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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경 Sep 04. 2020

함께 산다는 것

  저희 집엔 수컷 고양이 별이가 삽니다. 작년 추석 즈음부터 같이 살았으니, 일 년이 다 되어 가요. 800그램 손바닥만 했던 녀석은, 이제 품에 안으면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지는 5킬로그램 어른으로 자랐습니다. 사람을 좋아하는 사랑스러운 고양이입니다. 손님이 오시면 숨는 게 아니라, 스스럼없이 다가가 앞다리를 가지런히 모은 채  동그란 눈을 반짝거립니다.

  하지만, 또 모든 순간 사랑스러운 건 아닙니다. 그동안 별이는 제가 좋아하는 진회색 인조가죽 소파 표면을 발톱으로 긁어 우둘투둘하게 뜯어 놓았고, 날카로운 발톱으로 책상 표면을 할퀴어 추상화를 그려 놓기도 했습니다. 제가 각별히 아끼던 독 쿠리 난도 잎마다 잘라먹어 까까머리를 만들었습니다. 독쿠리난의 매력은 수묵화처럼 유려한 포물선을 그리는 ‘잎’에 있는데 말이에요.

  그뿐이 아닙니다. 사방 온 데에 털이 휘날립니다. 거실을 한 바퀴 돌고 온 로봇 청소기 뱃속에는 엉킨 갈색 털이 한 뭉치가 있고, 빨래를 할 때마다 세탁기에서 또 고양이 털이 뭉쳐 나옵니다. 모니터 표면, 가구 표면, 컴퓨터 표면까지 갈색 털이 침범했습니다. 가장 손질하기 어려운 것은 검은색 스웨터. 털이 사이사이 박혀 빼내기 정말 어렵습니다. GG를 던졌습니다. 포기.

  그렇지만, 또 골치 아픈 일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땅과 맞닿아 있는 저희 집은 습기가 바로 올라와 그리마들의 출몰이 잦은 편입니다. ‘돈벌레’라 불리는 다리가 많은 녀석은 다리가 얼마나 많은지, 파도치듯 움직입니다. 비록 익충이라 할 지라도 존재 자체가 긴장감을 줍니다. 외모 갖고 평하긴 미안하지만, 범접하기 어려운 징그러움이 있습니다. 그런데 올여름엔 축축함에 비해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잠든 사이에 별이가 그 녀석들을 내쫓는지, 잡아먹던지 하는 모양이에요.

  그런 별이가 요즘 로미오가 되었습니다. 옆집 고양이 둥이는 암컷 길고양이인데, 옆집에서 거둬 키우십니다. 집 안팎을 자유롭게 왔다 갔다 하며, 주변을 둘러보고도 길을 잃지 않는 걸 보면 신기합니다. 저희 집 주방 창문 앞에서 둘의 경계성 대결 후, 둥이의 날카로운 발길질로 저희 집 방충망에 스크래치가 생겼습니다. 이 이후로 저흰 북쪽 창문은 닫아 둡니다. 별이 냄새가 흘러 나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요. 하지만, 이 똑똑한 고양이 둥이는 이제 남쪽 창문으로 와 포효하는 울음소리로, 별이를 부릅니다.

  방충망 안쪽에서 별이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바라보고, 울고 합니다. 보다 못한 제가 단호하게 커튼을 치거나 창문을 닫으면 별이는 야아아옹! 하며 그 근처를 빠른 걸음으로 왔다 갔다 합니다. 제가 몬터규 가의 어머니가 된 듯해요. 이럴 땐 나가 둥이랑 놀라고 방충망을 열어 주어야 하는지, 지금처럼 집안에 가둬 두어야 하는지, 정말 헛갈립니다. 집 밖과 안을 자유롭게 오가는 둥이의 몸은 군살 없이 단단하고, 24시간 집에만 머무는 별이의 몸은 갈수록 두리뭉실해집니다.

 

  별이와 함께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날개를 달고 세상을 탐색하도록 지켜봐 주는 걸까요, 문을 닫고 안전하게 돌보는 걸까요? 생명과 함께 생활한다는 것은 끊임없는 갈등 상황에 맞닥뜨리는 걸 의미합니다. 뜯어진 소파, 구석마다 굴러다니는 털 뭉치, 까까머리가 된 독쿠리난부터 시작해 옆집 고양이와의 조우까지.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을 배우는 과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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