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알재 Jun 05. 2024

다시 태어나도 당신과 결혼할 거야

만약에 다시 태어난다면 결혼한다Yes/No


사회자: 만약에 다시 태어난다면 결혼한다. Yes/No


예능 프로그램에서 부부를 앉혀 놓고 난처하게 만들려고 던지는 질문이다. 카메라는 질문을 받은 부부가 주저하는 듯한 표정을 클로즈업한다. 사실대로 말하기도, 뻔한 답을 말하기도 곤란한 듯한 표정이다. 잠시 주저하는 사이에 사회자는 손을 들어 끊는다.


사회자: "녜" "여기까지" "이미 늦었습니다"


빨리 답하지 못한 인기인 부부 사이를 슬슬 이간질하며 재미 삼아 논쟁을 부추긴다.


쇼츠로 남는다


곤란한 상황을 유도하는 능숙한 사회자의 역량에 따라서, 뻔한 주제에 대해서 재미있는 부부 사이의 갈등처럼 연기하는 노련한 연예인의 대응에 따라서, 진부한 주제로도 흥미로운 영상으로 뽑아내는 연출가의 탁월한 편집 능력에 따라서 재미있는 쇼츠로 살아남아서 수백만 뷰를 찍기도 한다.


예능을 다큐로 받으시면 안 되죠


문제는 재미 삼아서 하는 질문이지만 자칫 잘못하면 서로에게 서운한 감정을 남길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가벼운 예능이 진지한 다큐멘터리로 변질되는 상황이 발생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어느 한쪽이나 양쪽이 '노'라고 대답할 경우이다. '아니요'라는 답변은, 무난하게 잘 지내고 있는 솔직한 부부의 답변일 수도 있고, 현재 사이가 나쁜 위기의 부부일 수도 있다.


감출 것 없는 솔직함을 드러내는 단순한 답변일 수도 있지만, 한쪽 또는 양 쪽의 기분이 나빠질 수도 있다는 것이 함정이다. 상대의 '아니요'를 예상을 하고 있었든지 예상하지 못하였든 간에 화면에 잡힌 연예인의 얼굴은 그야말로 '웃프다'. 화면은 억지로 웃으려는 부자연스러운 입꼬리와 볼의 작은 떨림을 줌으로 잡아낸다. 스튜디오는 재미있는 꼭지를 하나 건졌다는 즐거움으로 웃음이 넘쳐나지만 배우자의 진심을 눈치챈 본인에게는 따라라라~ '인간극장' 다큐가 된다.


쓸데없는 문제를 만드는 인간들


'만약에'라는 가정을 전제로 한 질문이어서 지금을 살아가는 현실과는 상관이 없고 발생하지도 않은 조건이다. 게다가, "다시 태어난다면"이라는 전제가 실현 가능성이 제로에 가까운 조건이다. 드라마와 신앙의 영역을 제외하고 일상적인 현실에서 다시 태어났다는 사례를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예, 아니요' 어느 답이든 돌아 올 결과가 똑같다는 뜻이다. 아니, 돌아 올 결과가 없다는 것이다. 어느 답이든 상관이 없다. 우리가 다시 태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아주 아주 아주 높기 때문이다.

 

정답은 정해져 있다


고민하고 따지고 할 것 없이 정답은 '예스'다. 왜냐하면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니까. 혹시나 다시 태어나서 '다시 이 사람과 결혼을 하면 어쩌나?'라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질문이 떨어지자마자 큰 소리로 '예스'를 외쳐야 한다.


지금 인생에서 당신하고 결혼해서 힘들게 살고 있는 배우자에게 한 번쯤은 립서비스를 해 주는 것도 괜찮지 않은가다시 태어나면, 당신과 절대로 다시 결혼할 것 같지 않은 상대에게 골려주듯이 들이밀어대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은가? 당신의 멍청한 솔직함을 감추는 예의를 오늘 하루쯤은 상대에게 보여줄 수도 있지 않은가?

 

지금 사는 것도 진저리 나는데


물론, 상대를 자극해서 기분을 나쁘게 하려면 '노'는 효과적인 한 방이다. "뭐 지금 같이 사는 것도 지겨운데 또다시 태어나서 이 인간하고 같이 살아야 된다고?" "아이고~~" 상상만 해도 진저리가 쳐져서 감출 수가 없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번 생은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이니 운명이라고 받아들이지만, 다음 생이 있다면 절대로 만나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을 해 왔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다른 사람 하고도 한 번 살아보고 싶다


부부 사이에 나쁜 감정은 없지만, "이 번 생에는 이 사람하고 살았으니 다음 생에는 다른 사람 하고도 한 번 살아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호기심이 충만된 분들도 있을 수 있다. 이럴 경우에도 주저하지 말고 '예스'를 외쳐야 한다.


