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비용 이타주의를 가능케 해준 플랫폼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플랫폼은 자본주의의 동력에서 시작했지만, 예기치 못한 착한 결과를 내놓기도 한다. 지난 2012년 미국 역사상 최악으로 평가받았던 허리케인 샌디가 뉴욕시를 덮쳤을 때의 일이다. 뉴욕 브루클린에서 에어비앤비 호스트로 오래 활약해온 셸(Shell)은 홍수 탓에 많은 이재민들이 집을 버리고 대피해야만 했고 며칠 동안 집에 돌아갈 수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셸은 자신이 에어비앤비 숙소로 내놓고 있는 공간을 공짜로 내놓기로 했다.
셸의 행동은 에어비앤비 커뮤니티에 확산되기 시작했고, 1442명의 호스트가 자신들의 숙소를 내놨다. 당시 피해지역 주변에는 2000개 이상의 리스팅이 있었다. 셸은 당시의 심정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뉴욕에서 사람들은 잘 교류하지 않아서 고립된 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어요. 그런데 허리케인 샌디 때 게스트를 초대해보니 커뮤니티의 느낌이 제 집 안으로 들어온 느낌이었습니다
평상시에는 느끼지 못했던 동네의 인간미를 재난 상황을 계기로 절실하게 느끼게 된 셈이다. 에어비앤비는 대형 재난 상황에 공짜로 집을 내놓을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셸과 같은 사람들을 도왔고, 2013년부터는 ‘오픈홈'이라는 이름의 재난 대응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다. 허리케인 뿐만 아니라 화재, 홍수, 지진 등 다른 재난 상황에도 언제든 대응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경험은 지금까지 사람들이 막연히 가지고 있던 인간 본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깼다. ‘사람들이 근본적으로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는 할까?’ ‘실제로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 삭막한 도시에서 서로를 믿고 커뮤니티를 구현해낼 수 있을까?’ 이런 질문들은 책상 위에서 고민하는 많은 사람들을 괴롭혀왔지만,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연결하는 플랫폼의 등장은 생각지 못했던 놀라운 결과를 보여줬다.
네덜란드 태생의 동물행동학자이자 영장류학자인 프란스 드 발 역시 최근 낸 저서 <공감의 시대>에서 “(인간은) 자원을 공정하게 배분해 사회의 평화를 유지해 이익을 얻고, 이에 공감이 결합하며 결과적으로 평등성과 연대가 강조되는 작은 집단 사회를 향한 길을 걷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개인과 집단적 이익의 균형을 잡는 방법을 알아내야 한다. 그것은 미국 시민들이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희생자를 볼 때와 링컨이 족쇄를 찬 노예들과 마주했을 때처럼 우리를 다른 이들에게 연결하고, 이해하고, 그들의 상황을 우리 자신의 상황으로 만드는 능력이다. 이 타고난 능력을 불러내는 것은 어떤 사회에서도 이익이 될 수밖에 없다
어린이들이 동성 부모의 행동을 따라하고, 하품이 전이되며, 행복한 표정을 보면 편안하고 화난 표정을 보면 불편해지는, 프란스가 “흉내의 기술" 등으로 소개한 바로 그 공감의 힘은 온라인 플랫폼이 만들어 준 네트워크를 통해 빠르게 확산될 수 있었다. 셸의 행동은 공감대를 가진 다른 다른 사람들에게 그대로 전이되었고, 빠르게 확산됐다.
허리케인 하비와 어마 등 올해 유독 피해를 많이 입고 있는 지금, 미국에서는 에어비앤비 커뮤니티가 만들어내는 공동체의 힘을 경험하고 있으며, 멕시코의 지진과 폭풍, 일본의 태풍 탈림, 런던에서의 테러 등에서도 오픈홈 프로그램이 가동되고 있다.
마음을 쉽게 전달할 수 있는 플랫폼 기술의 존재는 마음 속 깊이 있는 본성을 깨워 쉽게 구현할 수 있게 도와줬다. 플랫폼은 또, 혹시라도 집안 시설이 망가질 경우 보험으로 보장해주는 도움을 주기도 한다. 플랫폼 기술이 “자기에게는 크게 방해가 되지 않지만 상대방에게는 상당히 큰 도움을 주는, 이른바 ‘저비용 이타주의'”(프란스 드 발, ‘공감의 시대')가 발현되는 상황으로 만들어준 것이다.
테니스 선수가 바닥에 주저 앉은 다른 선수를 손으로 잡고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행위와 같은 저비용 이타주의는 비용이 크지 않아 우리 사회에서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삭막한 도시를 바꾸는 것은 작은 기술의 도움만으로 충분하다.
동시에 우리는 온라인으로 연결된 커뮤니티가 언제든지 오프라인의 공동체로 전환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에어비앤비가 등장하면서 모두가 손쉽게 연결되는 플랫폼이 마련됐고, 보험 등에 따른 지원을 바탕으로 이타주의의 비용을 매우 낮아졌기 때문이다.
호스팅의 경험은 공동체에 대한 생각을 기존에 했던 것과 다르게 만들 수도 있다. 지난해 에어비앤비가 한국의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한 호스트는 이렇게 말했다. “에어비앤비 호스트를 한지 1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유럽∙아시아∙미주 각 지역에 친구가 생겼습니다. 사람이 가장 값진 경험이 아닐까 싶어요.”
우리는 어쩌면 플랫폼과 인터넷이 연결해 놓은 세상 속에서 기존의 세계관이 만들어 낸 문화적 장벽들을 조금씩 허물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보호무역이나 테러 등의 문제들은 서로 다른 문화 간의 이해도 차이에서 온다. 나는 항상 플랫폼 기술에 대해 자본주의 효율의 극대화 모델이라 설명한다 하지만 이런 맥락에서 보면, 플랫폼 기술은 확실히 긍정적인 면이 있다.
플랫폼의 동력은 자본주의지만, 자신의 자산을 남들과 쉽게 공유해 돈을 벌 수 있게 해준 경험은 '저비용 이타주의'를 가능케 해줬다. 나는 이 지점을 굉장히 중요하게 본다.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켜주면서 이타주의를 발현시킬 수 있는 흥미로운 사례이기 때문이다.
음성원 도시건축전문작가
*이 글은 2018년 11월27일 발행된 책 <팝업시티>의 일부 내용입니다. #팝업시티 #에어비앤비 #공유경제 #자본주의 #저비용이타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