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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성원 Apr 12. 2020

한국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은 어떻게 화두로 떠올랐나

개인사에서 시작된 젠트리피케이션 이슈

지난 2014년, 기자였던 나는 서울 서촌의 젠트리피케이션 이슈를 기사로 다뤘다. 그때는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해 아는 사람이 매우 적었던 때였다. 당시 서촌의 젠트리피케이션 주제를 다뤘던 이유는 사실, 매우 개인적인 관심 때문이었다. 얼마 전까지 서촌 바로 옆의 정부청사에서 일을 했던 점이 첫 번째 이유였다. 2013년 교육부를 취재하면서 함께 일하던 기자들과 어울리며 서촌의 맛집을 자주 찾았다. 당시에는 젠트리피케이션이란 단어가 전면에 등장하지 않았고, 핫플레이스라는 말은 아예 없던 때였다. 도시재생이란 말은 당연히 대중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때다. 서촌은 조용했지만, 하나 둘 세련된 식당과 카페가 들어서고 있었다. 주택가 옆에 들어선 깔끔한 디자인의 식당은 마치 유럽 한적한 동네에 들어간 듯한 느낌을 줬다. 붐비지 않는 한가한 거리에 자리잡은 레스토랑에는 식당 주인과 손님이 밀착되어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이는 그 자체로 매우 새로운 경험이었다.


교육부 출입기자를 마치고 기자로서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던 때, 나는 계명대의 최이규 교수와 함께 <시티오브뉴욕>이란 책을 쓰고 있었다. 최 교수에게 배워가며 썼던 이 책을 쓰는 작업은 도시 문제가 사람들 개개인의 삶에 엄청나게 중요함에도, 한국 사회에서 이런 부분이 너무나도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줬다. 그리고 무엇보다 재밌었다. 도시계획이라는 제도는 항상 그 시대의 사회적인 고민들이 뒤엉켜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당시 건축 전문기자로 이름을 날리던 구본준 선배와 자주 대화했던 영향도 커 나는 ‘도시전문기자'가 되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고민 끝에 나는 서울시 출입기자를 하겠다고 지원했다. 서울시는 일반 기자들에게 그렇게 인기 있는 출입처는 아니다.


서울시 출입기자가 되어 도시 관련 전문성을 보여주고 싶었다. 참으로 옹졸한 생각이었는데, 그때는 이렇게 엉뚱하게 시작한 일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생각도 하지 못했다. 도시와 관련해 나올 수 있는 이슈들에 대해 찬찬히 따져보다 보니,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은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주제였던 것처럼 보였다.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는 현장 기자의 감각과 인터뷰 능력, 도시계획을 수립하는 서울시에 대한 접근성 등이 부족한 도시공학적 지식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무모한 도전은 이렇게 시작됐다. 당시 일을 쉬고 있던 박새미씨가 취재를 도와줬다. 그가 없었다면 혼자서 이런 일은 하지 못했을 것 같다. 취재 대상으로는 교육부를 출입하면서 자주 방문하며 변화를 느끼고 있던 서촌으로 정했다.


그렇게 나온 것이 ‘서촌에 사람과 돈이 몰려오자…꽃가게 송씨·세탁소 김씨가 사라졌다’라는 제목의 기획기사였다. 나는 이 기사에 대해 한국 사회에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단어를 구체적으로 제대로 알린 첫 기사라고 자평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젠트리피케이션은 한국 사회에서 거의 알려지지 않은 단어였다. 취재를 위해 어슬렁거릴 때 주민들과 상인들에게는 신현준 성공회대 교수도 당시 서촌을 돌아다니며 젠트리피케이션 연구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2)는 얘기를 들었다. 그러니까 최근 거론되는 의미의 젠트리피케이션을 처음 사회적으로 알린 것은 언론에 있던 나와 학계에 있는 신 교수였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당시 내가 소속된 팀의 팀장이었던 이지은 한겨레 기자는 이 기사의 소제목으로 ‘뜨는 동네의 역설'(1)이라는 아주 멋드러진 제목을 뽑아줬다. 지금까지도 이 제목 만큼 서촌에서 나타나고 있는 변화를 정확하게 설명해주는 말은 없다고 생각한다. 이후 1~2년 뒤에 똑같은 제목의 특집기사가 다른 매체에서 나오고,  ‘뜨는 동네의 딜레마’란 제목의 책이 출간되기도 할 만큼 이 제목의 힘은 강력했지만, 누구도 알지 못하는 것 같아 여기에 기록으로 남겨본다.


