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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도의 습작 Jul 28. 2024

망원, 카메라 렌즈 또는 서울의 동네

하루 한 단어

망원. 대학 동기로 만난 박과 정을 만났다. 경기도 평택과 세종시에 사는 두 사람은 서울의 망원에 왔다. 이 저녁 약속 이전에 서울 합정역의 스타벅스에서 뮤직비디오 프리-프로덕션 회의에 갔다. 망원과 합정은 도보로 10분 거리라 어쩌면 그 둘은 나의 편의에 맞춰 약속장소를 정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후 두 시에 합정에서 만나 세시에 회의를 마치고, 조연출인 이와 맥주 한 잔 하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합정역의 메세나 안을 위아래로 오르락내리락하다가 들어간 맥주집은 신분증 검사를 했고, 이는 지갑을 집에 두고와 시무룩해졌다. 그렇게 각자의 행선지로 흩어졌다.


다섯 시에 망원에서 일정, 박은 약속시간이 다가오기 전부터 어떤 메뉴의 저녁 식사가 좋은지, 언제쯤 도착하는지를 물어왔다. 경기도에서 서울의 망원까지 오기 위해 버스표를 예매해야 하는 정성, 그리고 버스 안에서의 시간, 다시 돌아갈 길을 계산하기 위한 할애. 계획 세우는 일에 흥미를 느끼지 않는 박에겐 보고 싶은 얼굴을 보기 위해 서울로 향하는 다짐이자 의지가 필요하다.


이와 즉흥 맥주 한 잔 자리가 어그러진 나는 다섯 시가 되기 전에 망원으로 곧장 향했다. 망원은 여기저기 아기자기한 볼거리가 많은 곳이니까. 박에게 망원으로 가는 길이라고 카카오톡 메시지를 남기고 망원역을 향해 걸었다. 서울 한복판의 여름, 큰 사 차선 도로 가변의 보도. 보도의 상점들. 상점들은 문을 열고 들어가면 짜릿한 시원함을 갖고 있을 터이다.


에어컨이 들어있는 실내와 실외기가 나와있는 실외. 살다가 실외기의 이름을 알게 된 때, 실외기에게 연민을 느꼈다. 즉물적인 이름이다. 바깥에 나와 있으니 실외기. 인간의 영역본능을 잘 보여주는 이름 아닐까. 실외기가 내뿜는 열기가 이 기후에 한몫했을 거라 생각하니, 괜히 청소를 미뤄둔 내 방의 에어컨이 떠올랐다. 존재하지만 기능하지 않는 나의 에어컨. 에어컨디셔너. 리모컨, 리모트컨트롤러.


그러니까, 에어컨디셔너, 공기를 조화롭게 만드는 기계, 영역 안의 공기를 조화롭게 만드는 기계를 가동하며 그 배설물을 내뱉는 부품의 이름은 실외기로 명한 것이다. 실외기가 달린 건물을 지나쳐 걸으며 땀을 흘렸다. 답장이 오지 않아 망원역 근처의 책방에 들렀다. 어떤 분류로 책을 나눴는지보다 표지가 눈에 띄는 책을 집어 들고 아무 페이지나 펼쳤다.


이병률은 오랜만이네. 도둑맞은 집중력은 여기에도 있구나. 1층에서 책을 판매하고 2층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서울 한복판의 가게는 수익구조가 괜찮을까. 날뛰는 생각들을 그대로 두고 손은 이 책 저 책을 펼쳤다 두었다 했다. 책 앞날개의 저자 소개부터 보게 된 건 언제부터더라. 의식을 하자 다음 책부터는 앞날개를 의식적으로 보지 않았다. 펼친다. 왼쪽 위부터 읽어내린다. 펼친다. 오른쪽 중간부터 읽어내린다. 아, 글을 아무렇게나 읽으려고 해도 행을 올라가며 읽지는 않는구나.


시집을 한 권 샀다. 한창 제주에 있을 무렵 좋아하던 시인의 올해 신간이다.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

시집 한 권을 사기까지 꽤 깊은 고민을 했다. 산다. 한 권의 시집 정가. 안산다. 기억해두고 말아야 할 글. 산다. 오늘 밤의 다독임. 안산다. 정말 아쉽다면 인터넷으로 주문한다. 산다. 나답다. 안 산다. 걔답다. 산다. 숨 쉰다. 안 산다. 외면한다. 산다. 시간을. 안 산다. 시간을. 산다. 내 한 챕터를. 안 산다. 효율과 합리를.


박과 정을 만나러 둘이 있다는 카페로 향했다. 망원으로. 멀리서 온 이들에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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