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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성원 Oct 14. 2019

유혹하는 입구 디자인하기

사람을 끌어들이는 길

부산 f1963의 입구 디자인 사진출처=http://f1963.org/ko/?c=facil&s=2

저 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런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드는 길이 있다. 호기심은 다리를 무의식적으로 앞으로 뻗게 만든다. 조금만 더 가까이 가면 새로운 장면을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대감을 주는 길. 그것은 나아가는 방향 정면에 가려고 하는 장소를 아스라이 보여줄 때도 있고, 곡선 형태로 한 발씩 디딜 때마다 조금씩 다른 주변 풍경을 선사하며 계속해서 궁금증을 자아내기도 한다. 제주도 올레길 같은 곳을 떠올려 보라. 앞으로 쭉 뻗어 굽이굽이 흐르는 길은 양옆에 펼쳐지는 변화무쌍한 자연과 어우러지며 자연스럽게 한 발씩 발걸음을 떼게 만들지 않던가.


인간은 이런 길을 좋아한다. 원초적 궁금증을 자아내는 길은 인간으로 하여금 걸을 때 특별히 에너지를 쓴다는 생각을 갖지 않게 만든다. 그러니 절로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디자이너들은 건축물과 도시 형태에 이런 인간의 무의식을 적용해 왔다. 영국 솔즈베리 성당의 중정을 감싸고 있는 건축 공간이 한 예다. 중정을 둘러싸며 아름답게 줄지어 서 있는 기둥은 반복적 패턴을 통해 안정감을 부여하는 동시에, 기둥과 기둥 사이 프레임 속에 펼쳐지는 장면이 조금씩 달라져 걷는 재미를 느끼게 만든다. 열주가 이어지며 소실점에 이르는 방향으로 한 발씩 내디딜 때마다 다른 장면을 보여주니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도시 근린생활공간도 마찬가지다. 미국 뉴욕 맨해튼 첼시마켓은 원래 공장으로 쓰던 공간이라 섹션별로 막혀 있던 벽을 뚫어 길을 만들었다. 벽돌로 쌓여 있던 벽면의 옛 형상이 여전히 남아 있는 연결 부위는 마치 솔즈베리 성당 열주의 소실점처럼 이정표처럼 여겨진다. 양옆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상점을 구경하는 재미를 느끼며 걷는 이들 입장에서 이 이정표는 무언가 모를 목적으로 작동해 앞으로 나아가게 해준다. 철길을 따라 기차가 앞으로 나아가듯이, 사람들은 양옆에 배열돼 있는 기둥이나 상점 등을 철길로 삼아 한 걸음씩 내딛게 된다. 성공적으로 연출한 길은 흥미를 불러일으키며 앞을 향해 걸음을 내딛게 해준다.


부산에 있는 복합문화공간인 F1963은 폐공장이었던 입지적 특성 탓에 큰길에서 건물까지 걷는 길이 가깝지 않다. 이곳을 설계한 이들은 '사람을 유혹하는 길'을 만들어 이런 단점을 오히려 장점으로 승화시켰다. F1963 건물을 향해 들어가는 공간에 대나무밭을 만들고, 그 공간을 곡선으로 가로지르는 오솔길을 내었다. 이곳에 들어선 이들 눈에는 청량감을 제공해주는 대나무의 반복적 패턴으로 이뤄진 트랙이 비칠 것이다. 한 걸음씩 내디디며 앞으로 등장할 무언가에 대한 기대감과 호기심이 피어오를 것이다. 호기심은 이 길을 걷는 이들이 지겹다고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다. 길의 묘미를 이해하는 입구는 이렇게 건물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주는 연출 장치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다.


길을 연출해 손님을 유혹하는 디자인은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서울 송파구 신천동에 서울시가 만든 헌책방 '서울책보고'는 실내 공간을 빽빽하게 책을 꽂은 책꽂이를 터널 모양으로 연출했다. 그 터널을 걸을 때 느끼는 감정은 올레길이나 F1963 입구를 걸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서울 명동의 이니스프리 매장의 시원하게 뚫려 있는 입구를 지나게 되면, 양쪽의 식물과 함께 자연 풍광을 보여주는 LED패널이 걸어 들어가는 사람의 마음에 순식간에 영향을 준다. 자연 그대로의 이미지를 안고 매장 안으로 들어가는 셈이다. 같은 동네인 명동의 '타지'라는 인도 음식점은 지하에 있는 매장으로 내려가는 계단실을 인도풍으로 연출했다. 계단을 한 칸씩 내려갈 때마다 더 자세히 보이는 인도풍 장식과 점점 크게 들리는 인도 음악은 곧이어 인도 음식을 먹을 것이란 기대감을 준다. 이런 식으로 마음이 움직인 손님은 같은 음식이라도 더 맛있다고 느낄 것이다.


반면 '과연 이곳을 선택한 것이 잘한 일인가'를 되묻게 만들며 불안감을 자극하는 디자인의 입구를 거친 손님은 결국 먹게 될 음식에 대해서도 일단 의구심을 던질 가능성이 높다. 깐깐한 소비자가 되는 셈이다. 길과 입구의 디자인은 흥미를 북돋우는 소설의 전개 과정과 같다. 요즘처럼 소셜미디어에 사진을 올리며 스토리를 적어넣는 많은 사람을 생각하면 이제 이런 공간 연출은 필수가 된 게 아닐까 싶다.


명동 이니스프리 매장 입구 디자인. 시원하게 뚫린 입구를 지날 때 식물과 함께 자연 풍광을 보여주는 LED패널이 걸어 들어가는 사람의 마음에 순식간에 영향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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