한겨레신문 1면과 본면에 큼직하게 들어간 이 기사를 본 박원순 서울시장은 곧바로 서촌의 젠트리피케이션 대책을 내놓고, 본격적으로 정책에서 이 이슈를 다루기 시작했다. 이 덕분에 젠트리피케이션은 사회 이슈로 떠오른 것으로 생각된다. 기사가 나오고 2개월 여만에 서울시는 대책을 내놨다. 서촌의 용도변경을 금지(3)한 것이었다. 기사의 핵심내용은 주택이 근린생활시설로 용도변경이 이뤄지는 속도가 너무 빨라 기존에 설정되어 있는 생태계가 무너질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서울시는 서촌의 지구단위계획을 재정비 작업을 마무리짓기 전까지 변화의 속도를 늦추기 위해 임시로 용도변경을 금지하기로 결정했고, 이후 2016년 3월 지구단위계획을 확정하며 프랜차이즈 식당과 카페를 금지(4)하는 형태로 대책을 확정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젠트리피케이션 이슈가 생성되고, 그에 대한 첫 대책이 나온 것이다. 이렇게 되니, 이슈는 굉장히 크게 확대되었다. 이때부터 젠트리피케이션은 더 이상 작은 주제가 아니게 되었다. 나는 예상치 못하게,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용어를  한국 사회에 전면으로 꺼내든 기자가 된 셈이었다.


나는 이 콘텐츠가 한 번의 기사로 소진되어 버리는 것이 아쉬워 서울연구원의 ‘작은연구 좋은서울’ 사업에 지원해 아주 작은 보고서 형태로도 만들었다. 그때의 작성했던 것이 ‘뜨는 도시의 역설 : 서촌의 젠트리피케이션 현상 분석과 도시재생 정책의 시사점’이라는 제목의 소논문이었다. 이어 서울시에서는 도시재생 사업을 진행할 때 반드시 젠트리피케이션이 동반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되었다. 지금은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젠트리피케이션과 도시재생을 연결시킨 것도 이 연구가 처음이었다. 솔직히 말해 연구 자체는 기사와 거의 같으니, 그저 개념적으로 젠트리피케이션과 도시재생을 연결한 것이 처음이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이 경험 이후 나의 삶은 ‘도시’라는 주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이어서 같은 주제에 대한 생각을 한참 더 숙성시켜 다시 한 번 다뤘던 것이 바로 연남동과 상수동에서 벌어지던 일을 기록한 기사(5)였다. 이때 알아낸 사실은 서울 홍대 상권이 확장되면서 연남동과 상수동에서 나타났던 ‘한국형’ 젠트리피케이션은 58년 개띠로 상징되는 베이비부머로 인해 촉발되었다는 점이었다. 미국이나 유럽 등에서 목격되었던 일반적인 형태의 젠트리피케이션은 창의적인 임차인에 의해 시작되었다. 쇠퇴한 동네의 장점을 볼 줄 아는 임차인이 공간을 잘 꾸며 사람들을 끌어 들이며 유동인구를 만들어 내면 부동산 투자가 이어져 임대료가 상승하고, 그 결과 ‘스스로의 성공에 의한 희생자(Victims of its own success)’(6)가 발생한다는 것이 전형적인 젠트리피케이션의 형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근린생활시설과 같이 임차인이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닌 단독주택 부지에서 시작된다는 점이 특이한 점이었다. 다시 말해 뜰 만한 장소를 찾아낸 부동산 투자자들이 먼저 ‘뜰 동네'에 들어가 단독주택을 매입하고 이를 근린생활시설로 용도를 변경하는 것이 1단계였다. 이어 임차인이 들어와 활동하면서, 곧바로 전형적인 젠트리피케이션의 단계로 진입한다. 당시 등기부등본 330여장을 떼어 서울시에서 일하던 데이터분석가 신수현씨의 도움을 받아 직접 분석했는데, 이후 등기부등본 조사는 많은 기자들이 자주 사용하는 방법론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몇 년이 지난 일을 이렇게 주저리 주저리 이야기하는 이유는, 이 같은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 한국 사회가 겪은 경험과 매우 깊게 공명하고 있었다는 점 때문이다. 황당한 이유로 시작한 젠트리피케이션 관련 기사는 당시 막 등장하고 있던 사회현상의 편린을 건드리면서 국가적인 이슈로 커져버리는 독특한 경험을 한 셈이다. 지금 이 블로그를 통해 도시재생을 말하려는 이유도 결국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한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도시재생의 또 다른 얼굴이기도 하다. 동전의 양면처럼 젠트리피케이션이 곧 도시재생일 수도, 도시재생이 젠트리피케이션일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연남동 같은 골목길에서 등장한 부동산 투자형 ‘핫플레이스화’를 도시재생의 전부로 오해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많은 전문가들이 도시재생이라는 화두를 던지고 있지만, 주로 도시재생이라는 거대한 그림 속의 부분들만을 꺼내어 보여주다 보니 일반 대중 입장에서는 헷갈릴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도시재생은 시민과 함께 만들어 나가는 작업이니 만큼 대중의 눈높이에 맞는 책이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도 한다.


