위험의 투기행위이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증권전문가들이 이런 충고를 했다가는 정신나간 사람이라는 평가를 들기 십상이다.
짐 로저스는 8일에도 한 미디어와 인터뷰에서 남북통일에 대비하여 한국투자를 늘릴 작정이라며 일본자산을 모두 정리했다고 말했다. 우리가 듣기는 좋은 말이다. 물론 통일이라는 대박이 터지면 이익은 높을 수 있다. 하지만 한국 시장은 신흥국시장이므로 리스크가 높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짐 로저스의 투자는 고위험 고수익을 추구하는 투기라고도 볼 수 있겠다.
짐 로저스가 북한에 기회가 있다며 대한항공 주식을 가지고 있다고 한 다음날인 7일, 그리고 8일에도 대한항공과 그가 비상임이사로 있는 아난티의 주가는 하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