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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재 Oct 29. 2022

켈리 최의 ‘엄청난’ 학력 관련
논란 총정리

"우리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거짓말을 한다. 실제보다 잘나 보이고 싶거나 못나 보이기 싫어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해서, 또는 곤란과 불편을 면하기 위해서 거짓말을 한다."

- 라르스 스벤젠 <거짓말의 철학>에서 인용 -




일본과 프랑스 최고의 대학교를 졸업하였다는 켈리 최의 화려한 학력에 대하여


이 글과 이어진 여섯 가지 글의 주제는, '켈리 최의 사례 분석을 통해서 확인하고 싶은 질문들' 중에서 다음 질문을 검증해 보기 위한 것이다.

"3. 켈리 최의 학력, 경력, 관점들이 '대한민국을 이끌 차세대 리더'로 선정되어 한국 사회가 귀감으로 삼고 지식과 지혜에 귀를 기울일 만한 인물인가?"


일본과 프랑스에서 손꼽히는 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였다


켈리 최는 2021년도에 발간되어 20만 권 이상이 팔렸다는 그녀의 베스트셀러 책 <웰씽킹>에서 "거의 무일푼으로 일본에 간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대학교를 다녔다. 하지만 졸업 후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일본에서 의상디자인을 전공하여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다." "프랑스에서 대학을 졸업했을 때"라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파리에서 도시락을 파는 여자>에서는 "나는 프랑스에서 손꼽히는 디자인 학교 두 곳을 졸업했다. 일본에서 공부한 것까지 따지면 나는 대학교를 세 군데나 다닌 셈이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이미지 출처: 구글 북스 연관 검색어 '켈리 최 대학'에 검색된 켈리 최의 책 중에서 본문의 일부분 화면 갈무리


어떤 신문 인터뷰


켈리 최가 2019년도에 진행된 신문 인터뷰에서, 켈리 최의 대학 졸업과 관련하여 켈리 최가 밝힌 인터뷰 기사는 다음과 같았다.


이미지 출처: 주간조선 홈페이지에 공개된 인터뷰 기사 (2019.10.24) 중 일부분 화면 갈무리


켈리 최의 학력에 대한 한국 대중들의 인식


켈리 최가 책에서 기술한 내용과, 신문 기사와 인터뷰 등에서 켈리 최가 말한 내용이 뒤섞이며 조금씩 다르기는 해도 공통적으로 한국의 대중들에게 인식되고 있는 켈리 최의 학력 사항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일본에서도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교를 졸업하였다. 둘째, 프랑스에서도 손꼽히는 대학교를 두 군데나 졸업하였다. 글로벌 기업을 이끄는 회장님에 걸맞은 대단한 학력이다.


혼재되어 있는 내용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일본과 프랑스에서 3개의 대학교를 졸업하였다'이다. 게다가, 일본에서는 '의상디자인 전공'으로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하였고, 프랑스에서 졸업한 대학은 평범한 대학이 아니라 '프랑스에서 손꼽히는 대학교'를 '두 곳이나 졸업'하였다고 한다.


이미지 출처: 구글 '켈리 최 학력' 검색으로 찾은 공개 자료의 일부 화면 갈무리, 링크: https://jiyoupiano.tistory.com/59
이미지 출처: 구글 '켈리 최 학력' 검색으로 찾은 공개 자료의 일부 화면 갈무리, 링크:https://youwin0427.tistory.com/3368


일본과 프랑스 대학 졸업은 켈리 최의 인생에서 최고의 순간이었을 듯


켈리 최는 난독증으로 중학교 시절에도 성적은 꼴찌에 가까웠고, 가난해서 일반 고등학교에 진학하지도 못하고, 낮에 와이셔츠 공장에서 일을 한 뒤에서야 밤에 산업체 부설 야간 고등학교를 눈물겹게 다녔다고 말한다.


'고난에서 성공으로'라는 켈리 최의 스토리텔링 방식에 따르면, 1980년대 말에 20대의 여성으로 거의 무일푼으로 일본에 가서 온갖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졸업하였다는 일본 대학교와, 불어를 한 마디도 하지 못하고 무턱대고 날아갔다던 프랑스에서의 명문 대학교 졸업은, 와이셔츠 공장에 일하면서 힘들게 다녔던 산업체 부설 야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마침내 정점을 찍는 최고의 순간이었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이 정도 성공적인 유학 스토리라면, 책이나 인터뷰에서 많은 시간을 들여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야간 고등학교 시절의 몇 배는 할애하였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이미지 출처: 구글북스 검색, 켈리 최의 '웰씽킹' 일부 화면 갈무리
이미지 출처: 여성 조선, 2022년 3월 16일 자, 인터뷰 기사 중 일부 화면 갈무리


일본과 프랑스 대학 졸업 이야기는 한국 대중에게 더 큰 감동을 줄 듯


켈리 최가 그녀의 책과 많은 인터뷰에서 '일본과 프랑스에서 대학을 졸업하였다'라고만 말할 뿐 자세히 밝히고 있지 않아서 궁금하고 아쉬웠다. 일본과 프랑스에서 어떤 3개의 대학교에 입학을 하였으며, 어떻게 각 나라에서 언어 문제를 극복하고, 어떤 일을 해서 부담스러운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었고, 어떻게 그렇게 어려운 패션 공부를 2개국에서 3개의 뛰어난 대학교를 성공적으로 졸업을 하였는지를 자세하게 이야기해 준다면 한국 대중들에게 더 큰 감동과 용기를 줄 듯하다.



'복장학원'은 뭐지?


그런데, 한국 대중들의 관심과 인기를 얻기 전에, '영국 여왕보다 부자'나 '글로벌 기업 회장'이라는 타이틀로 유명인이 되고 여세를 몰아 베스트셀러 책을 발간하기 전인, 2018년도에 켈리 최가 진행한 인터뷰 기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미지 출처: 2018년 4월 21일 자, 조선일보 홈페이지 사회면 이혜운 기자 인터뷰 기사 중 일부 화면 갈무리


한국에서 유명해지기 전에는 꾸밀 것 없이 더 솔직하지 않았을까?


2018년 4월 21일 자로 조선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는 일본에서 '이케부쿠로 복장학원'에 다녔다고 켈리 최가 밝히고 있다. '이케부쿠로 복장학원'을 Ikebukuro Fashion School 등의 연관 검색어로 검색하였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이케부쿠로(Ikebukuro)는 도쿄의 부도심 지역인 이케부쿠로를 말하고, 해당 지역에 위치한 복장학원에 다니지 않았을까 추정해 볼 수 있었다. 인터넷으로 검색되지 않는 동일한 이름의 작은 복장학원이 있거나, 과거에 있었는지는 확인하지 못하였다.


[나중에 추가] 어느 일본 유학생의 증언

켈리 최('켈리'는 나중에 프랑스에 가서 '금례' 대신에 쓰기 시작한 가명이니 일본 유학 당시에는 본명 '최금례')와 동일한 시기에 일본에서 유학하였고, 실제로 이케부쿠로 역 근처에서 최금례 씨를 몇 번 만난 적이 있다는 어느 독자분께서 A4용지 50페이지에 달하는 꼼꼼하고 방대한 당시 자료와 그녀에 대한 분석 및 의견을 보내주셨다.

해당 자료에 따르면, (자료 제공자의 어학원 동기가 최금례 씨와 같이 문화복장학원을 다녔고, '얼마나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다'라고 최금례 씨를 걱정하는 말을 수차례 들었다고 증언하고 있기 때문에 충분히 신뢰할 수 있는 정보라고 생각된다) 최금례 씨가 문화복장학원에는 입학을 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중도탈락 또는 졸업 여부는 확인할 수 없었다. 문화복장학원은 도쿄 요요기(시부야)에 위치해 있으나, 당시 복장학원 사정으로 이케부쿠로 역 부근에 있는 맥도널드 매장 옆 건물에서 일부 수업이 진행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이케부쿠로 지역과 (문화)복장학원을 조합하면 '이케부쿠로 복장학원에 다녔다'는 말은 정확하지는 않지만 완전한 거짓은 아닌 셈이다. 작고 사소한 것도 크게 자랑하는 성향에 비추어, 그래도 나름대로 명성이 있었던 '문화복장학원'의 이름을 밝히고 자랑하지 않는 것을 보면, '문화복장학원'과 '최금례'라는 구체적인 이름이 명시되어 누군가 알아보기를 원하지 않거나, 비자 연장과 체류 조건이 까다로웠던 당시(80-90년대) 일본에 "거의 무일푼으로" 갔다는 7년간의 일본 체류와 관련하여 드러내고 싶지 않은 사연이 있는 것은 아닌가 짐작이 된다는 개인적인 의견과 관련 자료를 보내오셨다.


복장학원


'복장학원'은 우리나라에서 사용하고 있는 학원과는 다른 일본식 표현으로 '패션 학교' 정도로 번역할 수 있고, 주로 직업학교(vocational school) 위주의 교육 과정을 운영하고 있었다. 복장학원의 규모에 따라서 소수의 학위 과정도 소개되어 있었다. 켈리 최가 복장학원에 다녔다면, 직업 과정을 밟았는지 학위 과정을 밟았는지는 확인하지 못하였다.


최근에 일본에 거주 중인 교민께서 '복장학원'에 대해서 설명해 주셨다. 일본 현지 교민의 설명에 따르면, "복장학원이라는 곳은 아마도 일본 복장 전문학교라고 짐작합니다. 일본은 특정한 직업을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전문학교가 많습니다만 대학과 동등한 학력은 아닙니다." 따라서, '복장학원'은, 현재 인터넷으로 검색되는 대로, 직업 교육과 실무 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전문학교로 이해할 수 있었다.


복장학원과 일반 대학교는 다르지 않나요?


'복장학원'은, 서양식 교육기관 분류에 따르면, 학위 과정(학사/석사/박사)을 공부하는 Higher Education(HE, 고등교육기관, 대학교)이라기보다는, 직업 교육을 포함한 패션 실무 위주의 Further Education(FE, 평생교육기관, 전문학교)으로 분류될 수 있다고 이해할 수 있었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일본에서 복장학원을 다녔는데', 이력서나 자기소개서에 '일본에서 대학교를 졸업하였다(학사 학위를 취득했다)'라고 표기한다면, 이는 교육기관 분류 기준에 따른 정확한 표현이 아닐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 경우가 있다면, 학력을 위조하였다거나, 학교명에 의도를 갖고 손질을 가한 것으로 평가받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일본에 가서 '살짝' 공부하고? 일본에서는 '전문학원'에 다녔다?


2016년 3월 29일에 KBS 아침마당 인터뷰 코너에 등장한 켈리 최는 "일본에 가서 살짝 공부하고"(4분 44초-)라고 언급을 하고 있다. "살짝 공부하였다"라는 것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7년이나 체류하였다는 일본에서.

https://youtu.be/LCucju4PFjE?si=EmTw2teKwJT6JGHa&t=280


2018년 4월 13일 자 김미경 MKTV 유튜브 방송에서 출연하여, 한국에서는 "복장학원"을, 일본에서는 "전문학원에 다녔다"(12분 10초-)라고 밝히고 있다. https://youtu.be/UptBNzGwiwg?si=8nAs_EkR0RErywkp&t=726  


따라서, 2019년 이후에, 2021년, 2022년에 지속적으로 켈리 최가 자신의 책과 여러 인터뷰에서 말하고 있는 '일본에서 대학/대학교를 졸업하였다'와 차이가 있음을 지적할 수 있다.


이미지 출처: 구글북스(Google Books), 2021년도에 발간된 켈리 최의 책 '웰싱킹' 검색 결과 화면 일부 갈무리


"거의 무일푼으로"으로 일본으로 가서, '아르바이트로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하며 '대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을까?


현재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한 교민은 "당시 일본 물가를 고려하면, '학원'이었다고 해도 유학생 신분으로 아르바이트로 생활과 학업을 이어간다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으로 예상이 된다."라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었다. 가능했다면 "대체 일본에서 무슨 일을 했나?"라는 의문과 함께.


