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기와 열기에 미뤄뒀던 온갖 감상이 밀려드는 때가 왔다. 따로 계절이라 부르기엔 너무 짧다지만 그럼에도 여름의 끝자락은 김동률이 불러주기 훨씬 이전부터 존재했던, 여름과 가을 사이에서 제 색깔을 또렷이 내던 별개의 계절이었다.
땀이 비정상적으로 많은 나에게 한국의 여름은 그저 지옥과도 같아서, 가겠다는 여름 붙잡고 싶은 마음은 결단코 1도 없지만 그럼에도 한 해의 정점을 지나 생명력이 쇠해가는 변곡점을 맞이하는 심정이 단순 할리 없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딱 알맞게 뜨거운 태양과 시원해진 바람이 상쾌하면서도 시원해진 딱 그만큼 마음 한 구석은 어딘가 허전해졌다. 한 해의 끝이 벌써 저만치 보이는 것 같고 또 이렇게 1년이 가는가 싶기도 하고, 더위에 시달리느라 돌보지 못한 7, 8월을 더듬어보면서 내 시간들에 얼마나 충실했을까 겁이 나기도 한다.
이런 걸 보면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말이 비단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말은 아닌 것 같다. 여름을 아쉬워 할리 없는 나조차도 여름이 떠난다는 사실에는 조금 슬퍼지니까 말이다. 아니면 여름이 못돼쳐먹어서 일지도 모른다. 착한사람보단 나쁜 사람이 상대방에게 여운을 남기는 것처럼. 그럼 난 애저녁에 글러먹었겠다. 딱히 착한 건 아닌데 나쁜사람 하기에는 너무 뚝딱거려서.
어찌 되었든 잘 가고, 내년에 또 욕하면서 만나자.
22. 8.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