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문
지지난달, 가끔 즐겨보는 잡지 <GQ>의 편집자님이 연락을 주셔서 분수에 맞지 않게 기고를 한 적이 있습니다. 마침 브런치에서도 2달간 글이 없다는 독촉이 와서 일단 써놓은 글이라도 올려봅니다. 누군가 대상을 두지 않은 글은 마음이 편하지만, 널리 읽힐 목적으로 쓰는 글은 아직도 어렵습니다. 잡지에는 전문적인 편집자가 교열한 글이 실렸지만, 브런치에는 원문을 싣습니다. 원래는 다른 블로그에 써두었던 글을 제작 때문에 윤문 해서 보낼 수밖에 없었는데, 편집자님께서 많은 편의를 봐주셨습니다. 다시 한번 <GQ>와 편집자님께 감사드립니다.
원고 청탁이 왔다. 일 관계로 인터뷰를 하거나 글을 써 본 적은 좀 있지만, 취향을 물어온 글은 난생처음이었다. GQ라고 하면 “Disco Nights”를 부른 훵크 밴드 GQ를 먼저 떠올리는 내게, 학창 시절 연습장에 그림을 그릴 때마다 “이 XX, X나 잘 그린다.”는 말이 친구들의 입에서 떨어지기 무섭게, 갑자기 손에 힘이 들어가 그림의 선이 원래 행로에서 45도 바깥으로 도주하고 마는 못난 심성의 소유자에게.
황송하기는 하나 또 무엇을 쓴단 말인가. 독특한 취향도 오래 묵고 꾸준하면 사회적 인정을 받는다는 교훈은 고맙지만, ‘모 프로그램의 연출자로서가 아니라, 소울, 훵크 음악 애호가로서 의견을 묻고 싶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다시 손에 힘이 들어가고 정신머리가 45도 바깥으로 도주하는 기분이 든다.
소울, 훵크와 처음 사랑에 빠진 때는 언제였던가. 정확히는 1974년에서 1984년에 이르는 재즈 훵크 르네상스 시기의 음악들. 이 시기의 음악들에 매료된 계기는 유년기의 금제 때문이다. 대부분의 훵크 팬들과는 달리, 내게 인생 최초의 훵크를 꼽으라면 The Arakawa Band의 “Brand New”라 답한다. 이 생소할 수도 있는 일본 밴드의 곡을 꼽은 이유는 나의 아버지 때문이다. 아버지는 포장지 외에는 버리는 법이 없는 분이다. 게다가 박찬욱 감독의 영화 <박쥐>에 나올 법한 맥시멀리스트적인 인테리어 감각을 갖추셨기 때문에 "쉬크 앤 모던"을 추구하는 식구들과는 자주 마찰을 빚어왔다. 식구들은 아버지의 괴상한 취향을 서재에 봉인해두었는데, 반대로 아버지가 식구들로부터 봉인해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아버지가 청년 시절에 어학 공부를 하겠노라고 거금을 들여 구입해서 간직하고 있는 소니 워크맨이었다. 그리고 이 곡은 소니가 처음 출시한 워크맨의 데모 테이프 수록곡이다. 작동은 멈췄지만 서재 서랍에 은색 비닐 커버를 뒤집어쓴 워크맨과 이 데모 테이프를 간직할 정도로 애착이 가득해, 90년대에 CDP가 출현할 때까지 금지옥엽 같은 자식 손에도 허락한 적이 없었다. 아마도 구입 당시의 가격도 그렇지만 아버지가 월급 받아 큰돈 들여 산 첫 물건이라서 애착이 남달랐던 모양이다. 워크맨은 그때까지 우리 집에서 말 그대로 "언터처블"한 존재였다. 그러나 애들은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법. 아버지가 집을 비우는 날이면 몰래 꺼내서 음악을 들어보곤 했는데, 이 "Brand New"를 그때 처음 듣게 되었다. 70년대 말, 일본과 구미 각국에서 유행하던 보편적인 재즈 훵크 스타일로 가사도 없고 생경한 음악이었는데 어떻게 마음에 들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뭣도 모르고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에 와서 들어봐도 단선적인 구성이 아쉽기는 하나 연주의 세련미는 여전하다. 이 테이프는 A면에 "Brand New" 한 곡, B면은 녹음용으로 비워져 있는데, 어릴 적에 몰래 꺼내 듣다가 녹음 버튼을 잘못 눌러서 곡의 일부를 지워먹었다. 곡목이 ‘최신’ 임을 알리는 "Brand New"고 그 외의 정보가 알려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정규 음반에 수록하기 위한 것이 아닌, 소니의 의뢰로 만들어진 프로젝트 성 녹음인 것 같다. 데모 테이프에 수록될 곡이 단순한 팝도 아니고 재즈 훵크라니 지금에 와서도 놀라운 일이다. 워크맨을 세계 최초로 발매한 소니의 기술력과 함께, 일본 대중음악의 수준이 이 정도 된다는 것을 세계만방에 과시하기 위한, 당시 시쳇말로 "잘 나가던" 일본이 보여주는 자신감의 발로가 아니었을까? 카세트테이프의 시대가 가고 CD와 MP3의 시대가 오면서 이 곡을 애써 듣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심야괴담회>를 기획하고 제작하면서, 무슨 이유에선지 나는 이 곡을 가끔 인터넷에서 찾아들었다. 유년기의 금제를 깨고 솟아오르는 브라스에 온 정신을 맡겼던 기억과 교양에서는 예능 시스템이 절대 안착할 수 없다는 또 다른 금제를 지금 내 손으로 깨뜨리고 있다는 희열이 닮아 있었나 보다. 게다가 ‘정말 새로운’ 일을 벌이고 있다는 자부심이 은연중에 이 곡으로 이끌었던 것 같다. 인생을 규정할 만한 취향을 만들어주었던 최초의 기억이, 내 이름을 건, 첫 프로그램의 등장을 알리는 또 다른 진군나팔이 되어주다니, 이 얼마나 행복한 원환인가! 누군가 자신은 음악 듣기를 포기한 것 같다며 ‘어떤 대상을 꾸준히 좋아할 수 있는 능력도 엄청난 재능’이라고 말해준 적이 있다. 나는 아직도 음악을 들을 때면 가슴이 뛴다.
내게 재능이라는 게 있다면 이런 것이 아닐까? 얼마 전 헬 카페의 권 사장님과 음반을 나눠 들으면서 원하는 판을 못 구하면 잠이 오지 않는다는 말에 맞장구를 쳤던 기억이 난다. 중년의 사내들이 여전히 첫사랑의 달뜬 열정을 구가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음악이라는 생명수의 힘이 아닐까 싶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사회가 내게 요구하는 바는 많아지고, 그만큼 나는 낙엽처럼 지쳐간다. 하지만 이런 취향 안에서라면 나는 소년처럼 영원히 푸르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