이미지 출처: 신사임당 유튜브 채널 2020년 11월 20일 자 공개 영상에 일본 거주 교민이 제시한 의견 갈무리


당시 일본에서 박사 학위 과정을 포함하여 7년간 유학하였고, 그녀와 몇 번 마주친 적이 있다는 독자분의 의견에 따르면, "그녀의 인터뷰를 보면, 일본 유학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정상적으로 일본 유학을 하였다면 불분명할 수 없는 내용들이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유학생이라면 당연히 알아야 하는 내용을 모르고 있는 듯이 보인다. 또는 절대로 그럴 수가 없는데 그렇게 말하고 있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당시 일본의 엄격한 체류 조건에 미루어 짐작을 해 보면, "문화복장학원 재학 기간 이후에 아르바이트가 아닌 정상적인 취업은 불가능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프랑스로 가기 전까지 일본에서 7년 동안을 머물렀다고 언급하고 있으니) 정황상, 합법적인 체류 자격으로 거주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한다."라는 개인적인 의견을 덧붙였다.


"당시 20대 외국인 여성이 일본에 체류하면서 일반적인 돈벌이는 가능하지만 소득이 한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90년대 한국의 경제력에 비해서 일본의 물가는 체류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비용이 들었고, 거의 무일푼으로 가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대학교를 졸업하였다는 그녀의 스토리는 개인적으로 믿기가 어렵다."라고 분석하였다.


체류 자격, 비자 문제


프랑스 대사관에 가서 "내 인생 책임질 거예요?"라고 호통도 치고, 뛰어난 실행력과 결단으로 일본과 프랑스로 종횡무진 거침없이 다녔다는 그녀의 드라마틱한 유학 스토리에 대해서 호주에 거주하는 교민 한 분이 제시한 의견이 있었다. "무슨 돈으로?" "비자는 어떻게 받아서?"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해외 체류 경험이 있는 분들이 예민한 부분이 체류 자격, 즉 비자 문제이고, 해외에서 비자 갱신의 어려움을 대부분 경험하였기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의문일 것이다.

 

이미지 출처: 유튜브 공개 영상에 대한 호주 교민의 의견 화면 갈무리


당연히 당시 일본에서도 사증(비자)과 재류자격인정 증명서를 교부받아야 했었다고 한다. 재류자격인정 증명서 신청 시에 유학 당사자의 일본 유학 중에 발생하는 경비가 충분히 준비되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 자료를 제출하여야 했다. 거의 모든 학교에서 '재정 증빙 자료'를 받고 있었고, 유학 지원자 본인 또는 보호자의 예금 잔고 증명서, 과거 수년간의 수입 증명서, 과세 증명서 등이 필요하였다. 따라서, "거의 무일푼으로 가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대학교를 졸업하기란 제도와 구조상 불가능하다고 하겠다.


이러한 절차를 알면서도 '어렵게 공부했다'는 사실을 과장하다 보니 '거의 무일푼으로 가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대학교를 졸업하였다'라는 비현실적인 표현을 한 것인지? 아니면, 일본 대학교에서 실제로 이런 절차를 진행해 본 경험이 없어서 모르는 것인지?


일본 복장 학원에 다니려면 얼마가 필요했을까?


일단 최초에 일본으로 왔을 때는 어학교(어학원)에 등록하여 1년 6개월에서 2년 정도의 일본어 능력 시험(JPT) 준비를 하였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까다로운 일본 정규 대학교에 비해 입학 조건이 느슨했던 전문학교(문화복장학원)라 무난하게 입학을 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당시 패션(의류)을 배우고자 하는 한국인들이 선호하던 곳이 에스모드 재팬, 문화복장학원, 도쿄 모드 학원이었다고 한다. 해당 전문학교의 학비는 입학금을 포함한 최초 연도 필요 금액은 에스모드 재팬이 160만 엔, 문화복장학원이 130-150만 엔, 도쿄 모드가 120만 엔 수준이었다고 한다. 패션을 전문으로 하는 교육기관이므로 실습과 실기가 필수였기 때문에 해당 학비에 교재비와 실습 재료비는 별도로 추가된다. 따라서, 상당히 많은 비용이 필요했었다.


부담스러웠던 체감 환율


90년대 초 엔화 환율은 원화 대비 5배에서 7배 정도였고, 90년대 후반에는 10배에 이르기도 했다고 한다. 100엔이 500원이나 700원 정도로 생각할 수 있지만, 당시 한국의 경제력과 비교하면 체감 환율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부담스러웠다고 한다. 5-7배의 환율로 130-150만 엔의 문화복장학원의 학비를 변환하면 최저 650만 원에서 1000만 원 내외의 학비가 필요했다. 그것도 입학 첫 해 1년 학비만. 게다가 교재비와 실습 재료비는 별도로.


도쿄 지역 거주 생활비


유학생으로 당시 도쿄 지역에 거주할 경우에 소요되는 기본 경비를 추정해 보면(당시에 유학을 하셨던 분이 제공해 주신 자료에 근거하여 추정), 도쿄의 경우 6만 엔 이하의 방을 임대하기가 어려운 편이었고 최소로 다다미 4.5조 사이즈 방을 임대했을 경우(다다미 6조란 다다미 여섯 장 넓이를 뜻하며 대략 3평 정도의 공간이다. 다다미 4.5조란 다다미 넉 장 반 넓이로, 가장 작은 방을 뜻한다.) 월세가 4.5만 엔 정도였다. 유학생의 경우 4.5만 엔~8만 엔 정도의 범위에서 렌트를 하였고, 광열비 1만 엔, 교통비 약 5000엔(월 정기권), 식비 약 3만 엔(당시 빅맥 389엔, 규동(불고기덮밥) 400엔 수준)으로 월평균 10만 엔(주거비 4.5만 엔(최소로 잡아서), 식비+광열비 4만 엔, 교통비 5천엔, 보험/기타 1만 엔 적용) 정도의 최소 경비가 소요된 것으로 산정되었다. 연간으로 합산하면 120만 엔이다. 당시 환율로 변환하면 연간 600만 원~840만 원 정도가 필요하다.


학비와 생활비를 합하면 문화복장학원에 유학하려면 첫 해에 1년 동안 최저로 잡아도 환율에 따라 1250만 원에서 1840만 원 정도의 비용이 필요했었다고 할 수 있다.


켈리 최가 준비했다는 유학 비용


아시아경제 2022년 10월 24일 자 인터뷰 기사에 따르면, 월급 7만 원을 3년을 모아서 일본 유학을 떠났다고 한다. 어느 방송에서는 그 월급에서 부모님 용돈도 드렸다고 자랑을 했지만, 용돈은 간혹 한 번씩 드린 것으로 하여 무시하고,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100%를 고스란히 모아서 일본으로 떠난 것으로 계산해 보자. 36개월(3년 x12개월=36개월)에 월 7만 원을 곱하면 총액이 252만 원이다.


이미지 출처: 아시아경제 2022년 10월 24일 자 켈리 최 인터뷰 기사 중 일부 화면 갈무리


이것이 일본 유학생이나 교민이 "거의 무일푼으로 가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대학을 졸업하였다"라는 사실을 믿기 어려워하는 이유다


추정한 1년 최소 유학 경비(문화복장학원)와 비교하면 그녀가 밝힌 유학 경비는 너무나 터무니없이 차이가 난다. 그래서, 그녀의 일본 유학 스토리를 듣는 일본 유학생이나 일본 거주 교민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의문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일본에 취업을 목적으로 왔다면 모를까 장기 유학을 목적으로 준비한 경비로는 너무나 부족하다.


당시 일본에서는 기본적으로 '체류 자격 이외 경제 활동 금지'가 되어 있던 시기라 유학생의 합법적인 아르바이트가 어려웠던 상황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일본 문부과학성 및 외무성의 자료에 의하면, 일본 내 자비유학생의 약 67%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고, 한 달 평균 급여는 약 59,000엔 정도였다고 한다.


당시 유학생의 증언에 따르면 통계와 달리 월 10만 엔 이상의 수입도 가능했으며, 한국 유학생의 경우 90% 이상 대부분이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한다. 90년대, 한국인 유학생이 주로 하던 아르바이트는, 설거지, 단순 서빙, 음식 배달, 야간 청소(대부분 빠찡고), 전단지 배포, 비디오 배달, 건설 현장 잡부, 이삿짐 배송, 심야 도로 공사 신호수, 마트 배달 등이며, 어느 하나 쉬운 아르바이트는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상과 같은 아르바이트로는 학비와 생활비를 모두 충당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는 유학 경비 보조의 수준일 뿐이지 전적으로 의존하기는 불가능하였다고 한다.


물론, 고수익 아르바이트도 존재하였는데, 바로 유흥업이나 풍속업 아르바이트였다고 한다. "유흥업이나 풍속업 아르바이트의 경우, 공부를 하러 일본에 왔다가 금전적으로 현실적인 벽을 느껴서 생활비와 학비를 벌기 위해 일하는 경우, 쇼핑과 풍족한 용돈이 필요한 경우, 공부를 중도에 포기하고 아르바이트만을 하는 경우, 처음부터 유흥업 취업을 목적으로 학생비자 명목으로 일본에 입국하는 경우 등 다양한 사연들이 존재하였다"라고 증언하고 있다.


하여튼, "거의 무일푼으로" 일본으로 와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대학교를 졸업하였다"라는 그녀의 진술에 대해서 '대학교 졸업 여부'와 함께 '일본 체류 과정'에 대한 궁금증은 풀리지 않고 여전히 남아있다.


[팩트 체크] "아침저녁으로 신문을 돌리면서 학교에 다녔다"

일본 유학 독자분의 제보에 의하면, 한국인이 90년대에 일본에서 신문 배달을 할 경우, '신문 근로 장학생'이라는 제도로만 가능했던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한국에서 신문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간 지인들이 몇 명 있어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있다고 한다.

일본에서도 신문 배달은 매우 고된 업무로, 배달 인원이 항상 모자라기 때문에, 일본의 신문사들이 일정 기간 신문 배달을 하는 조건으로 한국 학생들에게 숙소를 제공하고, 새벽 배달 후 조식 1식을 제공하며, 학비(어학교 한정)를 지원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신문 장학생의 증언에 따르면, 새벽 2시 30분에 기상하여, 지역 사업소로 출근하여, 각 사업소로 배송된 신문에 해당 지역의 광고 전단지를 넣는 일을 시작하고, 새벽 3시경부터 조간 600~800부를 배달용 오토바이로 아침 06시 30분 정도까지 배달한 뒤, 어학원에 등교하여 일본어 수업을 하고, 하교를 한 뒤 사업소로 다시 출근, 오후 3시부터 석간 배송 준비를 조간 때와 똑같이 하고, 오후 6시경까지 배달을 해야만 했다고 한다. 신문 배달 중에 수금도 해야 하며 조간 석간 이외에 스포츠지와 잡지 등도 배송을 해야 하고, 1년 내내 거의 쉴 수가 없고, 어떤 기상 상황에서도 업무를 해야 하는 노동 강도가 상당한 일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웬만한 남자들도 중도 포기하는 고된 일이었다고 한다.

"아침저녁으로 신문을 돌리면서 학교에 다녔다"라는 진술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의견을 주셨다.

