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재생
얼마 전 도시재생과 관련한 강연을 할 기회가 있었다. 강연이 끝나고 한 주민으로부터 "공동체를 만드는 데 성공한 사례에 대해 소개해달라"는 질문을 받았다. 도시재생 현장을 찾으면 이런 궁금증과 자주 마주친다. 도시재생을 위해서는 주민 참여와 이를 위한 공동체 구성이 필수적이라고 하는데, 잡힐 것 같으면서도 잡히지 않는 신기루 같은 상황이 현장에서 자주 벌어진다. 그래서 성공 사례가 절실한 것이다. 그러나 공동체 구성 그 자체가 목표가 되어 성공한 사례는 없다. 도시재생에서 꼭 필요한 주민 참여는 공동체 만들기와는 선을 그어야 한다.
두 가지 사례를 들고 싶다.
먼저 미국 뉴욕의 폐철로인 하이라인을 보존해 공원으로 바꾼 과정이다. 부동산 개발사들과 토지소유자들은 폐철로를 철거하길 원한 반면, 조슈아와 로버트라는 두 시민은 보존을 원했다. 이들은 먼저 도시 안의 육중한 산업유산 그 자체의 매력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유명 사진작가에게 부탁해 하이라인을 사진으로 찍어 대중에게 알리는 작업을 했다. 통제된 상태로 방치돼 있던 폐철로 위에는 천이가 진행 중인 야생의 모습이 펼쳐져 있었다. 시민들은 이 강렬한 이미지에 매혹됐다. 이들은 또 산업유산이 역사 속 수많은 이야기를 되살려내 도시에서의 삶을 풍성하게 해줄 수 있다는 점을 한 명씩 찾아다니며 설득했다. 이렇게 보존의 정당성을 확립해 나갔고, 여러 유명인사가 관여하게 되면서 결국 뉴욕시 정책을 바꿔냈다. 10년이나 걸린 공감대 확산의 과정. 그것이 바로 하이라인 재생 사례의 백미다. 도시재생에서 주민 참여란 이런 것이다.
'마치즈쿠리(마을 만들기)'로 유명한 일본의 사례도 살펴보자. 마치즈쿠리는 시민들이 스스로 마을을 바꿔내는 운동이기도 하지만, '지역사회가 참가해 커뮤니티 계획을 시행하는 방식'(한국도시연구소의 '도시와 빈곤 50호')이라고, 정부 주도 사업으로서의 마치즈쿠리로 이해할 수도 있다. 몇 년 전 방문한 일본 도쿄도 스미다구의 공무원들은 교지마 지역 노후주택 밀집지역에 소방도로를 만드는 마치즈쿠리 사업을 위해 30년에 걸쳐 한 집씩 설득하며 용지를 수용하고 있었다. 집이 수용된 주민에게는 커뮤니티 주택에서 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고, 끝내 보상을 거부하는 주민이 있다면 그 주택을 우회하는 방식으로 도로 계획을 변경했다. 하이라인 사례와 달리 발단은 지자체이지만, 한 명씩 설득하며 공감대를 늘려 나간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도시재생 사업은 그 사업이 진행되는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물리적·경제적·사회적으로 더 나은 환경에서 살 수 있도록 하는 데 그 의미가 있다. 도시재생 사업을 벌였더니 되레 주민들이 내쫓기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일어난다면, 그 사업을 대체 왜 해야 하는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러니 주민 참여와 그 지역사회에 대한 고려는 도시재생 사업에서 빠져서는 안 된다. 다만 지역 전체를 위한 방향성을 설정하고, 그에 맞는 세부 목표를 만드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조슈아와 로버트의 목표는 뚜렷했다. 산업유산을 지켜내 앞으로도 그 역사의 숨결을 일상에서 느껴보고 싶다는 것이다. '하이라인의 친구들'이라는 단체 결성은 목표를 향한 과정일 뿐이었다. 결국은 개인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이게 만들 것인가, 어떻게 이들이 공감하게 하고 연대함으로써 무언가를 실행하도록 만드느냐가 중요하다. 공동체 구성에 성공한 사례로 자주 거론되는 서울 마포구의 성미산 마을도 공동체 그 자체의 구성보다는 좀 더 나은 교육과 육아라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지난달 건축도시공간연구소가 연 '당연하지 않은 도시재생'이란 제목의 토크콘서트에서 전문가들 역시 비슷한 지적을 했다. 이들은 "공동체 조직 구성이 아니라, 주민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사업을 이끌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꼬집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커뮤니티가 활성화하고 공동체가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지, 공동체 구성 그 자체가 목표가 될 수는 없다.
*이 글은 매일경제에 '도시와 라이프' 시리즈로 연재 중입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09&aid=0004494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