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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an Oct 09. 2022

선빈에게(3)

저번에 편지를 드렸을 때만 해도 날이 아직 더워 고생이라고 툴툴댔는데 어느새 9월도 다 가고 10월입니다. 간밤에는 비바람이 세게 몰아치는 것 같더니 채 익지 못한 대추알들이 잔뜩 떨어져 버려서 아침부터 속이 상하네요. 이제 제법 추워지려는 것 같으니 저녁에 산책 나가실 때 좀 더 단단히 입고 나가셔야겠어요.


저는 요즘 나쓰메 소세키를 야금야금 읽어보고 있습니다. 예전에 어떤 드라마에서 나쓰메 소세키가 한 말이라며 ‘달이 아름답네요’라는 말을 인용한 적이 있었는데, 또 어디에 선가는 그게 잘못 전해진 이야기라고 하니 무엇이 맞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인용 덕분에 나쓰메 소세키라는 이름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앤트러사이트라는 카페에서 정지돈과 에쿠니 가오리를 읽고 있었는데, 위스키를 한 잔 더 주문할까 해서 메뉴를 살펴보다가 커피 원두에 나쓰메 소세키라는 이름이 붙어있는 것을 보고 인상 깊었던 적이 있습니다. 내가 관심이 없어서 그렇지 일본 문학에서 대단히 중요한 인물인가 보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언젠가 꼭 한 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도 했구요.


저는 한 해를 살다 보면 꼭 두어 번은 충동구매의 시기가 찾아오는 편입니다. 특히나 올해는 재정상태가 열악한 탓에 전반적인 소비를 죽이다시피 하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최근 충동이 크게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장바구니에 담아놓았던 것들을 몇 개 사기로 했어요. 정준일의 앨범과 정지돈 덕분에 알게 된 리베카 솔닛의 책,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김연수의 산문집. 그러고도 부족했는지 저 앨범과 책들을 수령하고 나서 곧바로 또 한정원의 <시와 산책>과 정지돈의 <영화와 시>라는 책들을 주문했어요. 사실 이건 인스타에서 제가 매우 애정하는 작가님의 추천 덕에 불이 지펴진 것인데 그분이 추천해 준 것은 <시와 산책> 한 권이었지만 구경하다 보니 같은 기획으로 출간된 정지돈의 <영화와 시>도 눈에 띄더라구요. 그의 소설보다 그의 수필을 더 좋아하는 저에게 잘 맞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나 책상 앞에 앉아서 공부에 집중이 안될 것을 알았더라면, 그냥 주말에 마음먹고 서점에 가서 책들을 직접 데려올 걸 그랬다는 후회를 합니다. 책을 사러 가는 길, 가서 구경하는 일, 사서 데려오는 일 모두 참 설레고 두근대는 여정이었을 텐데 말예요.  


그리고 또 바보 같은 것은, 저 책들을 사놓고 읽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책을 사고 그 책들을 읽지 않는 행위 자체는 저에게 매우 자연스러운 버릇이긴 합니다만 이번엔 단순히 사놓은 것들을 읽지 않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전혀 엉뚱한 책을 읽기 시작했다는 것이 조금 색다르군요. 아, 그 엉뚱한 책이 바로 나쓰메 소세키의 책입니다.


왜인지 갑자기 꽂혔고, 당장 읽지 않고는 못 배기겠어서 냅다 전자책으로 읽어야겠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아예 모르는 작가이고 주변에 이런 걸 추천해줄 사람도 선빈님 말고는 딱히 없어서 뭘 읽어야 하나 고민됐어요. 검색을 해보니 <마음>이라는 작품이 유명한 것 같아 그걸 읽어야겠다 정한 뒤에도 어떤 번역이 가장 와닿는 번역일까 골라내느라 시간을 많이 썼습니다. 선빈님께 물었으면 어떤 작품 누구의 번역이 좋을 것이라고 금방 추천해줬을 것만 같아 혼자 검색하고 고민하는 내내 마음이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제 스타일의 번역을 잘 고른 것 같아요. 일과를 마치고 자기 전에 잠깐잠깐 읽는 거라 아직 반도 못 읽었지만 벌써 그의 다른 작품들도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제 작고 소중한 독서량과 꾸준하지 못한 독서 버릇을 생각했을 때 나쓰메 소세키의 다음 작품은 아마 1년 후에나 읽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창 읽고 있는 중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여전히 선빈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이 작가를 좋아하시는지, 좋아하신다면 어떤 작품을 좋아하시는지, 좋아하지 않으신다면 어떤 작가를 좋아하시는지. 천천히 답장으로 알려주세요. 제가 묻지 않은 것들도 함께 답해주신다면 더 반갑겠습니다.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지만 편지를 쓰는 기쁨을 알게 해 줘서 참 고맙습니다. 선빈님도 저도 지금은 할 일에 바짝 집중해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이야기할 날이 어서 오길 바랍니다. 10월도 잘 보내시길 바라요.



22. 10. 4.

유안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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