1. 신문 장학생의 경우 학비는 어학교(어학원) 과정만을 지원하였다.
2. 신문 근로 장학생이 다닐 수 있는 어학교(어학원)도 신문사에서 지정해 주는 곳만 가능하였다.
3. 한국에서 '신문 근로 장학생' 자격으로 선발되어 일본 체류를 시작하여야 했기에, '선발 과정을 거쳐 신문 근로 장학생으로 일본에 갔다'는 내용을 밝히지 않는 것을 보아 신문 근로 장학생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
4. 신문 근로 장학생의 근무 지역이 도쿄 도심이 아니라 이케부쿠로 역을 기준으로 전철로 1~2시간 이상 걸리는 외곽 지역이 주근무지였으므로 그녀가 공부하였다는 이케부쿠로 소재 복장학원을 기준으로 보면 아침저녁으로 왕복하며 신문 배달 업무를 수행하기가 어려웠을 것으로 추정한다.
5. 따라서, 신문 배달을 하는 신문 근로 장학생은 아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6. 그럼에도 신문 관련 업무를 하였다면, 신문 근로 장학생이나 배달이 아닌 신문 사업소(보급소)에서 배달 장학생들에게 간단한 아침 식사를 제공하였는데, 식사 준비나 청소, 또는 전단지 삽입 등의 업무를 한 것이 아닐까 추측할 수 있다.
7. 당시 도쿄 지역의 시급은 600-650엔 수준이었고, (공부를 하면서 시간을 내기가 힘들겠지만) 오전 3시간 오후 3시간 최대로 하루 6시간씩, 하루도 빠지지 않고 월 30일을 일했다고 가정하면, 시급 650엔 x 1일 6시간 x 30일 = 117,000엔으로 최저 생계비 수준으로 생활을 할 수는 있었지만, 몇 배나 많은 학비를 충당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추가 의견 정리) 만약에, 다양한 이유로 학교에 등록을 하지 않을 경우에는, 일단 학비에 대한 부담이 없어지고, 일하는 시간을 최대로 늘릴 수가 있어서 아르바이트지만 일본에서 생활을 하기가 훨씬 쉬워졌다고 한다. 다만, 학교에 등록을 하지 않아서 적법한 체류 연장이 불가능해지면서 불법 체류 상태가 된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하지만, 범죄에 연루되거나 누군가 신고를 하지 않는다면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당연히 정상적인 취업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당시 양 국가의 환율과 생활 수준을 고려하면 불법 체류라도 일본 체류를 선호하였던 사례가 다수 있었다는 시대적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정보화 혁명의 시대를 선도하고 있는 현재 한국에서도 암암리에 다양한 일을 하며 불법 체류하는 사례들이 있다고 하니, 30년 전의 일본에서도 충분히 가능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 90년대 일본 유학 정보와 현지 상황을 국가 통계 자료를 포함한 공적 자료와 개인 수집 자료를 함께 보내주신 독자님께 감사드린다.)


파리의 디자인 학교


그녀의 책 <파리에서 도시락을 파는 여자>에서는 "나는 프랑스에서 손꼽히는 디자인 학교 두 곳을 졸업했다. 일본에서 공부한 것까지 따지면 나는 대학교를 세 군데나 다닌 셈이다."라고 기술하고 있고, "내가 공부했던 세계적인 패션 학교, 에스모드(ESMOD PARIS)와 파리의상조합학교(École de la chambre syndicale de la couture parisienne 약칭 ECSCP)"라는 표현도 발견할 수 있었다.


'봉 쥬르'라는 프랑스어 인사말 한마디도 모르고 프랑스로 갔다고 무용담처럼 이야기를 하는 프랑스에서, 패션업계 종사자라면 누구나 꿈꾸는 프랑스 명문의 세계적인 패션 학교를 두 곳이나 졸업을 하였다니 그녀의 성취와 능력이 놀랍고 경이로울 뿐이다.


세계적인 패션 학교 2곳을 졸업하였다니 정말 대단하다


2022년 3월 22일에 출연한 KBS 아침마당의 방송 중에도, 파격적인 인생 스토리에 놀라움을 표시하며 야단스럽게 반응을 하는 MC들에게, 신나고 들뜬 켈리 최는 자랑하듯이 프랑스에서 졸업하였다는 두 개의 패션 학교를 언급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언급한 두 개의 학교가 동일하게 '에스모드 파리'와 '파리의상조합학교'이다.


이미지 출처: chat.openai.com에서 대화형 인공지능 ChatGPT 프로그램 대화 내용 일부 화면 갈무리



그 정도면 한국 패션 업계에서 귀한 인재가 아니었을까?


놀라운 것은, 두 개의 패션 학교가 모두 다 전 세계 패션업계 지망생들이 선망하는 대학이며, 명실상부한 프랑스 최고의 패션 학교들이다. 한 곳에 입학하고 졸업하기도 힘든 세계적인 패션 학교를, 만약에 켈리 최가 두 곳 모두를 졸업하였다면, 학력으로 보면,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한국 패션 업계를 떠들썩하게 만들 귀한 인재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 정도면 한국으로 금의환향하여 한국 패션업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인물이 되고도 남았고, 세계 패션 업계에서도 최고로 알아주는 충분한 학력을 갖추게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얼마나 대단한지 감이 잡히지 않을 것 같아서 부연설명을 하자면, 프랑스 패션계에서 두 학교의 위상은 한국에서 소위 최상위 명문대학이라고 불리는 SKY 중에서 두 개의 대학교에서 인기 학과를 졸업하였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나서 또 고대 법대에 들어가서 졸업한 느낌과 같다고나 할까. 하나로도 충분할 것 같은데 최고를 모두 섭렵하고야 마는 넘치는 능력과 재능의 탁월함이 눈이 부시는 수준이다. 그것도 한국어를 전혀 모르고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도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나서야 알았다는 동남아시아 출신 유학생이 이룬 성취라면. 그것도 한국어를 이해하지 못해서 휴학과 어학원 등록을 되풀이하였는데도 몇 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이룬 성취라면. 그것도 어린 시절에 난독증으로 성적이 거의 꼴찌에 가까웠고,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고등학교도 진학하지 못하고 공장에서 일을 하며 야간 고등학교를 다니던 동남아시아 학생이 낯선 한국에서 이루었다는 성취라면. 정말 대단하다고 여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믿기지 않는 성취를 이룬 그녀는 정말 대단하다.


하지만, 패션 업계에서 각광을 받을 수 있는 출중한 학력과 좋은 교육을 받았다면서, 꿈에 그리던 패션 디자이너로서의 경력을 왜 그만두었는지 상식적으로 현실적으로 이해하기란 어려웠다. (물론, 책에서 패션 디자이너를 왜 그만두었는지 나름대로 설명하고 있다. 아래에 정리해 두었다.)


이미지 출처: chat.openai.com에서 대화형 인공지능 ChatGPT 프로그램 대화 내용 일부 화면 갈무리


'파리의상조합학교'는 생 로랑의 창립자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 디올의 디자이너였던 피에르 가르뎅, 에르메스 디렉터 출신 장 폴 고티에(Jean Paul Gaultier) 등 세계적인 패션디자이너를 길러낸 곳이기도 하고, '에스모드(ESMOD PARIS)'는 170년 전통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의상학교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만큼 프랑스적인 정체성을 가장 깊이 간직한 학교라고 한다.


[그녀의 이유] 나는 왜 패션 디자이너를 그만두었나?

아시아 패션을 선도하던 일본에서도 우수한 성적으로 패션 전공으로 대학교를 졸업하고, 또 세계 패션을 선도하던 프랑스로 옮겨서 세계적인 프랑스 명문 패션 학교 두 곳을 모두 졸업하여, 학력과 교육 수준으로 보면 세계 최고를 달성한 그녀가 패션 디자이너를 그만둔 이유는 무엇일까?

<파리에서 도시락을 파는 여자> 본문 중에서 설명한 이유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프랑스에서 세계 최고의 패션 디자이너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직접 일을 해 보니 능력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꼈다. 프랑스 패션계에서는 최고가 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잘해야 중상위권 정도에 머무를 게 확실했다." (밀리앱 45-46페이지) --> 개인 능력의 한계 때문에 (프랑스 패션계에서 중상위권 정도 되는 패션 디자이너는 되기 싫어서)

2. "프랑스에서 패션계에 종사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하루 종일 20-30년을 일해야 겨우 자기만의 브랜드를 가질까 말까 했다. 게다가 세계적인 브랜드가 한순간에 망하는 사태를 목격하면서 이렇게 리스크가 큰 데다 노력에 비해 성과가 나기 어려운 일을 계속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밀리앱 48페이지) --> 프랑스 패션 업계는 미래 전망이 없고, 리스크가 크고, 노력에 비해 성과가 나지 않기 때문에

3. "나는 어렸을 적부터 '최고가 되고 싶다'는 욕구를 항상 가지고 있었는데, 패션계에서는 그렇게 될 수 없다는 걸 이미 깨달은 터였다. 패션계로 돌아가면 일이 잘 풀려도 고만고만한 디자이너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밀리앱 49페이지) --> 패션으로는 최고가 되기 어려웠기 때문에

그녀가 패션 디자이너를 포기한 이유를 한 마디로 정리하면, "개인적인 능력의 한계를 느꼈고, 패션 업계는 미래 전망이 없고, 리스크가 높고, 노력에 비해 성과가 나지 않는 업종이고, 패션으로는 최고가 되기 힘들 것 같아서 패션 디자이너를 그만두었다."라는 이유였다.

그 이후에 친구와 사업을 하다 실패하고 우울증으로 칩거하다, 심기일전하여, 패션업계로 돌아가지 않고, 대신에 요식업을 창업하기로 결정하였다고 한다.

(다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온갖 아르바이트도 하고, 민박도 하고, 관광 가이드도 하고, 밑바닥에서 닥치는 대로 일하면서 생활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학벌을 가진 프랑스 패션 디자이너로서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선택이라 생각된다. 위에서 밝히고 있는 패션업계를 떠난 추상적인 이유 외에, 그 고생을 하면서도 패션업계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특별한 사연이 있지 않고서야 이유를 수긍하기가 힘들었다. 물론, 그녀가 '세계 최고 수준의 패션 학교를 졸업하고 프랑스 패션 디자이너가 되었다'라는 사실을 전제로 할 때 그렇다는 이야기다.)

[나의 의문]

그래서, 세계 패션을 선도하는 "프랑스 패션계에서 중상위권 정도 되는 패션 디자이너는 되기가 싫어서" 패션업계를 떠나서 온갖 아르바이트도 하고, 아무것도 없는 밑바닥에서 힘들게 살면서, 민박도 하고 가이드도 했는지? 그것도 엄청난 세계적인 명문 대학교를 일본과 프랑스에서 3곳이나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힘들게 졸업하고 마침내 꿈에 그리던 패션 디자이너가 프랑스에서 되었는데도?

언어 문제 등으로 프랑스에서 자리를 잡기가 힘들면 한국으로 돌아와도 되었을 것 같은데? 일본과 프랑스에서 졸업한 그 정도 학벌이라면 당시 패션 분야에 있어서 한국인 중에서는 최고일 것 같은데? 방송과 언론에서 떠들썩하게 대서특필하고 한국 패션계에 혜성처럼 등장할 수 있었던 엄청난 학벌을 갖추고서? 프랑스인 남편을 만나서 3개월 만에 결혼하기 전까지 왜 그렇게 프랑스에서 '밑바닥에서' 힘들게 살고 있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상식적으로 이해하고 공감하기가 어려웠다.

차라리, "결국 패션 학교를 졸업하지 못하고 정식 패션 디자이너가 되는 꿈을 이루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한다면, 언어 문제나 재정의 어려움으로 공부를 끝내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프랑스 현지에 남아서 프랑스인 남편과 결혼할 때까지 온갖 일을 해 가며 지낸 상황으로 이해하기가 쉬울지도 모르겠다.

또 "패션 디자이너 밑에서 미싱사나 봉제사로 그들이 시키는 일이나 하면서 견디는 것도 힘들었고, 그렇게 20-30년을 견딘다고 해도 패션 디자이너가 될 수 있다는 미래에 대한 전망도 없어서 어렵사리 입사한 패션 회사를 그만두고 뛰쳐나왔다"라고 말한다면, 패션업계를 포기한 상황을 상식선에서 이해하고, 그래서 온갖 아르바이트도 하고 민박도 하고 현지 가이드도 하면서 살아야 했던 타향살이의 어려움을 공감하기가 오히려 쉬울 것 같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최고가 되고 싶다'는 욕구를 항상 가지고 있었는데


2017년에 출판된 <파리에서 도시락을 파는 여자> 중에 패션 디자이너를 포기한 이유를 설명하면서 "나는 어렸을 적부터 '최고가 되고 싶다'는 욕구를 항상 가지고 있었는데"라는 표현이 있다. 그래서, '최고가 되지 못할 것 같아서 패션 디자이너의 길을 포기하였다'라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최고로 살았거나, 최소한 최고가 되기 위해서 노력하며 살아온 것 같은 느낌을 전달한다. 역시 현재 한국에서 형성된 개인 브랜드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강화시킨다.


