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에서 찾은 직장 생활 처방전
전 직장 상사는 쉬는 날이면 자전거를 타곤 했다. 처음에는 집 근처인 일산 일대에서 자전거를 타는가 했는데, 거리는 더욱 길어지고 범위도 점차 넓어져서 어느덧 자전거로 여름휴가 겸 국토 종단이라는 것을 하기도 했다. 팀장님의 위치는 팀 카톡방이나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실시간으로 공유가 되었는데, 당시에 나는 그런 모습이 귀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해하기 어렵기도 했다. 다른 좋은(?) 취미도 많이 있는데, 그 더운 여름날 땀을 흘려가며 자전거를 타는 그의 마음은 당최 무엇일까. 취미라고 보기에는 너무 하드코어 하지 않은가.
자전거를 타는 상사를 떠나 최근 나는 새 직장으로 이직을 했다. 자전거 타는 점만 이해하기 어려웠다 뿐이지, 무척 좋아하고 존경하는 팀장이었기에 떠나면서도 마음이 좀 복잡했다. 팀장은 곧 하나의 회사와도 같다는데, 좋은 팀장을 떠나는 것이 과연 좋은 선택일까. 꽤나 고민했지만 결국 이직을 했고, 나는 곧 그 선택을 후회하게 됐다. 새 회사는 내가 생각해온 혹은 외부에서 바라봐온 모습과 다른 곳이었다. 밀레니얼이 선호하는 트렌디한 회사인 줄 알았으나, 여느 금융권과 다름없는 딱딱하고 보수적인 조직이었다. 속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정확히 누구한테 속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회사인지, 헤드헌터인지, 아니면 내가 나를 속여온 것인지. 여하간 속아온 이미지가 아닌 실제의 이미지를 다시 수립하며, 새로운 조직에 맞춰가는 과정 속에서 나는 조금 아팠다. 나는 자율과 권한이 큰 조직에 잘 어울리는 유형의 재원인데, 이 곳은 굉장히 세부화, 규격화된 롤만 수행해야 했기에 말하자면 나의 본성을 거스르는 느낌이 들었달까. 나란 사람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된 계기이기도 하지만, 깊은 우울감이 찾아오기도 했다. 버텨야 할지, 버틴다면 어떻게 버텨야 할지, 정답 없는 나날을 한동안 보냈다.
문득 전 직장 팀장님이 떠올랐다. 고민상담을 청해볼까도 생각했으나, 어쩐지 염치가 없어서 그건 접어두기로 했다. 그러다가 문득 그처럼 나도 자전거를 타보자 싶었다. 아저씨들의 하드코어 취미라고 여겨졌던 그 자전거. 처음 달린 곳은 춘천이었다. 상상마당에서 대여한 자전거로 의암호를 한 바퀴 돌았다. 초반엔 "그냥 인터넷에서 검색해온 인스타 성지 카페에나 갈걸 그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춘천 카페도, 서울로 돌아가는 일정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회사도 다 잊고 그저 달리는 것 자체를 내가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문득 그 팀장님의 마음이 떠올랐다. 일산에서부터 땅끝까지, 그도 이런 마음으로 달렸던 것일까? 이제 보니 자전거 타기 만큼 조직 생활로부터 나를 지키는 처방전도 없는 것 같다. 말 그대로 자유인이 되어 보는 시간인 셈이다.
아직도 나는 답은 모른다. 버텨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버틸지. 그렇지만 지친 나를 회복하는 정답은 안다. 자전거 타기. 그래서 장거리 라이딩, 더 나아가서는 자전거 출근까지 노려보기 위해서 라이트 브라더스를 통해 샤오미 치사이클을 만나보기도 했다. 고가라는 점이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일단 한 번 페달을 밟아보니 일반 자전거와 달리 쓱- 미끄러지는 느낌에 이거다 싶었다. 아무래도 저질 체력인 나에게는 전기자전거처럼 힘이 되어주는 동력이 있다면 더 든든할 테니 말이다. 앞으로 더 많이 달려야지, 더 나를 회복해 나가야지. 과거의 나처럼 혹시나 누군가 자전거를 아직도 '아저씨들의 하드코어 취미'라고 생각한다면, 그도 언젠가는 자유인이 되어 보는 시간을 느껴보기를. 진정한 라이더가 되기를. 인생의 가장 좋은 처방전인 자전거는 항상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