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클럽이 주는 마음의 선물
작년 여름 무렵, 집 근처 도서관에 들렀다. 7살 아들과 1층 어린이 코너에서 몇 권의 책을 고르고 주차장으로 나가려던 찰나, 도서관 게시판 어느 한 지점에 유독 눈길이 머물렀다.
‘책머시’(책이 머무는 시간)라는 성인 대상 독서모임 공지였다. 시간은 매월 마지막 주 목요일 저녁 7시부터 9시. 우선 모임 이름에 마음이 혹했다. '책이 머무는 시간이라... ‘. 온라인에서 책과 연결된 모임에 가입한 적은 있지만, 오프라인은 처음. 도서관에서 운영하는 모임이라 지속성이나 퀄리티 측면에서 믿음이 컸다.
드디어 첫 모임일. 삐죽삐죽 고개를 내밀며 1층에 위치한 강의실을 노크했다. 4~5분이 열띠게 책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날따라 늦게 마친 업무 탓에 처음부터 한 시간 지각. 눈길로 모임 분들에게 인사를 건넌 후 모퉁이 자리에 앉았다. 미리 준비했던 논제로 각자의 의견을 쏟아내는 중이었다. 잽을 날리는 서평부터 어퍼컷을 날리는 펀치라인까지, 나는 오가는 텍스트를 귀로 주워 담는 동시에 분주한 손놀림을 이어갔다.
책만이 아니라 생각이 머무는 시간, 그리고 합치되지 않는 이견에 새로운 관점을 발견하는 재미를 만끽했다. '이걸 이렇게 해석할 수 있구나...'라는 상념도 잠시, 드디어 내 차례가 돌아왔다. 미리 준비해 둔 메모 덕에 나만의 느낌을 공유했고, 처음 참석한 자리하고는 수월하게 지나갔다.
공교롭게도 모임날만 되면 스케줄이 엉켜, 작년은 세 번 밖에 참석하지 못했다. 그리고 해가 바뀐 2024년 1월 25일 저녁 7시. 올해 첫 모임에 참석했다. 낯익은 얼굴들이 대부분이라 떨림 대신 안도와 편안함이 전해졌다. 쌓여가는 시간이 주는 익숙함이 좋았다. 이 날은 올해 읽을 책들을 정하는 시간. 문학과 역사, 자연과학 그리고 철학 중 각자 추천하는 책을 고르는 방식이었다. 나는 온라인 모임에서 누군가 추천해 준 나쓰메 쇼세키의 <갱부>를 추천했고, 올해 10월 모임 도서로 선정됐다. (하지만, 도서 절판으로, 필립 로스의 '에브리맨'으로 대신했다.)
이날 회원들은 각자 논제로 정한 도서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나눴다. 새로 참여한 A는 '지적 허영'이 좋아 독서모임을 지원했다. 직장에서 오가는 이야기의 결들이 지극히 현실적이어서, 지적 유희를 통한 탈출구가 필요했고, 그 공간이 바로 ‘책머시’라고 말했다. B는 아들에게 훗날 자신의 성실함을 보여주기 위해 독서에 열심이고, 논제에 자신의 생각들을 담은 노트를 아들에게 보여줄 계획이라고 한다. 꾹꾹 눌러쓴 연필로 쓴 필체가 인상적이었다. C는 수험생들 대상으로 국어에 얽매인 책 읽기에 질려 그 틀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책머시’가 생각을 확장하는 소중한 오아시스라고 말했다. 그럼 나는? 글을 잘 쓰기 위한 인풋이 필요하고, 그 땔감을 연결하는 훌륭한 공급처가 바로 독서라고 말했다.
저마다 책 읽기에 관한 다양한 의견들이 쏟아지다 보니 시간이 금세 지나갔다. 진심을 담은 책 읽기가 가능한 분들이고, 이분들을 통해 선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필연을 느꼈다. 그런 선한 영향과 통찰 속에 인생을 좀 더 잘 살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생한 꿈을 꾼다. 생각의 보폭을 넓혀 그 경계를 넘나들게 해 줄 모임이 있기에, ‘책머시’의 일원으로서 감사하고, 진심을 다할 생각이다.
개인의 독서가 깊이를 추앙한다면, 집단의 독서는 공동의 담론을 형성해, 성찰의 거울이 된다. 그만큼 삶을 건강하고 바르게 살아가는 에너지가 됨은 물론, 활자가 전부가 아닌 결이 비슷한 사람끼리 얻는 '같이의 가치'를 배울 수 있다. 행복하게 사는 방식은 각자의 고유 선택이지만, 독서모임을 매뉴얼로 갖고 있는 이들은 뭔가 한뼘이 확장된 인생을 덤으로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