하지만, 2021년에 출판된 <웰씽킹>에는 반전의 표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책 속에 어린 시절의 곤궁함과 무관심 속에 자란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옛 추억에 젖어 긴장을 너무 많이 풀어놓았는지 솔직하게 "(어린 시절에) 성적은 꼴찌에 가까웠다."라고 말하고 있다. "방학 숙제를 한 번도 해 간 적이 없을 정도였다."라고 덧붙인다. 마치 "나는 이런 것까지도 솔직하게 까는 사람이다."라고 증명하듯이. "그래도 내 말 못 믿겠니?"라고 속삭이듯이.


이미지 출처: 구글북스 검색, 켈리 최의 '웰씽킹' 일부 화면 갈무리


과거와 현재의 불일치를 해소하려는 심리적 경향


'꼴찌'는 '최고'와 어울리지 않는다. 물론, 최고가 되고 싶다는 욕구는 있었지만 실제로 성적은 꼴찌일 수도 있다. 언제 그런 욕구가 생겼는지 모르지만, 하여튼, '최고가 되고 싶다'는 욕구를 가졌는데 '꼴찌'를 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항상 최고가 되고 싶었던 꼴찌'라는 모순은 상당히 예외적이다.


어린 시절 '꼴찌'라는 표현은, 이전에 했던 다른 표현들과의 상관관계를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편집 과정을 통해 여과되지 못한 채 수록된 과거의 사실일 수도 있고, 또는, 솔직함을 드러내어 독자들의 신뢰감을 끌어올릴 (하지만 현재의 이미지에 타격을 주지 않는) 적당한 요소로 집필과 편집 과정에서 추가하고 남겨 놓았을 수도 있다.


그에 비해, 어린 시절부터 '최고가 되고 싶었다'라는 표현은, 현재 최고 경영자나 최상위 부자 등으로 만들어진 '최고'의 이미지를 연결시켜 과거와 현재의 불일치를 해소하려는 심리에서 나온 것은 아닌가 짐작해 본다. 이러한 표현으로, 과거의 결핍이나 콤플렉스를 충족시키고, 과거(경험)와 현재(자기)의 불일치에 따른 심리적 불안과 불편함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동시에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라는 훈련된 반응을 독자들로부터 이끌어 내게 될 것이다.


여우와 신포도


이솝우화에 '여우와 신포도'이야기가 있다. 높이 달린 달콤한 포도를 먹고 싶지만 손에 닿지 않으니 시어 터진 맛없는 포도라고 자신을 위로하며 코웃음을 치던 여우의 이야기다. '최고가 되고 싶은데 최고가 되기 어려울 것 같아서, 패션 업계는 미래 전망이 없고, 리스크가 크고, 노력에 비해 성과가 나지 않기 때문에 모든 꿈을 포기하였다'라는 그럴듯한 논리가 여우의 코웃음처럼 현실성 없이 허황되게 들린다.


따라서, 위에서 서술한 패션 업계를 떠난 이유들이, 실제로는 밝히기 싫은 외부적인 이유와 조건 때문이었지만, 모두 자신의 판단과 결단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마음 편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의문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솝우화의 여우처럼. 특히, 패션 업계를 벗어난 그녀의 나머지 삶을 살펴보자면.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았다?


켈리 최가 신사임당 유튜브 채널의 2020년 11월 2일 자 영상에(6분 28초부터 6분 40초) 나와서, 관광 가이드와 민박집을 시작하기 전에 파리에서 어렵게 살던 자신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저는 빠리에서 살고 있는 한국 여자다. 그 불어도 그렇게 잘하지 못하고, 뭐 인제, 돈도 없고, 빽도 없고, 부자 부모도 없고, 경험도 없다. 근데..."


세계 패션 업계에서 알아주는 최고의 학력과 탁월한 교육을 받았다면, 프랑스인 남편을 만나서 결혼하기 전까지, 직장을 옮겨 다니고,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고, 현지 가이드와 민박집을 하는 어려운 방식으로 살았는지 몹시 궁금하다.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할 대단한 학력과 능력을 감추고서? 마치, 그런 탁월한 교육과 학력을 가질 수 없었던 사람처럼, "아무것도 없는 밑바닥에서", 여러 다양한 직종을 옮겨가며 어렵게 살아야 할 이유가 궁금하다.


이미지 출처: 구글 북스 검색, 켈리 최 '파리에서 도시락을 파는 여자' 중 일부 화면 갈무리
이미지 출처: 매경이코노미 제2158호 2022년 5월 6일 자 관련 기사의 일부 화면 갈무리


또다시 공부를 시작하려던 이유는?


켈리 최는 그녀의 책 '파리에서 도시락을 파는 여자(다산북스, 2017)'에는 "다시 공부를 시작하려던 차였다."라는 대목을 발견할 수 있다. 2019년 이후의 책이나 인터뷰에서 기술하고 있는 시간 순서를 따라가 보면, 그녀가 '다시 공부'를 하려고 했던 시기는, 이미 대학교를 졸업하고, 사업에 실패하고, 빛 더미에서 '아무것도 없는 밑바닥에서' 괴로워하며 힘들게 보내던 시기로 묘사되고 있다. 그래서,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며 견디고 있었다고 한다.


"주로 한국인들과 일하다 보니 프랑스어가 유창하지는 않았지만 일상적인 의사소통은 가능했고, 다시 공부를 시작하려던 차였다." 그런데, 그 시기쯤에 방을 빌려 주라는 친구에게 힌트를 얻어서, 민박과 현지 가이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시점이다.


이미지 출처: 밀리의 서재, '파리에서 도시락을 파는 여자' (2017년 6월), 도서 요약 중 일부 화면 갈무리


그 후에는 프랑스인 남편을 만나서 3개월 만에 결혼하기 전까지 민박과 현지 가이드 일로 생활을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다시 공부'를 시작하지는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서 의문점은, 2022년 방송에서 따르면, 이 때는 벌써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프랑스 패션 스쿨 두 곳을 졸업한 이후의 시점인데, 2017년도 책에서는 왜 '다시 공부를 시작하려고 했느냐'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이해하자면, '다시 공부를 시작하는 것'은 '마치지 못하거나, 중단했던 공부를 다시 시작'하거나, 또는, '새로운 지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서 다시 공부를 시작'하는 경우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켈리 최가 "왜 다시 공부를 시작하려고 했는지?"는 책에서 명확하게 밝히고 있지 않았다.


혼란스러운 프랑스 대학 진학 정보들


봉쥬르도 비행기를 타서 알았다고?


2016년 3월 29일에 KBS 아침마당 인터뷰에서는 (4분 55초부터-)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었다.

https://youtu.be/LCucju4PFjE?si=HseWRST-19_ACm-c&t=296

켈리최: "돈도 없고... 아무것도 없지만 일단 프랑스 가는 비행기를 탔어요.
사회자: "아무것도 없이?"
켈리최: "녜"
사회자: "프랑스어는 하구요?"
켈리최: "아 못했죠. 봉쥬르도 그때 비행기 타서 알았어요."
사회자와 관객들: "와~ 하하하하하하"
사회자: (용기를 칭찬하듯이 감탄하며) "야~ 어떻게 갈 생각을 해요? 말도 못 하는데..."


그녀가 쓴 책에 따르면 켈리 최는 프랑스 유학을 결심하자마자 바로 프랑스 학교를 알아보고, 프랑스에 머물 숙소를 구하고, 한 달 후에 프랑스로 떠날 비행기 표까지 예매하였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프랑스 대사관을 찾아가니, 담당자가 비자가 나오려면 6개월이 걸린다고 했단다. 그래서, 담당자에게 "뭐라고요? 한 달 후로 프랑스에 방도 잡아 놓고 여기 생활도 정리했는데, 못 가게 되면 내 인생 책임질 거예요?"라고 물러서지 않고 항의해서 '운이 좋게' 한 달 후에 프랑스로 떠날 수 있었다고 한다. 자신의 결단력과 실행력을 강조하기 위한 사례같이 보이는데, 스토리의 진행과정이 정말 흥미진진하고 드라마틱하다. 불어로 인사말이 봉쥬르라는 것도 프랑스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나서야 알았다는 스토리도 유사하다.


프랑스 학교도 알아보고 프랑스에 머물 숙소도 구하고 프랑스행 비행기 표도 예매를 하였다고 하면서도 불어로 '안녕(봉쥬르)'이라는 인사말도 비행기를 타고나서야 알았다? 그렇다면, 프랑스 대사관에서 유학생 비자를 받기 위해서 진행한 유학생 비자 인터뷰를 할 때도 봉쥬르(안녕)라는 가장 기초적인 인사말도 몰랐다는 뜻이다. 유학을 위해서 프랑스 대사관에서 진행된 비자 인터뷰에서 비자 담당자를 만났을 때 일반적으로 하는 첫인사 '봉쥬르' 대신에 어떤 나라 언어로 어떻게 프랑스 대사관에서 프랑스 비자 담당자에게 인사하고 인터뷰를 진행하였는지 몹시 궁금하다.


그런데, 프랑스 대사관에서 항의해서 비자가 일찍 나왔다?


게다가, 한 달 뒤로 예약을 해 놓았는데 비자가 나오는데 6개월이 걸린다는 답변을 듣고 프랑스 대사관 비자 담당자에게 "뭐라고요? 내 인생 책임질 거예요?"라고 따져서 6개월이 걸리는 비자를 한 달 만에 받았다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기초적인 인사말 봉쥬르도 모르면서 어떤 언어로 어떻게 항의해서 통상 6개월이 걸리는 비자를 예외적으로 한 달 만에 받았는지 궁금할 뿐이다. 다양한 국가의 대사관에서 비자 인터뷰를 진행한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말이 되는지를 논리적으로 따지지 않고 그녀가 던져주는 스토리만으로 상상을 하면 한 편의 주말 드라마를 보는 듯이 극적이다.


비자가 나오기를 기다린 한 달 동안은 대체 무얼 했나?


프랑스로 가서 세계 최고의 패션 디자이너가 되고자 하는 강렬한 열망으로 프랑스행을 결정했다고 책이나 인터뷰에서 수없이 밝혔고, 이미 프랑스어를 배울 학교(어학원)도 정하고, 프랑스에 머물 숙소도 정하고, 프랑스행 비행기 표도 구입을 하였고, 프랑스 대사관에서 유학생 비자 인터뷰를 끝내고 비자가 나오기를 기다린 시간만 해도 한 달이었다. 그런데, 프랑스로 가기로 결정하고 비자만 나오면 바로 프랑스로 떠날 것이라며 기다렸다는 그 한 달 동안에 프랑스어 인사말 '봉쥬르' 하나 정도도 배우지 않고 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고 대체 어떤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 궁금할 뿐이다.


목적 없는 도피가 아니고 꿈과 목표를 가진 유학이라면 준비와 태도에 많은 아쉬움이 있다고 지적하고 싶다. 유학 국가의 언어는 학교 입학을 위한 필수 요소일 뿐만 아니라 학교 수업을 따라가고 나아가 유학의 성공과 실패에 영향을 주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이다. 가장 기초적인 인사말인 "봉쥬르(안녕)도 비행기를 타고 나서야 알았다"라는 부실한 유학 준비 때문에 "학비는 비싼데 말이 안 들려 매일 울면서 등교를 하였다"거나 "(불어를 알아듣지 못하고 수업을 따라가지 못해서) 휴학을 하고 다시 어학원에 등록하고 다시 학교에 재편입"을 하는 어려운 시련과 수많은 시행착오를 현지에서 겪지 않았을까 짐작할 수 있다.


