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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 Han Apr 08. 2024

초현실주의 ' 달리판화 ' ; 약 절반은 위작

1798 시사 저널

초현실주의 ‘달리 판화’의 절반은 위작 - 시사저널 (sisajournal.com)


토털 아티스트' 지향한 달리의 판화...위작 논란 등 진짜 구별하는 방법 알아야


세계적으로 유명한 ‘추파춥스’ 막대사탕을 디자인한 사람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í·1904~1989)지만, 이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당시로서는 현란한 색의 조합으로 구성된 혁신적인 디자인이었다. ‘20세기 초현실주의 화가’ 달리는 그림만 그려서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아티스트로서 성공하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구사한 인물이다. 그래서 아티스트의 성공 전략을 말할 때, 공격적인 전략을 구사한 달리는 교과서가 된다.



달리는 대중에게 자신을 널리 알리기 위한 방법으로 자서전 《살바도르 달리의 은밀한 삶》을 발간해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힘든 작품의 설명과 작업 방식 등을 공유했다. 더불어 책이 더 잘 팔리게 하기 위해 자위행위, 자신의 성 체험, 부인이 된 연상 유부녀 갈라와의 운명적인 사랑 등 자신의 경험담을 내용에 넣으며 사람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이 밖에도 달리는 명성을 이용해 초콜릿, 자동차, 항공사 광고 등에 매달렸다. 목적은 오직 ‘수입’ 하나였다.


달리, 대중에게 자신을 알리다


1926년 기말시험 부정행위로 퇴학당한 달리는 ‘파리’로 이동해 호안 미로의 소개로 피카소를 만났다. 이후 파리의 초현실주의자들과 자연스레 친분을 쌓으면서 자신의 작품활동에 중대한 전기를 마련했다. 당시 초현실주의자들은 이성을 기반으로 한 예술, 즉 계산하고 측정하며 눈에 보이는 것을 재현하는 기존 방식에 반해 예술가의 무의식 세계를 드러내고자 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단호한 초현실주의자들에 비해 달리의 입장은 모호했고, 이들의 리더인 앙드레 브르통(André Breton)에 의해 달리는 그룹에서 쫓겨났다. 이때부터 달리는 “나 자신이 초현실주의다”라고 외치면서 회화뿐 아니라 조각, 판화 등 다양한 시각예술, 영화, 연극, 사진, 패션 분야로 그 대상을 넓히기 시작했다.



달리는 또 하나의 수익 창출 대상물을 찾았는데, 다름 아닌 판화 제작이었다. 캔버스 하나를 제작하기 위해 고생하는 것보다 창의력 하나를 금속판에 새긴 다음 ‘원본 판화’를 수백 장 복제하는 것이 훨씬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달리는 판화의 수익성에 대해 “매일 아침식사 후 2만 달러를 벌면서 하루를 시작하고 싶다”며 즐거워했다. 그러나 이러한 판화의 급격한 확대는 훗날 치명적인 약점으로 되돌아오게 됐다.


1974년 어느 날 프랑스 경찰은 안도라로 향하던 트럭 한 대를 검문하다가 짐칸에 있는 특이한 국제 배송물 하나를 발견하게 됐다. 그 안에는 달리의 서명이 담긴 4만 장의 아트지가 있었다. 이 사실은 즉시 보도돼 세간에 알려졌다. 시장에서는 달리를 비난하기에 이르렀지만, 한편으로는 아무도 그런 무모한 일을 ‘달리’라는 거장이 저질렀을 것으로 믿지 않았다. 원래대로라면, 공방에서 작품을 인쇄한 후 아티스트가 서명해야 맞지만, 달리나 공방이나 인쇄 과정을 신속하게 처리하기 위해 욕심을 낸 나머지 빈 아트지에 사전에 서명한 것이다.