다음 생이 있는지도 불확실하고, 혹시 다음 생이 있어도 지금 대답하고 있는 현재의 인생 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일 것이다. 그래서 대답하는 대로 다음 생에 이루어질 가능성이 없다. 게다가 혹시나 다시 태어나게 되고 또 결혼이라는 것을 하게 된다면 그때 생까고 다른 사람이랑 하면 되지 않겠는가? 


대한민국의 입시 교육을 통해서 우리가 잘 훈련받았듯이,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여 문제의 정답을 찾는다면 반드시 '예스'여야 한다. 그래야 인생이 편하다.


내가 다시 태어나면


서로 다른 가정에서 성장하여 결합한 우리 부부도 습관이나 생활의 모습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사랑과 부부라는 이름으로 서로의 다른 모습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기도 하였다. "인간이 어찌 그대로냐?" 싶어서 상대가 만만해지는 시점을 지나서, "인간은 고쳐 쓰는 것이 아냐"라며 포기하며 상대를 하찮게 여기는 시점도 있기 마련이었다.


살다 보면 크고 작은 고난이 있다. "지금도 힘든데 다음 생에 또 같이 살아야 한다고?"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서로에게 보란 듯이 "다음 생에는 우리 만나지 말고 따로 살자"라며 진담을 농담처럼 건네기도 하였다. 서로 갈등이 있었을 때는, 어느 누구와 살아도 이 정도는 살지 않겠나 싶었다. 뭐 큰 차이가 없다면 다른 사람하고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나 또한 그렇게 훌륭한 배우자는 아니니 상대도 똑같은 생각이지 않겠나 짐작했다.


다시 태어나면 당신과 결혼할 거야


최근에 아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다시 태어나면 당신과 결혼할 거야."


생뚱맞게? 나이가 들면서 전두엽 기능에 이상이 생기면서 평생 한 번도 하지 않은 말을 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몸이 변하면서 호르몬 분비에 이상이 생기면서 지나치게 감성적이 되어 발생한 이상 증상일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그렇게 메시지를 보냈다. 아직까지 답을 받지는 못하였다. "결혼은 혼자서 하나?" "또 같이 살아라고? 꿈깨셔." 이런 답을 보내는 것보다 입을 닫고 있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음 생에는 더 잘해 주고 싶어서


다음 생에도 다시 결혼하고 싶은 이유는 '더 잘해 주고 싶어서'이다. 뒤집어 말하면, 이 번 생에는 너무 못해 준 것이 많다는 뜻이 되니 부끄럽다. 아둔한 머리로 세상을 이해하고, 제한된 환경에서 발버둥 치며 살다 보니, 늘 한 걸음 늦게 깨달아서 놓치고, 좋고 즐거운 것은 급한 것에 밀려 '나중에'라며 미루어 놓고 살았다. 그래서 그때그때 못해준 것이 너무나 많았다. 다음 생에는 그때그때를 놓치지 않고 잘 해 주고 싶다.


이 번 생도 괜찮았어


"다시 태어나면 당신과 결혼할 거야"라는 말은, "이 번 생에서도 당신과 결혼해서 살아온 것이 나름대로 괜찮았다"라는 평가와 수줍은 고백이다. 그래서, 이 정도라면 다음 생에서도 같이 살아도 좋을 것 같다는 제안이다. "잘 난 내가 당신을 만나서 인생이 이 모양이 되었다."라는 오만한 이기심을 버리고, "부족한 점이 많은 내가 당신 덕분에 이 정도라도 살아온 것 같다"라는 감사함의 표현이다.


레테의 강을 건널지라도


그리스신화에서 사람이 죽으면 다섯 개의 강을 건너게 되는데, 레테의 강물을 마시게 되면서 이전 생의 모든 기억을 잃는다고 한다. 과거의 나쁜 기억이나 아픈 상처를 깨끗이 잊고 완전히 백지상태에서 새롭게 출발을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의 마음을 잊고, 어리석은 그 나이 그때 그 상황으로 돌아가서 똑같이 부족하고, 여전히 잘 해 줄 수 없다면 안타깝고 아쉬울 것 같다. 그래서, 레테의 강물을 몇 방울 슬쩍 흘려서 그대에 대한 기억과 약속은 잊지 않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야, 다시 태어나서 당신과 결혼하고, 지금 인생보다 더 좋은 것도 많이 해주고, 더 맛있는 것도 같이 먹고, 더 많이 웃고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그래서, 현재의 삶에서는 그저 미안하고 고맙다.


영화 찍지 말고


"뭐 임종씬을 찍는 것도 아니고, 분위기 잡으면서 혼자서 영화를 찍지 말고, 지금 남아 있는 인생에서나 잘하셔~ 빨리 와서 어거나 잡아욧!"


"예 마님"

마당쇠는 오늘도 달린다.




매거진의 이전글 65세 이상 지하철 무상 이용 폐지 논란에 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