만약 떠밀리듯이 갑자기 떠나게 된 프랑스행이라면 이해할 수 있을 듯


일본어 연수 기간을 포함한 학교 재학 기간 등의 체류 기간이 제한되어 있고 비자 연장이 상당히 까다로웠던 당시 일본 상황에 비추어 20대 미혼 외국인 여성이 7년을 합법적인 체류 조건으로 일본에서 생활하고 견디기란 쉽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상상해 보면, 만약에 어떤 사람이 프랑스로 유학을 왔는데 '봉쥬르를 프랑스행 비행기를 탈 때까지도 몰랐다'던 이유를 설명하면서, "일본 정부의 단속이 심해지면서 더 이상 일본 체류는 힘들었다. 그렇다고 이런 상태로 한국으로 돌아가기는 싫었다. 같은 처지에 있었던 사람들이 미국 보다는 유럽 쪽이 옮기기가 쉽다며 떠났다. 알아보니 생활비가 도쿄보다 오히려 적게 든다고 하고, 어학연수 형태로 입국 비자를 받기가 쉽다고 하고, 이왕이면 마치지 못한 패션 공부에 대한 미련도 있고, 그래서 떠밀리듯이 갑자기 프랑스로 떠나게 되었다. 그래서 불어라고는 공부할 틈이 없었다."라고 누군가 고백을 한다면, 프랑스로 유학을 간다면서도 '비행기를 탈 때까지 프랑스어로 안녕이라는 인사말조차도 몰랐다'라는 설명에 충분히 이해를 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프랑스에 머물 숙소와 어학원 선정 등의 전 과정을 돈만 주면 알아서 다 해주는 대행업체나 유학 알선업체를 통해서 진행하여 자신이 특별히 불어를 알아야 할 일이 없었다"라고 덧붙인다면 '프랑스행 비행기를 타는 순간까지도 불어로 인사말이 봉쥬르라는 사실을 몰라도 되었을 수도 있겠다.'라고 수긍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희망과 열정을 품고 떠난 프랑스행이라면 기본적인 인사말 정도는...


하지만, 책이나 인터뷰에서는 "일본에 가 보니 패션 용어가 모두 불어로 되어 있고, 패션이 모두 프랑스에서 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패션의 본고장인 프랑스로 가서 패션 공부를 하고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열망과 열정을 품고 프랑스로 가게 되었다"라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일본에서 패션 공부를 계속하였다면 프랑스어에 지속적으로 노출이 되었을 것이고, 프랑스로 가서 성공하겠다는 희망과 열정을 오랫동안 품고 있었고, 마침내 프랑스로 가기로 결단하고, 앞서 언급한 전체 유학 준비 과정을 본인이 정상적으로 처리하였다면, 기본 중의 기본인 프랑스 인사말 봉쥬르 정도는 비행기를 타기 전에 알았을 가능성이 높다. 아니, 모르기가 어려웠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래서, 극적인 효과를 위해서 어떤 부분은 사실이 아니거나, 어떤 부분은 과장되었을 개연성이 있다고 짐작할 뿐이다.


혹시나 1


그리고, 혹시 그녀의 사례를 듣고 똑같이 프랑스 대사관 비자 담당자에게 "모든 것을 예약해 놓았는데 비자가 늦게 나오면 어쩌냐?"라며 "내 인생 책임질 거예요?"라고 따지고 항의하지 않기를 바란다. 역효과가 날지도 모른다. 비슷한 상황에 처했을 때 그녀 같은 배짱이 없어서 그런지 "내 인생 책임질 거냐?"라고 비자 담당자에게 거칠게 항의를 하지는 못하고, 대신에 (대부분 그렇듯이) "급한데 어떻게 빨리 나오는 방법은 없겠느냐?"라며 공손하게 두 손을 모으고 담당자에게 읍소를 한 적은 있다. 하지만 대사관의 정상적인 업무 절차대로 진행되어 내가 원하는 일정대로 비자를 일찍 발급받지는 못하였다.


개인적인 의견으로, 비자 발급이 필요한 국가의 대사관에 가서 비자 담당자에게 그녀가 했다는 방식대로 항의를 하거나, 아니면 울고 불며 호소한다고 해서 정상적인 절차보다 비자가 일찍 발급될 가능성은 희박하고, 또 발급 절차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는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 달 만에 비자를 받았다면, 불어를 하나도 모르고 어학연수를 목적으로 어학원에 지원하는 20대 미혼 여성이 "내 인생 책임질 거예요?"라고 항의를 한다고 해서 깜짝 놀란 프랑스 대사관이 특별히 우대해서 긴급으로 비자를 발급한 것이 아니라, 한 달 만에 나올 수 있는 비자가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혹시나 2


또, 혹시나 "봉쥬르도 비행기를 타고 나서야 알았다"는 그녀의 사례를 일반화하거나 모델로 삼고 유학 준비에 적용할까 걱정이 되어서 이 글의 마지막에 '[추가 2] 2023년에도 여전히 그녀의 학력이 우리 사회에 전하는 메시지'의 형태로 의견을 추가해 두었다.


6개월 만에 편입에 성공, 또는 어학연수 기간 1년


2016년 아침마당 인터뷰에서는, 파리에 가서 "6개월 만에 편입에 성공하였으나, 불어가 들리지 않아서 불어 공부를 위해서 울면서 휴학을 하였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아침마당에 2022년도에 출연을 하였을 때는, "언어학교를 등록하고 프랑스로 갔고, 어학과정을 1년 정도 하였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프랑스어를 한 마디도 못했지만 편입학 가능


뉴스비전미디어 2023년 3월 28일 자 인터뷰에 따르면, "프랑스어를 한 마디도 하지 못했지만 편입학에 성공하였다"라는 드라마틱한 무용담처럼 기술되어 있다. 하지만, 켈리 최가 졸업을 하였다는 권위 있는 패션 학교에서는 100% 불어로 면접이 진행된다는 곳도 있었다. 프랑스의 풍토와 두 패션 학교의 위상이 프랑스어를 한 마디도 하지 못하는 외국인 학생의 편입학을 받아주었을 것으로 기대하기도 어렵고, 또, 그런 방식으로 입학이 가능했을 것으로 솔직히 믿기도 어려웠다.


이미지 출처: chat.openai.com에서 대화형 인공지능 ChatGPT 프로그램 대화 내용 일부 화면 갈무리


프랑스어를 한 마디도 몰랐지만 입학이 가능하였을 수도


책이나 인터뷰에서 당당하게 자주 언급을 하고 있기 때문에 "프랑스어를 한 마디도 몰랐지만 입학에 성공하였다"라는 그녀의 말이 사실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프랑스어를 한 마디도 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프랑스 대학에 입학이 되냐?"라고 따지고, 말도 안 되는 거짓말로 몰아가면 억울할지도 모르겠다.


단, 가능하였다면, 프랑스어로 입학시험과 면접을 치른다는 (본인이 언급하고 있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패션 학교나 대학교의 패션 디자인 정규 과정이 아니라, 한국이나 일본의 복장학원과 유사하게 패턴, 봉제 등의 실무 위주의 인력 양성을 위한 무명의 패션 학교라면, 한국에서 와이셔츠 공장에도 다녔고, 한국과 일본에서 양재학원을 다니며 배운 미싱과 바느질 등의 기능으로도 (미싱사 등이 뛰어난 의사소통 능력이 필요하지 않은 직종이니) '불어를 몰라도' 입학은 가능하지 않았을까 짐작해 볼 수는 있을 것 같다.


만약에 이러한 추정이 사실이라면, "프랑스어를 한 마디도 몰랐지만 입학에 성공하였다"라는 말은 진실로 인정해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최고의 패션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랑스 명문 패션 학교를 두 곳이나 졸업했다"라는 말은 뻥이되니 이것은 어떻게 설명할지 기대가 된다.


정리가 필요한 프랑스 대학 진학 정보들 - 편입, 휴학, 재편입, 복학, 신입학


여성조선 2022년 3월 16일 자 인터뷰에 따르면, 프랑스 유학의 과정은 "한 학년 마치고 휴학하고', "학원 다시 등록하고", "재편입"하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한 학년을 마치고 휴학을 한 것은 '대학교'나 '패션학교'를 말하고, 다시 등록한 학원은 '어학원'을 지칭하고 있는 것으로 추측이 된다. 패션 학교나 프랑스 대학교를 다니다가 도저히 못 따라가서 휴학하고, 불어를 배우기 위해서 다시 어학원에 등록을 한 것으로 이해가 된다. 하지만, '재편입하고'라는 말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휴학 후에 다시 공부를 시작하는 경우에 사용하는 일반적인 표현은 휴학 후 '복학'이다. '편입학'은 이전 학력을 인정받고 새롭게 '입학'하는 경우를 말한다. '재편입'은 '복학'이라는 용어를 잘 못 사용하였을 수도 있고, 다른 학교로 새롭게 '다시 편입학(재편입)'한 것일 수도 있고, 같은 학교를 중도 탈락이나 제적 후에 이전 학점을 인정받으며 '재입학'을 한 경우를 재편입으로 표현한 것일 수도 있겠다. 정확하게 어떤 상황을 '재편입'으로 설명하였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이미지 출처: 여성조선 2022년 3월 16일 자 인터뷰 기사 중 일부 화면 갈무리


켈리 최는 인터뷰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다시 다른 학교에 입학"을 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다양한 언론 인터뷰에서 켈리 최가 언급한 학교들을 근거로 추측하면, 여기서 '학교를 졸업"하였다는 첫 번째 학교는, 세계적인 명성의 패션학교인 '에스모드 파리(ESMOD PARIS)'를 지칭하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같은 인터뷰에서 '파리 에스모드에 편입'한 것으로 밝히고 있다. 일단, 켈리 최가 '에스모드 파리'를, 프랑스어를 한 마디도 못했지만 '편입학'에 성공하고, '휴학'을 해 가면서 마침내 '졸업'을 한 것으로 인정하자.


이미지 출처: 여성조선 2022년 3월 16일 자 인터뷰 기사 중 일부 화면 갈무리


다음으로, 켈리 최의 여러 인터뷰를 통해서 추정해 보면, 위에서 "다시 다른 학교에 입학하고"에서 '다른 학교'란 또 다른 세계적인 명문 패션 학교인 '파리의상조합학교'를 지칭하는 것으로 추측이 된다.


프랑스어를 한 마디도 못하고, 일본의 '복장학원' 학력으로도 프랑스 명문 패션학교인 '에스모드 파리'에는 '편입학'이 가능했는데, 프랑스에서 인정하는 명문 패션학교인 '에스모드 파리(ESMOD PARIS)'를 성공적으로 졸업을 하고도, 또, 수준 높고 치열한 에스모드 파리의 교육과정을 성공적으로 이수하였다면 프랑스어도 유창한 수준에 도달하였을 것 같은데, 왜 '파리의상조합학교'는 '편입학'이 아닌 '신입학'으로 '다시 다른 학교에 입학'을 하였는지도 상식적으로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물론, 대학의 위상과 규정에 따라 이전 학력을 인정하고 편입학을 수용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반드시 편입학을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일본 복장학원의 자격으로 불어를 전혀 모르고도 편입학이 성공했다면, 이미 세계적인 명성의 프랑스 패션학교를 졸업한 학력이 있었다면 이 번에는 편입학이 더 용이하지 않았을까 짐작을 해 보는 것이다.


정리가 필요한 시간 정보들: 아, 기간이 맞지 않아요!


1988년과 1995년


2017년 11월 17일 자 조선일보 인터뷰 기사에 따르면, 켈리 최는 1988년에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고 한다. 그리고, 7년 후에 프랑스로 갔다고 한다. 7년 후면 1995년이 되겠다.


이미지 출처: 조선일보, 2017년 11월 17일 자 관련 인터뷰 화면 일부 갈무리


2004년


그리고, 대학을 졸업할 무렵에 광고회사를 하던 친구가 동업으로 제안했고, 9년 동안 회사를 운영하였다고 한다. 프랑스에서 학교에 다녔다는 기간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시간 계산을 단순하게 하기 위해서, 프랑스에 도착하자마자 1995년에 바로 사업을 시작했다고 하고 9년을 더하면 2004년이다.


