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가 맑은 날은 아침부터 노을이 설렌다. 사실 그런 날은 하루 어느 때를 꼽아도 빠짐없이 모두 황홀하지만 내 원픽은 역시 노을이다.
노을의 마법은 해가 기울면서 시작된다. 하늘 높이 떠있던 해는 땅에 가까워지면서 빨갛게 익어가는데, 계란 노른자가 빨간색이었다면 꼭 그렇게 생겼을 것만 같아 난 그런 해를 빨간자라고 부른다. 빨간자는 땅과 가까워지면서 점점 땅에 짓눌리며 일그러지고, 이내 그 일그러진 틈 사이로 빨간자를 가득 채우던 빛이 스며 나오기 시작한다. 한 번 흘러나오기 시작한 빨간빛은 삽시산에 넓게 퍼지고, 그렇게 빨간빛과 파란 하늘이 뒤섞이면서 마침내 하루 중 가장 신비롭고 오묘한 빛깔이 시공간을 가득 채운다.
태양과 땅이 만나는 마법은 사실 새벽녘에도 펼쳐진다. 하지만 그 시간의 나는 대개 잠들어 있고 혹시나 깨어있더라도 일출을 보는 것은 노을을 보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다(적어도 나에게는). 그나마 주공 5단지 아파트에 살 때에는 가끔 밤을 새운 뒤 올림픽로를 세로 지르는 압도적 일출을 보곤 했었는데 석촌동 빌라촌으로 오고 난 뒤로는 조금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태양만큼 빛을 내진 못하지만 달 역시 땅에 가까울 때 좀 더 특별해진다. 일단 엄청 커진다. 서울 한복판에서는 대부분 건물에 가려져 갓 뜨는 달을 보기가 영 쉽지 않지만 몇 해 전 한강을 건너면서 봤던 갓 뜬 달의 크기는 정말 어마무시했었다. 그래 봤자 달 아니냐고 하겠지만 진짜 왕, 왕왕 크다. 색깔도 훨씬 진하다. 어릴 때 먹었던 부루펜의 색깔이 생각나기도 하고 갓 구운 따끈한 빵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그것들이 그 순간에 특별할 수 있는 이유는 마땅히 하늘에 있어야 할 것들이 땅에 닿아있는 순간이어서 아닐까 싶다. 특별함이란 결국 예외, 소수, 비전형 이런 것들이 옷만 바꿔 입은 것일 테니까. 아이러니한 것은 태양은 하늘에 있을 때 가장 생산적이지만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생산을 다 하고 땅에 곤두박질치는 때라는 것. 그런 점에서 미스터션샤인의 김희성이 무용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탐했던 것은 무척 와닿고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22. 7.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