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히다가 방금 정이를 봐서 그런지,
'산다는 일'의 태도에 대해 울컥거리는 심정이 든다.
결혼이라는 제도안에 있으니 나에겐
두 어머니가 있다.
두분은 지금 살아계시고, 현대의학의 힘을 빌어
두분다 여기저기 아픈 구석은 있지만 그럭저럭 버티고 계시다.
라운드 넘버.
100이라는 숫자를 향해 열심히 달려가는 두분의
죽음에 대한, 삶에 대한 태도는
전적으로 상반된다.
한명은
신체의 고통을 느끼면서
"이렇게 내가 아프다가 죽을꺼야. 억울하다..
난 이 좋은 삶, 조금이라도 더 살고싶다"라고 매일 아침 되뇌이고,
다른 한명은
"몸이 아프니 빨리 갔으면 좋겠다.
차마 내 삶을 내가 끊어내지는 못하지만,
어차피 죽을텐데 즐거움도 고통도 모두 소용없다."라고 되뇌인다.
옆의 늙으신 어머니들을 보고있자니
매일, 삶에 숙연해 진다.
즐거움에 취할일도,
슬픔에 힘겨워할일도 없다.
.
배우 강수연은 나보다 두어살 많았다.
말하자면 우리 어릴때 강수연은 아역배우로 여기저기 화면에 나왔고,
강수연은 특별했다. 토끼모양의 옷을 입고 어리고 깜찍한 예쁜 아이가
TV에 나오면서 나와 함께 성장하는 느낌이었다.
이십대가 되자, '뭔 저런영화엘?' 출연하여 강수연은 세계적인 영화인으로 올라섰고
눈썹과 보조개는 독특한 모양으로 개성있는 마스크를 만들어냈다.
강수연은 남들처럼 요란한 연애나 스캔들 따윈 만들지않았고,
그냥 아주 가끔 영화에서, 혹은 영화제에서 나왔던 배우였다. 그런데
하도 어릴때부터 그녀가 특별하다는 생각을 해서 그런지
그게, 품위있게 느껴졌다.
그러다 느닷없이 그녀의 사망소식을 듣고는 망연자실했다.
어릴때부터 같이 성장한 '비슷한 연령대의 배우는' 늘 그자리에 있으니
마치 오래된(그러면서 연락을 하지않는) 친구의 느낌같다.
외모도 같이 늙어가서 더 그런 느낌인가보다.
정이를 보니 강수연에 대한 그리움이 왠지 더 커졌다.
정이에 대한 혹평이 이해가는 면도 있다.
왠지 신파,
사랑, 모성, 가족애에 대한 쥐어짜는 감성에 대한.
그래도 이 영화는
인간의 마음이
어떻게 작동되어가는지 가리키는것 같아,
나는 좋았다.
극중에서 정이의 딸은 자신도 죽어가는 삶 안에서,
자신을 사랑하는 엄마 정이의 뇌안에서 자신에 대한 부담과 사랑을 지우고
그녀를 세상에 놓아주었다.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때문에 죽어간
모친에 대한 애닯음을 투영하여 복제된뒤 AI로 남은 엄마의 뇌에
강한 신체로봇을 부여하여 자유롭게 해주며 쓸쓸하게 영화는 끝난다.
최근
구글의 개발자 한명이 '삶에 애착을 갖는 AI'에게 살 권리를 주어야 한다고,
변호사를 선임해 준 실제의일이
마치 영화처럼 펼쳐졌다. 세상의 많은 만화들이 점점 real이 되어가는 것처럼
우리의 세계는 끊임없이 전진한다.
나의 죽음이
나의 상상의 세계를 넘지않고 끝나는게
나의 목표다.
극중에서 강수연이 얼마남지않은 삶을 예고받았는데,
영화를 다 찍고 얼마안있어 집에서 사망했다.
영화를 보고나니 죽음이 더 연결이 된다. 가끔,
삶이 좋을때 가면,
좋겠거니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