이미지 출처: 조선일보, 2017년 11월 17일 자 관련 인터뷰 화면 일부 갈무리


2010년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진행한 2017년이 스시 프랜차이즈 사업을 진행한 지 7년이 되었다는 시점이라고 말하고 있으니, 2010년에 사업을 시작하였다고 추정할 수 있다.


이미지 출처: 조선일보, 2017년 11월 17일 자 관련 인터뷰 화면 일부 갈무리


2008년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2년 동안 시장조사를 했다고 한다. 2년을 빼면, 2008년이다.


이미지 출처: 조선일보, 2017년 11월 17일 자 관련 인터뷰 화면 일부 갈무리


'2008년에 프랑스인 남편을 만나게 되고 교제 3개월 만에 결실을 맺었다'라고 하니 대충 결혼 후에 사업 준비를 위해서 소요된 2년 기간이라고 추정해 볼 수 있다.


2006년


광고사업에 실패하고 10억이나 되는 빚더미에서 우울증과 대인 기피증으로 세상을 등지고 2년 동안 집 안에 갇혀 지냈다고 한다. 2년을 빼면, 2006년이다.


이미지 출처: 조선일보, 2017년 11월 17일 자 관련 인터뷰 화면 일부 갈무리


2004년과 2006년


일본에서 프랑스로 온 시기에 친구와 광고사업을 했다는 기간을 더하면 2004년이었다. 스시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한 시점에서 관련 기간을 역산하면 2006년이다. 그 중간에 프랑스인 남편과 만나서 결혼하기 전까지 현지 가이드와 민박을 하며 생활하였다는 기간이 있다. 또, 어디 디자인 회사에 근무를 하였다거나, 어디 백화점에서 근무를 하였다고 언급한 기간들이 있다. 하지만, 해당 기간이 정확하게 언제인지 얼마나 되는지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에 산정하지 않았다. 또, 일부 기간이 서로 겹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민박 운영과 현지 가이드를 포함한 다른 경력을 기간 산정에 제외하여 중복 기간에 대해서 보정을 하는 것으로 하였다.


대충 줄이고 늘였을 가능성: 겨우 2년


아래위로 추정된 2004년과 2006년의 기간에 포함되지 않은 과정이 있다. 켈리 최가 프랑스에서 대학교를 다니거나 패션 학교를 다녔다는 교육 기간이다. 2004년과 2006년은 겨우 2년이 남는다. 프랑스에서 어학원도 다니고, 또, 두 개의 명문 대학교나 두 개의 세계적인 패션 학교를 졸업하기에는 기간이 너무 짧다.


그렇다면, 해당 인터뷰에서, 그녀가 정확한 연도와 사실에 근거하지 않고, 필요에 따라서 대충 줄이고 늘여서 이야기를 했을 가능성이 있다.


또 하나의 짐작: 남겨진 2년


'행복이 가득한 집' 2021년 1월호 인터뷰 기사에서 '남겨진 겨우 2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대한 흥미로운 힌트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미지 출처: 행복이 가득한 집, 2021년 1월호 인터뷰 기사 중 일부 화면 갈무리


친구와 함께 광고 사업을 시작하기 전의 상태를 설명하고 있다. 프랑스어가 늘지 않아서 많이 힘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나 보다. "직장 생활을 이어갈 것인지, 학업에 다시 도전할 것인지, 미국으로 유학지를 변경할 것인지..."


'학업에 다시 도전을 한다'는 전제는, '이전 학업이 실패하였다'는 의미를 내포하는 표현 방식이다. 그리고, 친구와 사업을 시작하였기 때문에, '학업에 다시 도전할 기회는 없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래서, 추정되어 남겨진 2년의 짧은 기간에 대한 또 다른 짐작이 가능하다. 대학을 제대로 다니지 못했거나, 중도 탈락하였거나.


남겨진 2년은, 두 개의 프랑스 대학교나, 두 곳의 프랑스 명문 패션 학교를 졸업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다.


하지만, 남겨진 2년은, 프랑스에 도착하여 어학원에 등록하여 불어를 처음부터 배우기 시작하고, 불어가 늘지 않아서 고민하고, 학력 조건이 충족되지 않아서 정규 대학교는 지원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대신에 선택한 어떤 패션 학교는 지원을 해서 떨어지고, 어떤 패션 학교는 조금 다니다가 그만두고, 체류 비자 연장을 위하여 어쩔 수 없이 다시 어학원에 등록을 하고, 그래서, 이런 상태로 프랑스에 계속 있어야 할지, 차라리 미국으로 유학지를 변경하는 것이 어떨지 고민하고 갈등하기에는 적당한 시간이다.


따라서, '남겨진 2년의 기간'과 '학업에 다시 도전을 한다'라는 표현은, '두 개의 프랑스 대학교를 졸업하였다'거나, '두 곳의 세계적인 프랑스 명문 패션 학교를 졸업하였다'라고 책이나 인터뷰를 통해서 공표된 사실들에 대하여 합리적인 의심을 제기하게 만든다.

 

정직하게 있는 그대로


모든 말을 앞 뒤가 맞게 정교하고 치밀하게 짜내지 못하고 허술할 바에야, 차라리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말한다면, 말하는 사람은 그때그때 피곤하게 머리를 굴릴 필요도 없고, 듣는 사람은 경계심을 품거나 긴장하지 않고 편하게 읽거나 들어줄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자랑하고 과시하려는 욕망을 자제하지 못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정직해지기보다는 이런저런 이야기로 둘러대며 상황을 과장하거나 회피하자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거짓의 무한 루프


문제는, 사람들이 새삼스럽게 사실을 고백하고 정직해지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꾸며낸 사실을 꾸며낸 사실로 덮다 보면 점점 거짓의 크기가 너무 커져서 어느 순간을 넘어서면 더 이상 정직해지기가 어려운 상황이 된다는 점이다. 이것을 밝히거나, 이것이 밝혀지면 '많은' 것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습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은 정직해질 방법을 찾는 것이 아니라, 거짓을 믿게 만들 또 다른 거짓을 둘러대고, 정직이 가져 올 손해를 피할 방법을 찾는다.


"지금 정직하게 밝혀서 당장에 많은 것을 잃어버리는 것보다는, 나중에 밝혀질 수밖에 없는 순간이 올 때까지 일단 외면하고 부정을 하면서 견디면, 그때까지는 현재의 지위는 계속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혹시, 대중의 관심이 시들해지고 별 탈 없이 넘어가주면 좋고."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리와 합리화가 '지속적으로' 거짓말을 해 온 사람들이 '새삼스럽게' 고백하고 정직해지기가 힘든 이유이다. 그래서, 자발적인 동기로 고백하고 정직해지기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세상의 압박과 여론으로 '모든' 것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생기기 전까지는 절대로 정직해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여론이 악화되어 '모든 것'을 잃는 것보다, 고백하여 '많은 것'을 잃는 것이 조금 더 나을 것 같다는 손익 계산이 끝나기 전까지는 입을 열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대부분 우리의 삶에서, 모든 것을 잃을 것 같은 극한 상황이 올 가능성은 아주 희박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당장에' 고백하고 정직해질 필요가 없다. 계산 끝. "지금은 모른척하고 그때가 되면 정직해지지 뭐."


거짓말 조금 하는 것이 뭐 어때서?


거짓과 정직에 대한 감각과 분별력을 상실한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서는 거짓말을 하는 행위에 대해 아무런 고민과 갈등이 없다. 그저 본능에 충실한 것일 뿐이다. 특히, 어린 시절에 부모 곁을 떠나게 된 경우, 성장하면서 거짓말을 하다가 혼이 나는 등의 방식으로 부모의 가르침을 받지 못하거나, 적절한 교육환경에 노출되어 '거짓말은 나쁜 것이다'라는 훈육과 도덕 교육의 기회를 갖지 못하며 성장하여, '거짓말을 하는 행위'에 대한 윤리적 가치 기준이 올바르게 형성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거짓말을 해도 양심이 찔리거나 죄책감이 없다. 거짓으로 '지어내어나 둘러대는' 행위를 오히려 상황에 재치 있게 대응하고 잘 넘겼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간혹 자신의 허술한 거짓말이 드러나는 경우가 있더라도,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에 부끄러워하기보다는 '거짓말이 드러났다'는 사실에 신경질이 날 뿐이다. 거짓말을 한 자신보다, 그런 거짓말을 밝히는 쓸데없는 일에 인생을 허비하는 인간들이 더 지질하고 한심하다고 비하하며 스스로 정신 승리를 할 뿐이다.


게다가, 그동안 거짓말을 하면서도 발각되지 않고 어떻게든 잘 살아온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서는, 거짓말의 무한 반복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거짓말을 하는 행위에 대한 내적 갈등이 없으니까. 거짓말에 대한 죄책감이 없으니까. 거짓말을 하는 것이 이익이니까. 게다가, 순진한 세상 사람들에게 거짓말이 먹혀드니까. 화나고, 안타깝고, 슬프게도.


"대답할 가치도 없다"라고 회피하는 것이 가장 쉬울 듯


한국 사회에 한 번씩 부는 근거 없는 음모론으로, 또는, 켈리 최를 시기질투한 지질한 인간들이 벌이는 파렴치한 행태로 몰아가며, "대답할 가치도 없다"라고 무시하며 '대답을 회피하는 방식'으로 논란을 피해 가려고 할지도 모르겠다. 또는, 추종자를 부추겨 "왜 상관도 없는 학력을 갖고 괜히 시비를 거느냐?"라고 옹호하고 논란의 방향을 돌리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켈리 최의 학력에 대해서 문제를 삼는 것이 아니다. 개인의 소양에 문제가 있어서겠지만, 학력을 최대치로 올려 보았지만, 나의 인격과 사람됨이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학력이 어떠하든 상관이 없다.


오히려, 중졸이 더 큰 감동을 줄 듯


어중간하게 꾸며진 학력보다, 오히려, 이런 스토리텔링이 한국의 대중들에게 더 효과적이고 감동적일 수도 있겠다고 상상을 해 본다.


나는 시골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상경하였다. 와이셔츠 공장에서 일을 하며 산업체 부설 야간 고등학교를 다녔다. 공장에서 같이 일하던 친구의 죽음을 보고 충격을 받아서 2년 만에 그만두게 되었다. 산업체 부설 야간 고등학교는 공장을 그만두게 되면 학교까지 그만두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래서, 양재학원을 다녔다. 한국에서는 대학에 진학할 수도 없었다. 학력이 없으면 실력이 있으면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으로, 일본에 가서 패션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서 20대의 젊은 여성이 일본에서 돈을 버는 방법은 제한적이었다. 중간에 한국으로 돌아오기도 하였고, 복장학원에 등록을 해가며 밝힐 수 없는 온갖 일을 하며 일본에서 생활했다.
사실 부모의 재정 지원이나 저축한 충분한 돈이 없이 당시 일본에서 유학생활을 지속해 나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어렵게 들어간 문화복장학원에서의 공부도 쉽지 않았다. 유학생 신분으로 돈도 벌고 공부도 하기란 불가능했다. 특히 까다로운 당시 일본의 비자 정책으로 인하여 학생 신분을 유지하기도 힘들었다.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지만 어떻게 어떻게 해서 7년을 일본에서 견뎠다. 이런 상태로 한국으로 돌아가기는 싫었다. 그럼, 차라리 패션의 본고장이라는 프랑스로 가서 다시 패션 디자이너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불어를 하나도 모르고 무턱대고 파리로 날아갔다. 어학원에 다녔지만 불어는 배우기가 어려웠고 쉽게 늘지 않았다. 또, 제대로 마치지 못한 학력이 매번 발목을 잡았다. 대학의 학위 과정에는 입학할 수 없었고, 다행히 패션학교는 학력 조건이 까다롭지 않았다. 그나마, 우여곡절 끝에 들어간 패션학교도 따라가기 힘들어서 휴학을 되풀이해야만 했다.
패션 공부는, 와이셔츠에 소매를 다는 것과 같은 재봉 기술만 있다고 되는 것은 아니었다. 기능적인 부분 외에 디자인의 개념적인 요소와 패션의 경향을 파악하고 선도할 수 있는 지적 능력도 필요했다. 자신이 설정한 개념과 남보다 한 발 앞서 파악한 경향을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하고 설득할 수 있었야 했는데, 불어가 유창하지 못했던 나에게는 넘지 못할 큰 산과 같았다. 많은 눈물을 흘리고 몇 번을 좌절했다. 결국은 공인된 패션 디자이너로 출발할 수 있는 졸업장을 따지는 못하게 되었다. 타향에서 삶을 꾸려나가는 일은 쉽지 않았고, 유창하지 않은 불어로 번듯한 직장을 구하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온갖 아르바이트를 해 가며 밑바닥에서 견디면서 살아야 했다.
결과적으로 나는 고등학교 졸업장도 없다. 세상의 기준으로는 최종학력이 중졸인 셈이다.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하고, 패션 디자이너도 되지 못하고, 세상에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긴 세월을 살면서 우울증에 걸리고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였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다시 일어났고, 다시 살아 보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방법을 몰랐다. 아무것도 없고, 아무것도 아닌 나에게 마음을 열고 흔쾌히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스승을 만나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내가 찾은 것이 책이다. 수많은 책을 읽으면서 발견한 방법과 비밀을 나에게 적용하며 시도하고, 또, 시도했다. 결국에는 사업을 일으키고 성공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어떠한 도움도 받을 수 없었고, 겨우 중학교 졸업장 밖에 없는 지질한 내가 해 낼 수 있었다면, 최소한 한 가지라도 나보다 더 나은 여러분도 할 수 있다. 끌어당김의 법칙을 믿고 목표를 시각화하여 구체적으로 설정하라. 간절히 바라고, 포기하지 말고, 실천하고, 시도해라. 내가 찾은 인생의 성공 공식이다.


