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내일이 오늘보다 못할 수도 있다

2025 공예트렌드페어, 최선혜 작가의 '깨진 그릇' 앞에서

by 정재경
화려한 코엑스의 조명 뒤편, 검은 커튼 속에 숨겨진 칠흑 같은 어둠. 그곳에서 마그마처럼 끓어오르는 빛을 만났습니다. 산산조각 났기에 비로소 빛을 품게 된 항아리. “노력해도 내일이 오늘보다 못할 수도 있다”는 작가의 고백 앞에서, 취약함을 드러내는 용기를 배웠습니다.

2025년의 끝자락, 코엑스의 공기는 들뜬 연말의 설렘과 창작의 열기로 빽빽했다. 공예트렌드페어 전시장을 걷기 시작한 지 어느덧 세 시간이 지나 있었다. 영감은 마음을 가득채웠으나, 몸은 지치기 시작했다. 이제는 그만 보고 어딘가에 앉아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질 무렵이었다.


“이쪽에 숨겨진 전시실도 있어요.”

스태프 한 분이 못 들은 척 그냥 지나치려는 내 마음을 읽었는지 벽처럼 보이던 검은 커튼 자락을 슬며시 들어 올렸다.


커튼 너머는 다른 차원으로 통하는 입구 같았다. 화려한 조명으로 번쩍이는 바깥과 다르게 커튼 안쪽은 깊은 동굴처럼 칠흑 같은 어둠이 깔려 있었다. 본능적인 두려움이 발목을 잡았다. 미지의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일은 언제나 용기를 필요로 하니까.


하지만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속삭였다. ‘괜찮아. 이곳은 전시관이야. 위험할 게 없어. 오히려 저 어둠 속에 진짜가 있을지도 몰라.’ 엄마의 허락을 얻고서야 안심하고 미지의 골목을 탐험하는 어린아이처럼, 조심스럽게 어둠 속으로 발을 디뎠다.


어둠에 눈이 익숙해질 즈음, 공간의 가장 깊은 안쪽에서 강렬한 빛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깊은 산속 오두막 안 화로에서 타오르는 불꽃 같기도 했고, 갈라진 바위 틈새를 비집고 흐르는 마그마처럼 뜨겁고 붉은 주황색 빛이었다. 그 빛의 근원은 놀랍게도 ‘산산조각 난 항아리’였다.


어떻게 저토록 처참하게 부서진 파편들이 무너지지 않고 서 있을 수 있을까? 경이로움에 동공이 확장되었고, 나도 모르게 작품 바로 앞까지 성큼성큼 걸었다. 깨진 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빛은 상처에서 흐르는 피가 아니라, 그 상처를 견뎌낸 생명력처럼 보였다. 넋을 잃고 바라보는 내 표정을 읽었는지, 곁에 있던 스태프가 다가와 말을 건넸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정재경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8년째,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일 쓰는 사람

4,914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1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176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