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책 100권 읽기에 도전한다
흑백과 어울리는 나라도 생각보다 자주 알록달록한 글을 쓰고 싶다.
글쓰기를 배운 적도 누가 시킨 적도 없지만, 어쩌다 보니 쓰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일기장에 쓰고 포도알이나 받으면 좋을 것 같은 글을 쓰면서도 정작 일기장에는 쓰지 못하는 이유는, 이때까지 아주 많은 일기장을 사고, 아주 많은 일기장을 찢어서 버렸기 때문이다. 누가 볼까 무서웠던 그 문장들은 사실 미래의 행복한 내가 볼까 봐 무서웠던 글이기도 했다. 누구라도 아무 생각 없이 열었다가 내 썩고 곪은 마음을 보고 당황할까 봐, 나를 나보다 더 어둡게 볼까 봐, 나는 그게 늘 무서웠다.
미니홈피 시절에는 마음에 드는 글이 있으면 스크랩하는 걸 즐겼다. 물론 포도알을 모으며 다이어리를 채우기도 했다. 그 공간이 참 좋았다. 솔직한 듯 솔직하지 않았지만 그땐 요즘 같이 감정이 메마르지 않은 시대였기 때문에 설령 중2병보다 심한 글을 스크랩한다고 해도 오글거린다며 조롱당하지 않았고, 내 마음이 지옥 같아도 티 나지 않게 그냥 '공감글' 정도로 모아둘 수 있었다. 미니홈피 다이어리에는 심각한 글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가끔 내 일기를 돌아다니는 글인 줄 알고 복사해가는 친구도 있었다. 그때의 나는 그렇게 감정을 표출했다. 그러다 한 번, '너는 우울을 즐기는 것 같아.'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때의 말이 한참이 지난 지금도 종종 머릿속에 맴돈다. 나는 그때 전혀, 한 번도 우울함이 즐겁지 않았었지만, 글쎄, 지금 다시 그런 말을 듣는다면 이제는 '그러게. 그런 것 같기도 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간의 버린 일기만큼 마음이 단단해졌기 때문일까.
그런 말까지 들으며 자란 나도 지금은 알록달록한 글을 쓰고 싶다. 두서없는 글을 쓰기에만 정신이 팔린 삶을 살아서, 내 얘기가 아니고는 어떻게 쓰는지도 모르지만, 알록달록하고 포근하고 귀엽고 담백한 글을 보면 사정없이 마음을 빼앗겨버린다. 그런 글을 쓰는 필자의 감성에 동화되고 싶은 심정이다.
나를 알록달록하게 만드는 건 식물과 인형, 고양이와 머그컵, 작은 소품과 단순하고 담백한 글, 선이 많지 않지만 우주를 담은 것 같은 그림, 그리고 하늘과 바다. 오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 끝에 나는 나를 알록달록하게 만드는 건 동화 같은 것들이란 결론을 얻었다. 그래서 동화를 읽어보려고 한다. 내 무채색 마음에 색을 입혀줄 동화책을 찾아다닐 생각을 하니 어린이날을 하루 앞둔 어린이가 된 것 같이 설렌다.
이미 어른이 되어도 너무 어른이 되어서 단순한 동화가 잔혹하게 느껴질 때도 있겠지만, 오롯이 지금의 내가 느끼는 감정으로 동화책의 감상을 적어나가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내가 어릴 때 꿈꿨던 귀여운 호호 할머니가 되는 중요한 과정이기도 하겠다. 언젠가 해줄 수 있는 이야기가 가득한, 알록달록한 글을 잔뜩 쓸 수 있는 행복한 할머니가 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