이런 솔직한 스토리델링이 오히려 그녀의 인생 스토리의 흐름이 자연스럽고 더 돋보이게 만들어 줄 수 있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어중간하게 꾸며진 대졸보다 솔직한 중졸처럼 묘사되었다면 오히려 대중의 호응이 좋지 않았을까 상상을 해 본다. 그런 점에서, 그녀의 대학교 졸업 여부는 큰 의미가 없다.


주 1) 위 이야기는 유튜브 신사임당 채널(2020년 11월 9일 자, 0분 28초-33초)에 나와서 켈리 최가 말한 "저는 진짜... 고등학교도 못 나왔어요."에 힌트를 얻어서 상상해 본 완전한 픽션이다. https://youtu.be/wqofP0iLLh0?si=TB6H_hoTHgpojXqz&t=27


주 2) 당시 산업체 부설 야간 고등학교는 특성상 공장을 그만두게 되면 학교까지 그만두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켈리 최는 친구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고 그만둘 때까지 2년간 와이셔츠 공장에서 일한 것으로 밝히고 있다. 공장을 그만두었지만, 학교는 계속 다닐 수 있도록 회사에서 배려를 하여 산업체 부설 야간 고등학교를 졸업하였는지, 또는 다른 고등학교로 전학을 하여 고등학교를 졸업하였는지, 또는 검정고시를 통해서 고등학교 졸업 자격을 취득하였는지는 확인하지 못하였다.


주 3) 2018년 4월 13일 자로 업로드된 김미경 MKTV에서 "고등학교를 졸업을 한 거예요?"라는 질문을 갑자기 받았을 때 켈리 최가 "예"라고 답하는 장면에서 더듬거리는 말투와 부자연스러운 몸짓을 목격할 수 있었다.(9분 20초-9분 35초) https://youtu.be/UptBNzGwiwg?si=C1he_mBpXOBwNtjF&t=552 물론, '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는 표현은 인터뷰 중에 여러 차례 언급하고 있다.


주 4) 학력 논란을 의식하였는지 최근 2024년 4월 15일에 유튜버 '라이프해커, 자청' 채널에 출연하여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https://youtu.be/KGSr-ZQJM04?si=Uhb7qmV6p7FeFSI5&t=415

"저는 자청님도 잘 알고 아마 지금 채널을 보고 계신 분들도 너무 잘 알겠지만... 저는 중졸이었고요...."(중간에 또 "야간고등학교를 다녔다"라는 짧은 언급이 있기는 한데 "다녔다"라는 것이 주2)에서 설명한대로 '2년을 다녔다'를 의미하는 것인지 '졸업하였다'를 의미하는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하여튼, 이제 진실해지기로 마음을 먹었는지 모르겠지만 이전에 기록된 각종 인터뷰와 자신의 책에서 자랑한 일본과 프랑스 명문 대학 3곳을 졸업하였다는 학력은 어떻게 설명할지 궁금하다.


말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감동하고 감화되어 삶도 변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만약, 탓을 하게 된다면, '대학교를 졸업하지 못했다'라고 '학력을' 탓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탓을 하게 된다면, '대학교를 졸업했다'라고 '말했다'라는 것이 될 것이다. 그래서, 사실이 어떤지 확인하고 싶을 뿐이다. 우리에게 정직하게 말해 주고 있는지 알고 싶을 뿐이다.


우리에게 한 점의 꾸밈이나 거짓이 없이 정직하게 말해 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앞으로 그녀가 책이나 유튜브 영상에서 하는 말을 더욱 신뢰하고 싶을 뿐이다. "그 사람은 절대로 거짓말 같은 것은 할 사람이 아니다."라는 확신을 가지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 "그 사람이 하는 말은 모두 믿을 수 있다."라는 확고한 신뢰를 갖고 싶을 뿐이다. 그런 믿음이 있어야, 그녀의 책을 읽고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감화되고 감동되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켈리 최에게 이렇게 질문해 주면 좋겠다


따라서, 합리적인 의문에 따라 그녀의 학력이 궁금한 분이 있다면, 켈리 최에게 이렇게 질문하여 궁금증을 해소해 주면 좋겠다.

 

1. 졸업하였다는 한 곳의 일본 대학교의 학교명은 어떻게 되나요?

2. 세계적인 명문 학교인, 에스모드 파리(ESMOD PARIS)와 파리의상조합학교(École de la chambre syndicale de la couture parisienne)를 모두 졸업하셨다고 하셨는데, 졸업 연도와 졸업 사실을 확인해 주실 수 있나요?


그려 넣는 대로 변화는 과거


최근에 책이나 인터뷰를 통해서 "일본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또 프랑스에서 손꼽히는 두 개의 대학을 졸업하였다. 그래서, 일본과 프랑스에서 총 세 곳의 대학교를 졸업하였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은 한국을 일찍 떠나서 한국에서 활동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추측할 수 있다.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였다고 할 경우에는, 본인의 입이 통해서가 아니어도 주변 인물이나 대학 졸업 앨범 등의 보조 자료로 확인하고 검증을 할 수가 있겠으나, 오래된 일본과 프랑스에서 일어 난 일이라 한국에서 확인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한국에서 기록이 백지상태에 있기 때문에, 또, 누가 확인하기도 어려울 것이기 때문에, 감추고 싶은 것은 감추고, 멋져 보이게 살짝 부풀리고 싶은 유혹을 느끼지는 않았을까 상상을 해 본다. 상상해 보면, "일본을 안 간 것도 아니고, 프랑스를 안 간 것도 아니고, 패션 학원이나 패션 학교를 안 다닌 것도 아니고... 사실 패션 학원이나 패션 학교가 오히려 대학교 보다 실무를 더 잘 가르치고 유명한 곳도 많으니, '일본과 프랑스에서 대학교를 다닌 셈'이나 마찬가지고, 그래서, '대학교를 졸업했다'라고 말해도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니잖아!" 이렇게 합리화할 수만 있다면 내적 갈등도 없앨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상상해 본다.


아직 우리 사회는 엄밀함과 엄격함을 유지하고 있다


만약에, 우리 사회에서 이런 식의 합리화가 용인이 된다면 각종 지원서와 이력서에 기록하는 학력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우리 사회는 아직까지 정직하고 정확한 학력 사항 기재에 대한 엄밀함과 엄격함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그냥 밝히면 되는 간단한 일


학벌이 인물 평가의 중요한 요소가 되는 한국 사회에서, 개인의 욕망에 따라 자연히 학력 위조에 대한 유혹이 생기기 마련이다. 심지어,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학력 위조 방식을 온라인 사전에서 정리해 두고 있는 지경이다(나무위키). 예를 들면, '그냥 나왔다고 말하기', '비정규 과정을 거쳐서 끼어들기', '학위 인정이 안 되는 학교 나오고 학위 받았다고 우기기', '중퇴나 수료를 하였는데 졸업하였다고 우기기' 등의 다양한 방법으로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켈리 최가 나오지도 않은 대학교나 명문 패션학교를 '그냥 나왔다고 말했다'거나, '학위 인정이 되지 않은 학교를 나오고도 학위를 받았다고(대학교를 졸업하였다고) 하거나', '중퇴나 수료를 했는데 졸업을 하였다고 우기고 있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책과 수많은 인터뷰에서 자신의 다른 성장과정과 비교하여 대학 과정과 졸업과 관련된 정보를 자세히 밝히지 않아서 궁금증이 증폭되어 온 것뿐이다.


한국 사회에서 한 번씩 일어나는 학력 위조 의혹에 대해서 다시는 말이 나오지 못하게 깨끗하게 정리하신 분들이 많이 있다. 논란이 야기될 때, 그분들은 보란 듯이 자신의 외국 명문 대학교 졸업장이나 학위 증명서를 대중에게 공개하여 불신하던 대중들의 입을 한 방에 막아 버렸다. 오히려, 의혹이 사실로 밝혀지며 "대단하다"는 칭송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접근 가능했던 제한적인 정보들을 통해서, 개인적으로 짐작할 수 있는 것은, 현재 한국에서 '글로벌 기업 회장'이라는 개인 브랜드로 형성해 온 자신의 이미지를 강화시킬 수 있는 '멋있는' 학력 사항으로 모호하고 적당하게 말해 온 것이 아닌가 추정해 볼 수밖에 없었다. 한국 사회에서 크게 논란이 된 어떤 분의 이력서처럼 '돋보이려는 욕심 때문에'.


SF영화처럼

현재에 내가 말하는 대로

새롭게 만들어지고 멋지게 변할 수 있는 과거.

대·다·나·다·


일본과 프랑스에서 3개의 명문 대학교를 졸업하는 비법


일본과 프랑스에서 여러 곳의 명문 대학교를 졸업하는 비법을 그녀의 방식대로 서술하면 다음과 같다.


"나는 이 글을 작성하며 관련 자료를 몇십 번 읽어 보면서 큰 깨달음을 얻었다. 부자 중에서도 상위 0.1%에 속하는 최상위 부자를 통해서 학비도 없고 학력도 없는데 어떻게 외국의 수많은 명문 대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는지 그 감추어진 비밀을 마침내 알게 되었다. 나는 더 이상 더 좋은 학벌이 필요하지 않다. 지금의 학벌만으로 평생 동안 먹고살 수 있다. 그래서 내가 찾은 그 비법을 선한 영향력이라는 차원에서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다"

"여러분들도 일본이나 프랑스나 어느 나라에서나 명문 대학교를 졸업할 수 있다. 그 비법은 "아주 오래전에 다른 나라에서 있었던 일인데 당신들이 어떻게 알겠어? 확인할 수도 없잖아?"라고 마음속에 있는 부정적인 두려움을 걷어내면 마음의 평화가 내 것이 된다. 그다음으로, 대범하게 "졸업하였다"라고 구체적으로 졸업식 장면을 시각화하여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는 상상을 몇 번이고 반복해 보자. 그리고, 매일 아침마다 '나는 00 대학교를 성공적으로 졸업하였다'라고 10번 정도 필사하고 성공 확언만 하면 된다. 대충, 100일 정도.

다만, 나중에 문제가 된다면 "아니면 말고"라며 모르는 척 회피하는 약간의 뻔뻔함과 "그런 것들이 모두 나에 대한 근거 없는 시기와 질투 때문"이라는 정신 승리가 필요할 수도 있다."