"우리는 한 발 물러서서 스스로 무엇을 만들고 있는지, 그림 전체를 파악하는 능력을 잃고 있다." 크리스토퍼 알렉산더는 저서 <패턴랭귀지>에서 도시를 바라보는 시각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한다. 젠트리피케이션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른 채, 한국 사회는 젠트리피케이션의 경험을 해왔다. 또 도시재생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른 채 전국에서 도시재생 사업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니 서울 익선동과 대전 소제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권 형성이 도시재생이냐 아니냐는 논란이 생기고, 손혜원 의원의 지인이 목포 구도심 건물을 매입해 사업을 벌이는 일을 두고도 도시재생과 투기라는 시각이 맞서는 것 같다.


도시재생은 사실 행복한 도시를 만드는 일이다. 이런 대답은 독자 입장에서는 도시재생이 무엇인지 한껏 긴장하고 노려봤는데, 평범한 사람이 너무나도 평범하게 문을 열고 나오는 듯한 느낌을 받을지는 모르겠다. 나는 앞으로 도시재생이 그다지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우리는 도시재생을 너무나도 특별한 것으로 여겨왔다. 그러니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도시재생을 좀 더 복잡하고 헷갈리는 개념으로 만들어 버렸다. 행복한 도시를 만드는 일은 한 가지로 정리하기 어렵다. 어떨 때는 물리적 환경이 좋아야 하고, 어떨 때는 주변에 함께 사는 시민들과 따뜻한 관계로 연결되어야만 행복한 도시일 때도 있고, 또 어떨 때는 먹고사는 일을 지탱해줄 수 있는 직업의 존재 유무가 가장 중요할 때도 많다. 또한 다양한 어메니티가 존재해 삶을 즐길거리가 풍성한 경우에만 행복한 도시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 이 모든 종합적인 환경이 구축되도록 만드는 것은 사실 도시재생의 시대 이전부터 이미 모두가 추구하려 하던 이상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복잡하고 하나하나 모두 연결된 개념을 두고 우리는 오래된 건물을 복원해야만 도시재생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고, 커뮤니티만 강조하면서 다른 경제적 요소를 배제하는 우를 범하는 경우도 있으며, 건물을 짓는 등의 행태를 ‘도시개발’이란 따옴표를 씌워 비난하는 등의 일을 벌이고 있다. 그러니 모두들, “뭔가 이상하다. 도시재생은 도시개발과 다른 것 같기는 한데 도대체 뭔지 모르겠다”며 혼란만 가중되고 있는 것이다. 파편화된 사례를 보면 볼수록 도시재생이 무엇인지 헷갈려 하는 일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시중에 나와 있는 서적들 역시 각 부문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을 뿐, 도시재생 전체를 조망하는 경우는 많지 않아 보인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역시, 도시재생이란 그저 행복한 도시 만들기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그 방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 초점을 잃기 십상이다.


5년 간 500조원의 돈이 도시재생뉴딜사업에 쏟아진다. 그리고 그 사업엔 싫든, 좋든 간에 시민들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도시재생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같은 주민 참여의 형식은 오히려 행정과 예산의 낭비를 불러 오고 있다. 수많은 도시재생 사업을 접하고 있는 시민들에게 도시재생의 큰 그림을 보여주는 것이 앞으로 내가 계속 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참고자료

1. 한겨레, ‘서촌’에 사람과 돈이 몰려오자…꽃가게 송씨·세탁소 김씨가 사라졌다, 2014년 11월23일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65778.html

2. 이후 신현준 교수는 <서울, 젠트리피케이션을 말하다>란 책을 출간했다.

3. 한겨레, 서울 서촌 한옥마을 상업화 일단 제동, 2015년 2월 5일 http://www.hani.co.kr/arti/society/area/676979.html

4. 한겨레, 서촌엔 프랜차이즈 식당 카페 금지, 2016년 3월 10일 http://www.hani.co.kr/arti/society/area/734449.html

5. 한겨레, ‘58년 개띠’의 상가 사냥, ‘94년 개띠’를 몰아내다, 2016년 7월 26일 http://www.hani.co.kr/arti/economy/property/753898.html


6. 최이규 음성원, <시티오브뉴욕 : 뉴욕 거리에서 도시건축을 묻다>, 2015년 3월 10일, 서해문집 1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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