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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경 May 25. 2022

어둠 속에서 피어난 꽃

  작년 4월부터 월간 샘터에 식물 에세이 '반려 식물 처방'을 연재하고 있다. 50년 넘은 역사를 자랑하는 국내 최장수 문화 교양지 월간 샘터는 오프라인에서 튼튼하게 자란 뿌리 깊은 나무다. 샘터는 매거진 기사를 온라인 매체인 네이버 포스트에 업데이트한다. 샘터 포스트의 구독자 중 '반려 식물 처방'을 받아보는 사람은 약 9,900명이다. 이번 달 식물 에세이의 조회 수는 세 자리가 되지 않는다. 아무리 신경을 쓰지 않으려 해도 조회 수, 구독자 수, 판매지수 같은 숫자는 계속 눈에 채인다.


  창작자가 중요한 세상이라고 한다. 모두 콘텐츠를 만드는 창작자 모시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최근 연재하고 있는 N사의 플랫폼에서 창작자는 잠을 줄여가며 글을 생산한다고 말한다. 플랫폼은 트래픽을 몰아준다. 트래픽이 많이 나와 이름이 알려지면 소득이 발생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현재를 갈아 넣는다. N사, D사, K사 메인에 올라 조회 수가 일곱 자리까지 나와도 트래픽은 단지 트래픽이다. 트래픽은 사과 한 알, 떡볶이 한 접시 사주지 못한다.


  매일 글 한 편을 쓰는 데 두 시간이 걸리면 최저 시급으로 2만 원. 한 달이면 60만 원어치는 되어야 노동으로서의 부가가치가 있다. 구독자가 하나도 없는 채널에 세 시간마다 한 번씩 글을 업데이트하며 비상을 꿈꾸던 어떤 창작자는 절필을 선언했다. 김지수 기자의 인터뷰 '인터스텔라'에 등장한 경영사상가 찰스 핸디는 말했다. 그는 인생 후반부에 대기업 임원에서 교수로, 작가로 직업을 바꿀수록 즐거움은 커지는 대신 소득은 줄더라고 했다. 정말 그럴까.


유튜브에서 드로우앤드류 채널이 추천 영상으로 떴다. 3년 전부터 채널을 개설해 키우는 것을 지켜보았다. 출간 제의를 했다 물먹기를 여러 번, 기어이 출간 계약을 하고 ⟪럭키 드로우⟫가 베스트셀러가 되는 걸 지켜보았다. 그는 작년 초까지만 해도 한 달 수입이 100만 원 정도였는데 지금은 한 달에 대기업 연봉만큼 벌고 있다고 말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걸 알아내고, 열정으로 그 갭을 메우며 그래프가 상승 곡선을 그릴 때까지 버티라는 말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지 않으면 돈을 벌어도 허무감이 밀려 들어온다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먼저 찾으라 두 번 강조한다. 유튜브 채널을 키워 100억을 벌었다는 어떤 유튜버는 자기 직업을 포기한 데서 오는 상실감을 토로하고 있었다.


좋아하는 일이란 어떤 걸까.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건 갈아 넣어도 아깝지 않은 일이다.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할 때는 놀이와 똑같다. 놀아도 놀아도 재미있기 때문에 밤을 새우더라도 할 수 있고, 잠을 줄여도 할 수 있다. 어떤 목적이 없이 순수하게 좋아하는 일. 그럴 땐 좋아하는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게 아깝지 않다. 그렇게 들이 들이 파다 보면 바위 틈에 자리 잡은 금계국처럼 자연스럽게 꽃을 피운다.


 글의 조회 수가 0이라는  그야말로 순수한 놀이라는 의미다. 내가 나를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사용하는 가장 럭셔리한 일이다. 글을 쓰는 일은 내게 가장 재미있는 일이다. 내가   글에 처음으로 좋아요를 누를  내가 나를 진정으로 아끼고 귀하게 여기는 느낌이 든다. 내가 나를 사랑해야 다른 이도 사랑할  있다.


그런데 요즘 조회 수가 0이 아니다. 내 글을 구독해 주시는 분들은 진짜 나를 응원하시는 분들이다. 구독자 수가 폭발적으로 늘지 않아도 나는 그분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낀다. 내 시간을 아껴주기 위해 아무 말 하지 않으시고, 오로지 내가 꿈을 이뤄 가는 길을 응원하시며 계속 구독해 주시고, 에너지를 보내주시는 분들이다.


덕분에 문학의 꿈을 꿀 수 있다.


어린 시절 소아암으로 동생을 잃었다. 우리 가족에겐 덮어두고 다시 들춰 보고 싶지 않은 아픈 일이었다. 굳이 기억을 꺼내는 것조차 피가 뚝뚝 떨어지는 상처를 후비는  같았다. 어린 시절 누군가를 잃은 경험은 그렇다. 그런데,    소아암을 겪는 아이의 가정은 30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이야기를 풀어 세상에 꺼내야 한다는 소명 느꼈다. 그런 일을 겪고 있는 아이들이 있다면,  일이 일어난 것은 너희 탓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이별은 슬프고 아프지만, 최선을 다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 슬플 땐 엉엉 울고, 아플 땐 징징거리라고, 꽁꽁 싸매고 무겁게 살지 않아도 괜찮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게 콘텐츠의 힘이 아닐까.


정재경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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