안타까움과 애잔함


한편으로는 안타까움과 애잔함을 느낀다.


어쩌다 갑자기 돈은 조금 벌었고, 엄청난 부자와 글로벌 기업가라는 말에 혹한 순진한 한국 대중들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고, 게다가, 차세대 글로벌 리더라는 과분한 이미지를 생성하는 데 까지 성공하였다. 존재감이 없는 유럽에 비해 한국 대중들의 주목과 인기를 끌게 된 현재의 상황이 꿈만 같고, 이를 이용하여 더 큰 인기와 명예를 가질 수 있을 것 같은 욕심과 욕망으로 들떠 있게 되었을 것이다.


자신이 롤 모델로 삼고 있는 어느 분처럼, '부자가 되려면 내가 시키는 대로 해라'라고 하면서, 이미 세상의 모든 이치를 깨달은 스승처럼 세상 사람들을 제자로 삼고 부자가 되는 법을 가르치는 소위 천억스승이 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돈이 최고의 가치가 되고 돈으로 못할 일이 없는 황금만능주의 세상이 되었지만, 갑자기 돈을 벌었다고, 없었던 지식과 교양이 생기고, 알지도 못하는 세상의 모든 질문에 답할 수 있게 되고, 없었던 과거의 학력과 경력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지식과 교양은 더디지만 배우고 익혀서 쌓아 나가면 되는 일이다. 알지 못하는 세상의 온갖 질문들은 적당히 회피하며 아는 척 두리뭉실하게 답변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천억스승의 인기와 권위를 지탱할 과거의 학력과 경력은 어찌할 도리가 없을 것이다. 그래도, 최대한 감추고 상황에 맞추어 적당히 둘러대 볼 것이다. 여태껏 그렇게 살아왔는데 이게 무슨 큰 일이겠느냐.


감추고 잘 꾸며온 현재에 비해, 어떻게라도 해볼 수 있으면 좋을, 손댈 수 없는 과거의 시간에 존재하는 초라한 결핍과 콤플렉스를, 이렇게라도 채워 보려고 애쓰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 안타까움과 애잔함을 느낄 뿐이다.


이미지 출처: 여성 조선, 2022년 3월 16일 자, 인터뷰 기사 중 일부 화면 갈무리


우리는 지금 이 인형의 어디쯤을 보고 있을까?



[추가 1] 나무위키


최근에 '나무위키' 검색에 '켈리 최'의 항목이 추가되었다. 현재 완결된 문서가 아니라 생성 중에 있는 상태로 짐작된다. 학력에 대한 정보는 아직 채워 넣지 못하고 있었다. 앞으로 어떤 학력 정보가 채워질지 궁금하고 몹시 기다려진다.


이미지 출처: 나무위키 검색 결과 화면 일부 갈무리 (2023년 2월 27일)

나무위키 원본 링크: https://namu.wiki/w/%EC%BC%88%EB%A6%AC%20%EC%B5%9C?rev=14


[추가 1의 추가] 드디어 업데이트


위의 '학력 사항'에 남겨진 빈칸이 어떻게 채워지는지 흥미롭게 지켜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나무위키' 켈리 최의 이력란에 변화가 생겼다.


나무위키 원본 링크(2023년 7월 18일 자 변경): https://namu.wiki/w/%EC%BC%88%EB%A6%AC%20%EC%B5%9C?rev=24


추측하기로, 해당 일자로 업데이트된 정보를 살펴보면, 마치 켈리 최 개인 홈페이지를 연상할 정도로 켈리 최에 대한 긍정적인 홍보 일색이다. 켈리 최에게 불리하거나 부정적인 정보(논란 부분)는 모두 없앴다. 켈리 최의 의도가 반영된 것인지, 켈리 최에 대하여 우호적인 개인이 자발적인 의도로 편향적으로 업데이트를 하였는지는 확인할 길은 없다.


나무위키가 개인 홍보 페이지가 되어서는 안 되는데


'나무위키'는 '여러 사람들이 각자가 가진 정보를 문서 생성 및 편집을 통해 공유할 수 있도록 한 웹사이트'이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누구나 문서를 생성하고 공유할 수 있다. 인터넷 기술이 가능하게 한 자유롭고 민주적인 집단 지성의 결과물이다. 하지만, 특정 인물이나 집단이 의도를 갖고 불편한 내용에 손질을 가하고 개인 홍보 페이지로 활용하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나무위키와 집단 지성이 다시 균형을 잡겠지만, 이번 업데이트는, 객관적인 정보의 공유라기보다는, 편향적으로 미화된 개인 홍보 자료를 보는 듯이 불편했다.


드디어 학력 사항은 어떻게 업데이트되었을까?


위의 갈무리 화면처럼 빈칸으로 남아 있던 '학력'란에도 변화가 생겼다. 어떻게? 어떤 학력으로 채워졌을까? 어떤 유명한 대학이나 패션 스쿨의 이름으로 채워졌을까? 일본과 프랑스 대학이 모두 기록되어 있을까? 기대되고 흥분되었다.


이미지 출처: 새롭게 업데이트된 켈리 최의 나무위키 화면 일부 갈무리, 원본 링크: 위와 동일


어라, 학력란이 어디 있지?


흥미롭게도, 아쉽게도, 궁금하게도, '학력'란을 없애 버렸다.


켈리 최와 관련된 개인과 회사 홈페이지의 링크를 있는 대로 찾아서 자그마치 7개를 걸어두었고, 돈을 내지 않으면 읽지도 못하는 영국 신문사 링크까지 헌신적으로 찾아서 걸어 두었다. 또, 켈리 최의 개인 스토리를 켈리 최 개인 홈페이지라고 착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운 어휘로 찬양하고 있었다.


그런데, '학력'란을 없애 버렸다.


책에서, 방송에서, 유튜브에서, "일본에서 의상디자인 전공으로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프랑스에서 손꼽히는 디자인 학교 두 곳을 졸업해서, 일본과 프랑스에서 대학교를 세 군데나 다닌" 것으로 자랑하고 있는 화려한 학력을 기록하지 않고, 오히려, 학력란을 없애 버렸다.


왜 그랬을까? 켈리 최에게 유리한 모든 링크를 찾아서 올리느라고 바빠서 '학력'과 관련된 기본 정보는 찾을 시간이 없었을까? 편집을 하다 보니, '학력'란이 빠진 것을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고 할까? 아니면, 밝히기 곤란한 '학력'란을 없애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을까? 그 이유가 무엇일지 몹시 궁금하다.


그녀를 따라가다 보면, 대응 방식이 더 궁금증을 자아낸다.


회피 전략


'나무위키'를 통해서 추측되는 것은, 학력 사항에 대해서 정직하게 밝히기보다는 감추고 회피하기로 한 것처럼 보인다. 한국 대중들의 눈에 띄지 않게 가리면 진실이 감추어질 것으로 믿고 기대하나 보다. 안타깝다. 다만, 눈감아 주고 모르는 척해준다고 해서, 한국 대중들이 때로는 순수하고 순진해 보인다고 해서, 너무 바보 취급은 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진짜 그런 거 아냐?


'학력 항목 삭제' 시도가, 오히려, 더 궁금증을 자아내고, 의문에 대한 확신의 비율을 증가시키는 역효과를 야기시키게 되었다. '그럼, 혹시나, 진짜 그런 거 아냐?'




[추가 2] 2023년에도 여전히 그녀의 학력이 우리 사회에 전하는 메시지


그녀의 학력과 관련된 정보는 아직까지(2023년 3월 28일 자 신문 기사) 다음과 같이 대중들에게 혼란스럽게 홍보되고 있었다. 대단한 무용담처럼 펼쳐지는 프랑스 유학의 과정만을 살펴보아도 오늘을 사는 젊은 세대들이 놀랄 만큼 파격적이다.


1. 프랑스어로 '안녕'이라는 기본적인 단어 하나도 모른 채 프랑스로 떠났다.

2. 프랑스어를 한 마디도 못했지만 편입학에 성공했다.

3. 프랑스 패션 디자인 대학교를 두 곳이나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졸업했다.


여전히 그녀의 스토리는 대단히 극적이었다. 불어를 한 마디도 모르는데 프랑스 대학교에 편입을 하고, 한 곳도 아니고 두 곳의 프랑스 대학교를 아르바이트를 해 가며 졸업하였다니, 그녀는 역시 대단하다.


이미지 출처: 뉴스비전미디어 2023년 3월 28일 자 관련 기사의 일부분 화면 갈무리, 아래 원본 링크 참조.

         원본 링크: http://www.nvp.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7238



옛날이라고 무법천지는 아니었다


나는 23년 전에 다른 유럽 국가로 유학을 왔었다. 옛날에는 모든 것이 허술하고, 말만 잘하면 많은 예외가 허용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상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옛날에도 규칙과 규정이 있었고, 이런 절차와 규정을 철저히 준수하는 사회였다. 운이 나쁘게, 나만 과거의 느슨했던 예외 조항의 예외로부터 예외여서 모든 규정을 어렵게 지켜야 했을까?


내가 유럽 대학에 지원을 했던 오래전 옛날에도, 대학교에 학위 과정에 입학을 하기 위해서는 대학에서 요구하는 수준 이상의 국가 공인 언어 능력 시험 결과가 입학 지원 서류에 반드시 포함되어 있어야 했다. 그래서, 유학을 떠나기 오래전부터 해당 외국어 공부를 정말 열심히 했고, 대학에서 요구하는 언어 자격 레벨을 취득하기 위해서 많은 비용을 들여서 시험도 치고, 시험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려야만 했다.


불어를 하나도 몰라도 편입학이 가능한 프랑스 대학교?


과거의 이야기라는 전제라도, '불어를 하나도 몰라도 편입학이 가능했던 프랑스 대학교'라는 식으로 한국의 일반 대중들에게 알려진다면, 프랑스 문화원을 찾아가서 프랑스어 강좌도 듣고, 흔하지 않았던 프랑스어 자료를 어렵사리 구해서 읽으면서 밤새워 공부해서 프랑스어 능력 시험을 치르고 힘들게 프랑스 대학으로 유학을 갔었던 선배, 동료, 후배들이 속상하고 억울할 것 같다.


이미지 출처: chat.openai.com에서 대화형 인공지능 ChatGPT 프로그램 대화 내용 일부 화면 갈무리


혹시나, 착각하지 않기를


현재는, 유럽 각 국가에서 외국인 학생의 입학 요건이 강화되고, 공인된 언어 능력 평가 시스템이 더욱 정교화되었기 때문에 유학 대상 국가의 언어 사용 능력은 가장 필수적인 대학 지원 자격이다. 유학 대상 국가의 언어는 단순히 대학 입학 지원 자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입학 후에 교육과정을 무리 없이 따라가고, 학위 취득과 졸업에 이르는 과정에 큰 도움이 되는 필수적인 요소다. 기본적인 언어 능력이 유학 성공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불어를 전혀 모른 채 "어떻게 되겠지"라며 무모하게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지 않기를 바란다. 프랑스어를 한 마디도 못하지만, 공인된 프랑스어 자격이 없어도, '열정'만을 가슴에 품고 프랑스 대학교에 직접 찾아간다면, '용기가 대단하다'라며 입학 담당자가 감동하며 입학을 허가할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하지 않기 바란다. 아니, 상상도 하지 말아라. 상상마저도 시간 낭비다.


다만, 정규 학위 과정의 대학교가 아닌, '프랑스어' 자체를 배우기 위한 어학 연수나, 다양한 학원 단위에 지원을 할 경우에는 프랑스어 능력 시험 결과가 없이도 입학이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어학연수가 많은 유럽 국가에서 비중이 높은 수익 사업이기도 하고, 많은 국가에서 자국의 언어와 문화 확산을 위한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쳐 나가고 있으니까. 하지만, 어학원 등의 지원조차도 학생 비자 발급을 위한 요건이 충족된 정규 교육 기관인지 꼭 확인하기를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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