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아름다움
리테일 매장 등을 종류별로 적절히 배합해 공간을 기획하는 일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그 일을 하는 기업 중 한 곳인 오티디코퍼레이션(OTD)은 지난해 말 서울 을지로 부영을지빌딩 지하에 `아크앤북`이란 매장을 열었다. 책을 중심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여 다른 매장들의 가치를 올려주는 전략이다. 종로 영풍문고에는 `무지` 매장이 들어서 있고, 코엑스에 가면 거대한 책꽂이가 돋보이는 `별마당 도서관`이 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똑같이 말한다. 서점이 매출에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고. 그런데 이들은 왜 서점을 필요로 할까. 모여 있는 책은 강력한 인테리어 도구다. 이 말에 섭섭해 할 사람이 많을 것 같긴 하지만, 여러 권의 책이 한데 꽂혀 있는 모습처럼 아름다운 것이 또 어디 있나 싶다. 요즘 많은 공간 기획자들이 서점을 활용하려 하는 이유는 이 같은 책의 아름다움이 사람들을 유혹하기 때문이다. 왜 책은 아름다운 걸까. 이에 답하려면 다시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대중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리듬이다. 리듬이란 "시간과 공간 속의 반복, `재시작`과 회기"(앙리 르페브르)다. 그러나 지루한 반복을 넘어 예상하지 못했던 것, 즉 변주가 끼어들어야 흥미롭다. 기계가 그은 직선보다 손으로 그린 선이 더 아름다운 이유는 이 때문이다. 반복되는 운율이 이어지는 동요 `상어가족`이 지난 18일 무려 빌보드 싱글차트에서 32위를 차지한 데에서 나는 대중에게 소구하는 리듬의 힘을 본다. 건축가이자 미학자인 파나요티스 미헬리스는 저서 `건축미학`에서 "영혼이 리듬의 예술적인 교대와 그 변화를 향유할 때, 리듬은 처음에 감정을 환기시키다가 마침내 감동을 일으킨다"고 했다.
인간은 진화하면서 자연 속에서 아름다움을 배웠다. 숲은 일관성과 다양성이 동시에 존재한다. 초록색 잎과 갈색 나무줄기로 이뤄진 나무는 모두 비슷하지만, 자세히 보면 모두 다르다. 여기에 가지와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사건`까지 더해지면 반복과 변주로 구성된 리듬감이 극대화된다. 진화 과정 내내 봐왔던 물줄기와 번개, 눈의 결정 등에서는 작은 구조가 전체 구조와 비슷한 형태로 끝없이 되풀이되는 `프랙털`을 찾을 수 있다. 프랙털의 아름다움은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채색 목판화 `가나가와의 큰 파도`라는 명작으로 승화돼 대중의 인기를 끌었다.
건축 역시 리듬을 만들기 위해 애쓴다. 프랑스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을 가까이에서 보면 수많은 양각과 음각이 물결을 일으키며 파사드를 구축하고 있다. 가까이 다가가면 조각의 모습이 하나같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노동집약적 조각 행위를 구할 수 없는 현대 건축가들도 창틀을 건물 안쪽으로 집어넣든가, 바깥으로 빼든가 하는 방식으로 입체의 패턴을 만들어 반복과 변주의 힘을 넣으려 한다. 뉴욕 맨해튼 5번가에 층고를 제한하고 일관된 가로입면을 설정하도록 한 것도 반복적 리듬을 끌어내기 위한 장치다.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오자. 책이 가진 고유한 직사각형의 형태는 우리의 기대를 배반하지 않는다. 그 단순한 모양의 집합은 반복을 만들어낸다. 그러면서도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하나 달라 변주가 더해진다. 무수히 많은 책이 책장에 꽂힌 채 외부로 노출된 모습은 리듬의 결정체다. 심지어 하나씩 꺼내 읽어볼 수 있는 파격도 있다.
다양한 책의 근원은 수많은 소규모 출판사다. 이들의 땀이 모이지 않으면 리듬을 만들 수 없다. 최근 한 공간기획 회사가 상업 공간에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용도로 서점을 집어넣고,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으면서 책도 읽을 수 있게 공간을 꾸몄다는 소식이 들리자 많은 출판인들이 분개했다. 판매용으로 서점 측에 위탁한 책이 다른 것을 빛내기 위한 소모품으로만 사용되고 반품되면 어찌 씁쓸하지 않을까. 출판사들도 행복한 공간 기획의 묘안은 없을까.
*앞서 매일경제 칼럼으로 연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