시장에서 수요가 급증하자 달리는 부패한 공방들과 거래하면서 수만 장의 아트지에 사전에 서명했고, 연간 약 1200만 달러의 수입을 올렸다. 이때 달리는 자신의 서명이 있는 아트지 한 장에 40달러의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달리가 서명할 때는 한 사람이 종이를 대주고 다른 한 사람은 서명된 종이를 끌어당기는 방식으로 시간당 1800장, 다시 말해 7만2000달러의 값어치가 담긴 아트지에 서명했다. 더 나아가 달리가 병상에 누워 5년간 두문불출하면서 달리의 위조 서명까지 시장에 등장하게 됐다. 이에 대략 4만~6만 장의 위조된 서명이 있는 아트지가 유통됐을 것으로 추정한다.




달리 진본 판화 구별하는 법


1980년, 하와이에 있는 ‘센터 아트 갤러리’에서 달리의 판화 세 점을 구입한 구매자가 달리 작품 감정전문가에게 감정을 의뢰했다. 전문가는 달리 작품의 질감에서 잉크가 충분히 두껍지 않다는 미묘한 단서를 포착했고, 프랑스산 아르조마리 특수 용지에 인쇄됐음을 밝혀냈다. 그는 또 아르조마리가 1980년에 아트지의 메인 워터마크를 변경했다는 사실을 파악했는데, 이는 이후 위작을 구분하는 데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됐다. 달리가 1979년 이후 판화에 전혀 서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워터마크만 조사하면 위작 여부를 쉽게 판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달리 판화의 진본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1700여 점이 실려 있는 달리의 ‘카탈로그 리조네’(ISBN 0-9653611-0-1)와 대조하고, 워터마크를 꼭 살펴야 한다.



센터 아트 갤러리는 결국 1977~89년에 약 1억1300만 달러의 위조된 달리 작품을 판매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위조된 달리의 작품 대부분은 롱아일랜드에 있는 달리의 석판화 발행인인 ‘레온 아미엘(Leon Amiel)’로부터 나온 것이다. 아미엘은 센터 아트 갤러리를 포함해 미국에서 판매된 위조 달리 작품의 80~90%를 생산한 것으로 드러났다. 1991년 7월, 위장한 수사요원들이 해변 근처에 있는 오래된 카펫 창고인 아미엘 본사를 급습해 총 7만5000점의 판화를 압수했는데, 달리의 작품이 무려 5만 점이나 포함돼 있었다. 


20년 전 일이다.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살바도르 달리 탄생 100주년 특별전’에 전시된 달리의 《성경》 석판화를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 이 작품을 ‘원화’(모사 또는 복제 따위의 바탕이 되는 그림)로 간주해야 하느냐, 복사물로 간주해야 하는가의 논쟁이었다. 최근 서울 인사동에 전시된 소장자(Y대 교수)의 컬렉션을 둘러보던 중, 달리의 석판화 한 점을 발견했다. 정중하게 소장자에게 물으니 2018년쯤 비엔나의 ‘도로데움’ 경매에서 구입한 것이라고 한다. 진본인가 확인하고 싶었지만, 필자는 유리 액자 내부를 살펴볼 수 없었다. 아마 소장자는 달리 판화의 위험성을 모른 채 경매에 올라온 것이니 무한 신뢰하고 구입 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달리는 분명 20세기 미술에 매우 큰 족적을 남긴 아티스트다. 그의 작품들은 커다란 명성을 얻었고, 그의 기벽들은 전설이 됐다. 하지만 시중에 유통되는 달리 판화의 절반은 위작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구입할 용기가 있는지 묻고 싶다. 판화 논란을 보고 복잡하니 달리의 판화는 구입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하고 싶다.        


에술가의 세계 그중에서도 세계적인 작가의 작품이라면 위작이라도 매매가 될 수 있다는 회소성으로도 더욱 범죄의 목표가 되기도 싶고, 당사자들도 재화의 욕심에 암묵적으로 동의 하는 경우도 있을수 있겠다... 

차라리 엔드 워홀처럼 본인의 서명이 들어가지 않는 스크린 인쇄방식으로 대량 제작을 하여 대중들에게 배포할수 있다라면 좀더 사업가적인 예술가의 자세가 아니 었을까 생각해 본다.   Written by  E HAN 


#살바도르달리#판화#츄파춥스#센터아트갤러리#위작



출처 : 시사저널(http://www.sisa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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