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러닝화를 신고 나오자마자 새파란 하늘이 저를 맞아 줍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맑고 파란 하늘입니다. 저도 모르게 고개를 45도 들어 올려 하늘을 마주 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표정이 얼굴에 피어오릅니다. 무장해제된 채 와아- 소리를 내며 웃습니다.
해가 떴어도 더위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달리기 딱 좋은 계절입니다. 이렇게 파란 가을 하늘을 보면 애국가가 생각납니다. '가을 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 없이 밝은 달은 우리 가슴 일편단심일세~' 3절입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하는 1절보다 3절이 더 낭만적이에요. 저만의 1절입니다.
'공활'하다는 것은 '넓게 활짝 트인다'는 의미입니다. 가을 하늘은 넓게 활짝 트여있습니다. 그 하늘을 보는 제 가슴도 넓고 활짝 트입니다. 가슴이 후련해요. 그저 신을 신고 문 밖으로 나와 자연을 만나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마법.
산책로에서 만나는 작은 자연이라도 재미있는 것들이 아주 많아요. 저 멀리서 백로 두 마리가 날아와 물 위에 슬라이딩하는 장면도 볼 수 있고, 까만 고양이가 길을 뛰어가는 것도 볼 수 있고, 참새떼와 함께 달리는 경험도 할 수 있어요. 청설모와 아이 컨택하는 우연도 손에 꼽을 만큼 짜릿해요.
비 온 다음 날엔 시원하게 흐르는 냇물에 손을 넣어 볼 수도 있고, 벚나무 잎과 악수를 할 수도 있고, 강아지 풀을 손안에 넣어 쥐었다 폈다 하며 놀 수도 있고, 소나무 잎 두 개를 입안에 넣고 씹어 볼 수도 있습니다. 이 모든 활동이 그저 운동화를 신고 밖에 나가는 것으로 가능해요.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요. 게다가 무료입니다.
집안에서 '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밖에서 '느끼는' 건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이야기입니다. 바람이 살살 불 때는 피부를 통해 느껴지지만, 바람이 거세게 불 때는 나뭇잎이 춤추는 소리, 귓불을 때리는 소리가 몸에 부딪히는 물리적 저항과 함께 공감각적으로 느껴지거든요. 집안에 있을 땐, 바람이 2D로 느껴진다면, 집 밖에서는 아이맥스 영화 같아요.
달리며 길에 시선을 두었다가, 옆의 나무들을 바라보다, 저 멀리 뜨기 시작하는 해를 바라봅니다. 발아래 길은 달려도 달려도 똑같이 느껴집니다. 그런데 옆을 보고 달리면 운동 에너지가 느껴지며 덜 지루해요. 꽤 잘 달리는 러너가 된 듯해요. 또 시선을 저 멀리 하늘로 던지면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느껴요.
스트레스받는 상황일수록 너무 먼 미래를 보거나, 현재의 걱정거리만 보면 매몰되어 헤어 나오기 어려워집니다. 늪처럼 자꾸 빠져들어요. 이럴 때, 오감을 예민하게 벼리는 건 현재에 집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됩니다. 일단 운동화를 신고 밖에 나가 걷는 게 중요해요. 햇빛은 세로토닌을 형성해, 행복한 느낌을 증가시켜 주기도 하니까요.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에서 2단계로 완화되었습니다. 그래도 안전해지려면 시간과 노력이 더 필요합니다. 바퀴벌레와 코로나 19, 칡덩굴은 아무리 긍정적으로 바라보려 해도 마음이 너그러워지지 않아요. 코로나 19가 이대로 쫓겨가면 좋겠습니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신 모두를 응원합니다. 다, 지나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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