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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라파독 Aug 09. 2023

#1 장마철 옥상에 랜드서프보드 방치!

녹슨 마음을 돌보는 시간

7월 중순, 하늘은 시도 때도 없이 비를 쏟아부었다. 옥상으로 통하는 문의 열쇠를 유일하게 가진 나. 복학 전, 여유가 있을 땐 옥상에서 가끔 보드를 탔다. 3월 초 개강을 하고부터는 여유라고는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시간을 보냈다. 이르게 벚꽃이 피었다 지고, 개나리도 한껏 명랑하게 피었다 졌다. 점점 연두에서 초록이 펼쳐졌지만 이 속도감이 예 같지 않게 빠르다. 나이를 먹어 그런가 싶었지만 정량적으로 비교해 보아도 빠르다.


지구온난화의 시대는 진작 지나고 지구열대화 시대가 도래했다. 지구는 날이 갈수록 뜨거워지고, 그 영향으로 동태평양의 수온이 평년보다 높아지는 엘니뇨가 발생하여 태풍도 잦아졌다고 한다. 이제 장마보다 하늘에 강이 흐른다는 '대기의 강'이란 단어가 더 익숙해질 것이다. 집중적이고 거센 호우, 통 그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그렇게 퍼붓던 집중 호우 끝에 드디어 푸른 하늘과 군데군데 흰 구름이 펼쳐졌고, 나도 옥상으로 나갔다. 랜드서프보드가 초라하게 구석에서 녹슬어 있었다. 보드를 보니 괜한 죄책감과 연민이 생겼다. 보드에 녹이 슨 것처럼 내 마음에도 녹이 슬었구나. 세상의 아름다운 부분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어 매일 카메라를 들고 다니던 과거의 내가 낯설었다. 바다를 다니며 물에 빠지는 것을 마다하지 않던 나도, 그래서 서핑을 시작하고, 서핑을 잘하고 싶어 랜드서핑을 배운 것도, 모두 지금의 나와 분리된 삶처럼 느껴졌다.


다시 생명력을 되찾을 수 있을까? 전두엽이 완전히 죽어버린 것은 아닐까. 생각을 하고 언어로 표현해 내는 과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온몸에서 근육이 쪽 빠져버린 듯이 일상적인 행동을 하는 것도 힘겨웠다. 비가 오는 열흘이 넘는 시간 동안 뭉그러니 집 안에서만 누워있어서 실제로 근육이 많이 손실됐을 터이다.


몸은 참 정직하다. 정신과 몸은 유리될 수 없다. 몸이 제 기능을 못하니 정신도 마찬가지로 구실을 못하고 있었다. 무엇이 먼저 고장 났는지는 중요하지 않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몸을 움직이는 일이었다. 나는 한번 달리기로 내 몸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코로나 시기에 먼저 떠난 친구들을 애도하며 달리기를 시작했었다. 러닝은 아무런 도구를 필요로 하지 않았고, 결과가 즉각적으로 수치화되어 보이기 때문에 하루하루 건강이 나아지는 것이 보였다. 케케묵은 달리기를 다시 꺼냈다. 역시 몸은 참 정직하다.

한창 뛸 때는 5km는 거뜬하게 30분 동안 뛰었는데 3km를 뛰고는 나가떨어졌다. 페이스도 축축 늘어졌다. 하지만 이대로 나를 포기할 수는 없다! 그리고는 보드를 수리하러 가야지. 보드를 잘 타는 나를 상상하면 러닝도 꾸준히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바쁘게 지낸 탓이다. 삶의 우선순위와 방향성을 정하지 않고 욕심껏 살던 탓이다. 어떤 증명을 해내겠다고 나를 돌보지 않은 탓이다. 그렇게 해서 내가 얻은 것은 지쳐버린 몸과 마음, 잃은 것은 생기롭던 몸과 마음. 비우고 정리할 줄도 알아야 하는데 그저 두 손에 꼭 쥐고 있었던 게 화근일까. 더하기보다 빼기가 중요하다던 여느 책의 구절이 떠오른다. 나는 이제 더 새로운 시도를 하기보다 내가 쥐고 있던 것들을 조금 더 섬세하게 연마하기로 했다.


보드를 수리하러 샵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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