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저항을 통한 '행함 없는 행함'
평화를 추구하지 마십시오.
지금의 상태가 아닌 다른 상태를 추구하지 마십시오. 지금 속에 있지 않을 때, 당신은 내면의 갈등을 겪게 되고 무의식적으로 저항하게 됩니다. 평화롭지 못한 자신을 용서하십시오. 당신이 스스로 평화롭지 못하다는 것을 완전하게 인정하는 순간, 불화는 평화로 변화될 것입니다. 완전한 수용은 당신을 평화 속으로 데려갑니다. 그것이 내맡김의 기적입니다.
나의 집중을 방해하는 것은 주변의 소음이나 냄새와 같은 자극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이것들이 트리거가 될 수는 있지만, 잠깐 주의를 빼앗겼더라도 다시 돌아갈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하는 것은 '마음' 때문입니다.
오늘 아침, 어느 종합병원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어떤 아주머니 한 분이 '찍칙'하는 소리를 내며 이를 쑤시고 계셨어요. 그분이 거기에 앉아 있는지도 몰랐던 저는 한 번 들려온 소리에 귀를 쫑긋하고는, 식사를 하러 온 수많은 사람들이 내는 소음들 중에서 그 소리에만 주의를 집중했습니다. 당연히 그 소리는 더 크게 들렸고, 비위가 상한 저는 그 아주머니를 노려봤지요. 그만하라고 주의를 주는 눈빛이었지만 그분은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자리를 뜨셨어요. 하지만 저는 그 잠깐의 시간 동안 다른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분이 상해 공중도덕의 기본도 모르는 한 악인을 창조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악조건 속에서도 평화를 유지하지 못하는 나 자신에게 화가 났습니다.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봐도 결국 저는 실패했습니다. 오히려 평화롭지 못한 나를 있는 그대로 수용했을 때 평화로워졌습니다.
내맡김의 상태를 ‘나는 더 이상 신경을 쓸 수가 없다’ 거나 ‘더 이상 상관하지 않겠다’는 태도와 혼동하지 마십시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러한 태도는 숨겨진 원망이 담긴 부정적 감정으로 오염되어 있으며, 내맡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면을 쓴 저항일 뿐입니다. 내맡길 때 안쪽으로 주의력을 돌려서 저항의 흔적이 남아 있지는 않은지 점검하십시오. 아주 주의해서 살펴야 합니다. 한 줌의 저항이 생각이나 감정의 형태로 어딘가 어두운 구석에 숨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내맡김이 쉬워 보이지만 저항하지 않는 것은 어렵습니다. 우리가 통증을 느낄 때, 온몸에 힘이 들어가는 것처럼, 고민이 있을 때 머리를 싸매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고통에 민감하고 이에 저항합니다. 이럴 때 몸에 힘을 빼거나 고민을 멈추는 것은 어렵죠. 그 고통을 다 겪고, 더 이상 몸에 힘이 없을 때에야 내맡김이 가능해지기도 합니다. 그때 우리는 진정한 평화를 경험하는데요.
내맡김은 당신을 존재의 근원적인 에너지에 연결해 주며, 당신의 행위에 존재가 주입되면 생명 에너지가 활기를 띠고 당신을 지금 속으로 더 깊이 데려갑니다. 무저항을 통해 의식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당신이 무슨 행동을 하든, 무엇을 창조하든, 그 성취도가 비교할 수 없이 향상됩니다. 열매가 저절로 열릴 뿐만 아니라 그 질도 뛰어납니다. 우리는 이를 ‘행함이 없는 행함’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수천 년 동안 알아 왔던 방식으로 작용하는 ‘일’이 아닙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깨우치면 ‘일’이라는 단어는 우리의 어휘에서 사라지고, 새로운 단어가 창조되어 쓰일 것입니다.
이를 경험할 때는 세상을 다 가진 듯도, 세상의 비밀을 밝혀낸 과학자가 된 기분입니다. 무저항을 통한 '행함이 없는 행함'이란 저절로 자연스럽게 일어날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일을 어떻게 해내겠다에 집중하기보다, 할 수 있을까 없을까를 고민하기보다,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고 일어난 일을 '인식'하면 됩니다. 물론, 말처럼 쉽지 않을 때도 있죠.
두 번째 내맡김의 기회는 ‘지금 여기’입니다. 당신이 만일 외부에 있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내면에 있는 것을 받아들이십시오. 외부적인 조건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내부적인 조건을 받아들이십시오. 이는 자신이 느끼는 고통에 저항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고통을 거기 있도록 허락하십시오. 슬픔, 절망, 두려움, 외로움 등 어떤 형태의 고통이든 거기에 당신 자신을 내맡기십시오. 거기에 이름표를 붙이지 말고 지켜보십시오. 그것을 다정하게 껴안으십시오. 그러면 내맡김의 기적이 뼈저린 고통을 흔들리지 않는 깊은 평화로 바꾸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외부에서 일어난 사건이 감당하기 어렵다면, 그것을 이미 일어난 일로 괜찮다고 할 수 없다면, 그 고통을 그저 인식하는 것이 내맡김이라고 톨레는 설명하는데요. 큰 슬픔이나 절망, 두려움과 무력감에 '왜?'라는 설명을 담지 않고 그대로 지켜보는 것입니다. 더운 날씨에 '덥다 덥다'할수록 덥고, 피를 뽑을 때 '무섭다 무섭다'할수록 바늘이 더 크고 아프게 느껴지는 것처럼, 어떠한 사건으로 해서 느끼는 감정들도 이름을 붙이고 분석을 할수록 나는 더 슬프고, 절망스럽고, 두려우며, 무기력해지는 것 같습니다.
이제 조금은 그저 '내맡겨라'라고 하는 것보다는 구체적으로 내가 시도해 볼 수 있는 것들이 있는 것 같은데요. 하지만...
온전히 내맡겼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죠?
그때는 더 이상 질문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책의 마지막 문장입니다. 완결을 이렇게 위트 있게, 반박할 수 없게 끝내다니. 계속 질문만 하지 않고, 나의 문제로, 나의 상황에서의 내맡김을 실천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