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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틴 Jan 14. 2021

2020년

공채를 모조리 탈락하며 쓴 글

공채가 끝났다. 올해는 삼재였다. 1년 안 되는 시간을 오로지 방송사 공채에 썼다. 올해 유난히 높아진 커트라인 때문인지, MBC를 제외한 나머지 공채에서 서류부터 탈락했다. 그리고 스터디원들과 함께 전부 한 방송사 공채 서류전형에서 떨어졌다. 이를 마지막으로, 잠시 공부를 쉬기로 했다. 이왕 쉬기로 한 김에, 시험용 글이 아니라 쓰고 싶은 글을 쓴다.


지난겨울이었다. 다니던 회사를 퇴사했다. 광고가 나와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월 120만 원을 받았다. 일을 할수록 내 일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들었다. 내 일이 최저시급보다 적은 돈을 받아도 좋은 가치가 있는지 궁금했다. 재미가 없으니 잘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게 3개월을 버텼다. 광고회사를 다녀도 팔리는 콘텐츠를 만드는 법은 알 수 없었다.


막상 회사를 나오니 뭐로 먹고살지 고민이 되었다. 오랫동안 해오던 영상이 재미가 없어졌다. 그렇게 사랑하던 영상을 어느 순간 즐길 수 없었다. 글자 그대로의 일이 돼버린 지 오래였다. 이것저것 기웃거리던 차에 언론사 입사 강의를 듣게 됐다. 강사는 한 방송사의 부장급 PD님이셨다. 눈빛이 여전히 살아계셨다. 자신이 하는 일에 매몰되지 않은 사람이었다. 나도 나이가 들어도 지치지 않고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다. 나는 여전히 PD의 일을 좋아하고 있었다. PD를 하고 싶은 충동은 아직 내 안에 있었다.


생각해보니 충동이 내 삶을 바꿨다. 중요한 순간 인생의 방향을 틀어버렸다. 척수를 타고 오르는 충동이 영상을 시작하게 하고, 특성화고를 선택하게 만들었고, 유학을 보냈다. 그곳에서 학교 대표로 공모전도 나갔다. 나와 다른 사람들과 섞이고 부딪혔다. 거기서 만든 자신감은 어려운 수업들을 통과하게 해 주었다. 그렇게 만난 사람들과 나는 나만의 삶의 궤적을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때론 그 궤적은 서로 얽혀 다른 기회로 돌아왔다.


삶은 우연의 연속이다. 나는 내 삶이 계획대로 되지 않을 것을 안다. 그러나 그것을 온전히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방법은 그 충동의 순간마다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다. 오직 준비된 사람만이 우연이 닥쳐와도 견딜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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