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떼파파 Dec 21. 2021

할머니의 요양원

더 이상 외로움에 갇히지 않기를

사람들은 보통 건강에 별 문제를 느끼지 않으며 일상적인 삶을 영위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병에 걸리면 갑자기 딛고 있던 땅이 꺼지듯 모든 것이 무너져 버린다.

- 어떻게 죽을 것인가(아툴 가완디) 중 -


시골에 혼자 계시는 할머니가 치매 증세를 가진지는 10년이 지났다. 세월이 거듭될수록 점점 증상이 심해졌다. 지난 추석에는 당신의 아들과 며느리가 누군지 되묻는 빈도가 부쩍 늘었다. 손자(나)를 당신의 아들이라 여기고, 객(客)이라 생각하는 이상하면서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오랜 병치례에 장사 없다는 말처럼, 치매는 할머니의 꼿꼿한 기품과 명징한 정신을 서서히 앗아갔다. 일주일에 6일 간 50대 아주머니 요양사 분이 다녀가면서, 할머니의 식사와 청소 등 기본적인 생활을 챙기셨다. 부모님은 시골집 4곳에 CCTV를 설치해 덩그러니 홀로 계신 할머니를 수시로 확인하며 부지런히 챙겼다. 한 달에 절반 가량을 시골에서 지내다 오면서도 그 사달이 난 이후부터 부모님의 걱정은 눈덩이처럼 커져갔다.


그래도 순한(?) 치매를 앓는 할머니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시로 부엌을 들락거리며 밥을 찾았다. 그러다 어두컴컴한 어느 날 새벽, 마당에서 어머니와 마주쳤는데 순간 할머니 얼굴에서 피가 분수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어머니는 황급히 수건으로 피를 닦고, 응급처치를 한 후 날이 밝기 무섭게 할머니를 모시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눈과 눈썹 사이가 크게 찢어져 봉합을 한 후, 아버지와 어머니의 한숨은 깊어갔다.

"노인네가 어디 날카로운 곳에 부딪친 것 같은데... 물어봐도 어디서 그랬는지 통 모르니..."

"이러다 어머님 큰일 나겠어요. 그렇다고 우리가 계속해서 여기 내려와 살 수도 없고."        




그날부터 부모님은 본격적으로 요양원을 물색했다. 아버지도 처음에는 어머니의 제안에 불같이 화를 내며, 자식으로서 할 도리가 아니라며 선을 그었단다. 그러다 노인네가 큰일이 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르자, 고심 끝에 가장 믿을 만한 요양원을 찾기로 했다. 가장 최근에 지어진 요양원을 찾아 시설을 둘러본 후 대기 명단에 할머니의 이름을 올렸다. 기막힌 우연인지 그곳의 행정업무를 맡는 사람이 내 고향 친구인 K였다. 또 K의 언니가 그곳 대표를 맡고 있어 한결 안심이 되고 신뢰가 갔다.


12월 초순쯤 드디어 자리가 났다는 연락이 닿았고, 그 길로 부모님은 할머니를 요양원에 입소시켰다. 다행히 그곳에 이미 옆 동네에서 오신 할머니 또래 분들이 제법 계셨다. 아버지도 요양원이라는 편견에서 벗어나, 마음의 짐을 조금은 덜 수 있을 것 같다고 털어놨다. 특히 요즘 요양원에서 조금이라도 잘못(방치, 학대 등) 운영하면 전면 폐쇄 등 법이 아주 강력하다는 점. 그래서 이전 뉴스에서 가끔씩 봤던 그러한 근심과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K의 말을 들은 이후부터였다.




나도 할머니가 요양원에 들어간 지 10일이 지난 후 K에게 카톡을 보냈다.

"할머니 어떻게 잘 지내고 있어? 네가 있어 든든하고 고맙다."           

"하나도 걱정하지 마라. 할머니 식사도 너무 잘하고 잘 지내고 있다." "잠깐만!"

그러더니 카톡 영상 모드로 전환됐다. 곧이어 갈색 계통의 스웨터를 입고 뚫어지게 화면을 쳐다보는 할머니가 화면을 가득 채웠다.

"니가 누고? 이기 사진이가?"

"할머니, 할머니 손자 훈이 아닙니까. 모르겠어요?" 친구가 옆에서 거들며 나를 확인시킨다.

"훈이? 우리 큰 손주 훈이가? 그런데 사진이 이리저리 움직이샀노."

"할매요. 훈입니다. 잘 지냅니까. 얼굴 좋아 보이네요."


순간 감정이 고조되면서 울컥 치미는 무언가가 명치끝에서 사각거리고 있었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할머니의 모습을 스크린 샷으로 눌러 저장했다. 환하게 웃는 모습이 시골에 혼자 계실 때보다 좋아 보였다. 비록 짧은 대화 속에 묻고 답하는 어려움은 있었지만, 할머니와 나눈 6분 간의 정담은 더할 나위 없이 반갑고 즐거웠다. K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전하며 전화를 끊었다.




요양원과 연결되는 단어  나는 할머니의 무력감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하지만 영상으로 접하고 보니 한결 밝아진 할머니의 모습이 반가웠다. 치매로 인해 현재와 미래보다 과거를 복기하며 사시지만, 그곳에서 순간순간 재밌게 지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처럼 대가족이라면 가족들이 돌아가며 할머니를 돌보고 말벗이 되었겠지만, 솔직히 지금은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특히 치매를 앓으며 예기치 못한 사고가 발생했을 , 기민하게 대처할  없는 불안감에서 벗어날 최적의 대안이 그래도 요양원이지 않을까. 아버지도, 나도 그랬지만, 마음속 '불효'라는 박제된 주홍글씨는 있었지만, 지금은 할머니를 위해 최선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무엇보다 담소 나누기를 그리 즐겨했던 할머니가 시골에서 오도카니 지내며 외로움과 싸웠을 인고의 시간을 떠올리면, 지금이 훨씬 낫지 않을까라고.     

 

전화를 끊기 전 K의 마지막 말이 귓전을 맴돈다.

"걱정하지 마라. 할머니 말씀을 너무 잘하신다. 그동안 어떻게 참았대."  

작가의 이전글 슬픔이 마른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