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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락서 Dec 29. 2020

왕이 죽자 왕비도 죽었다.

왕이 죽자 슬픔에 겨워 왕비도 죽었다. 백성들은 왕비의 지고지순함에 감동했고, 죽은 왕비는 정절을 대표하는 여성으로 많은 이들의 입을 통해 전해졌다. 그런 어머니를 몹시도 사랑했던 왕자는 어머니의 죽음이 마음 아팠지만, 백성들이 어머니를 칭찬하는 모습을 보며 어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였다. 어머니를 자랑스러워하게 된 왕자는 어머니의 지조를 본보기로 세워야 한다는 의견을 내었고, 자신이 왕이 되자 왕비의 덕목에 죽음을 넘어서는 사랑이 있어야 함을 역설했다.

시간이 흘러 왕이 죽자 덕목에 따라 왕비도 죽었다. 사실 왕비는 죽고 싶지 않았다. 왕비가 왕을 사랑했던 것은 사실이었으나 자신이 왕을 따라 죽음으로 홀로 남게 될 왕자가 마음에 걸렸다. 그녀는 왕자를 끔찍이 사랑했고, 그저 왕자의 앞날을 늠름한 왕이 된 모습을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대신들을 비롯한 너무나 많은 이들이, 백성들을 포함하여 왕비의 죽음을 바라고 있었다. 그들은 입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왕비는 모든 순간순간 그들이 자신의 죽음을 바란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이 왕비의 위대한 덕목이었기 때문에. 그래서 왕비는 슬픔을 간직한 채 죽었다. 다시 한번 위대한 왕비의 덕목이 성취되었고, 백성들은 감동했다.

시간이 흘러 왕이 죽자 정치적 이유로 왕비도 죽었다. 선대왕의 이른 죽음으로 왕은 생전에 왕권을 확실하게 확보하지 못했다. 왕은 반란을 꾀하는 세력들을 끊임없이 견제해야 했고, 그러한 팽팽한 대결 속에서 왕이 죽었다. 왕비는 왕을 사랑했기에 복수를 원했다. 왕비는 왕자에게 반란 세력에 의해 왕이 겪었던 일들을 알려주려 했고, 그로 인해 깨달은 왕자가 장차 왕이 되어 피의 숙청을 해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왕의 죽음으로 힘이 빠진 것에 비해 반란 세력들은 여전히 건재했고, 그들은 왕비의 계획을 빠르게 알아냈다. 왕이 죽고 얼마 뒤의 만찬에 반란 세력들은 왕비를 독살했다. 매우 비밀스럽게 이뤄졌던 일이었기에 왕자는 내막을 알 수 없었다. 반란 세력들은 왕비가 왕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을 이기지 못해 정조를 지키고자 자살했다고 발표했다. 또 한 번 위대한 덕목이 발휘된 것에 백성들은 기뻐했다.

시간이 흘러 왕이 죽자 궁을 떠나 도망치던 왕비도 죽었다. 왕은 죽기 전까지 매일 밤 왕비를 성적으로 학대했었다. 왕비는 왕에게 대항할 수 없어 그 모든 치욕을 견뎌야 했다. 그리고 왕비에게 무엇보다 무서웠던 것은 자신이 증오하는 왕이 죽으면, 지난 왕비들의 운명처럼 자신도 죽어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정말 급작스럽게 악마 같던 왕이 죽자 왕비는 선택해야 했다. 왕비는 도저히 왕을 따라 죽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왕비는 왕이 죽은 다음 날 새벽을 틈타 도망쳤다. 아침이 되어 왕비가 사라진 것을 알게 된 대신들은 분노했다. 왕비의 위대한 덕목이 무너질 위기였다. 대신들은 최정예 요원들을 투입해 왕비를 뒤쫓게 했다. 왕비가 잡히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이튿날 잡혀온 왕비는 국가 반역 및 왕비의 책임 등을 이유로 중형을 선고받았다. 왕비는 얼마 가지 못해 죽었다.

시간이 흘러 왕은 죽지 않았지만 왕비가 죽었다. 왕비에게는 사랑하던 사람이 있었으나 정약결혼으로 왕과 결혼해야 했다. 왕비는 결코 행복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예감했고, 왕이 죽으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신도 죽게 될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왕비는 자살했다. 왕비의 죽음은 선천적으로 약한 몸이 병을 이기지 못했다는 것으로 공표되었다. 왕은 새로운 왕비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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