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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라 Mar 09. 2017

미운 오이 새끼

005. 평생 알 수 없을 그들의 마음. 





나는 오이를 못 먹는다. 언제부터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릴 적부터 먹지 못했다. 아니 억지로 먹은 적은 많다. 최대한 숨을 안 쉬고 눈을 질끈 감고 삼키곤 했었다. 편식한다고 혼나고, 그러니 살이 찌지 라는 소리를 듣기 싫어 그 괴로움을 오래도 참았던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못 느끼는 것 같은데 나는 오이 냄새가 나면 속이 뒤집혔다. 깡소주를 5병 원샷한 사람처럼 헛구역질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말해도 누구도 내 오이 알레르기 반응을 믿어주지 않았다. 김밥을 싸주던 엄마도, 학교 선생님들도. 


학교에서 산으로 소풍을 가면 오이를 준비물로 적어주곤 했다. 나는 오이를 못 먹어서 안 가져갔다. 젊은 미혼의 남자선생님이었던 당시의 담임은 사춘기 여고생이었던 나를 많은 사람들 앞에서(남녀공학이었다) 편식해서 살찌는 미련한 돼지 취급을 했다. 그리고 다른 아이의 오이를 반 잘라 나에게 주었으나 나는 그 오이를 먹느니 그 산에서 뛰어내리고 싶었다. 기억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유치원 때는 가지를 먹지 않는다고 모든 아이들이 밥을 다 먹고 노는 동안 선생님이 나와 한 아이를 끝까지 앉혀놓고 가지를 먹였다. 유치원은 중간에 들어가서 오래 다니지도 않았는데 그 가지를 먹은 날은 24년이 지난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어린 나에게는 공포이였던 것이다.


나는 오이만 못 먹는 게 아니라 오이와 비슷한 것들에도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 가지와 오이는 냄새가 너무 자극적이고, 참외 멜론 수박 바나나 키위 등에도 알레르기 반응이 있다. 종류 마다 반응의 강도는 다르지만 비슷한 반응이 나타난다. 제일 심한 게 참외인데 피부가 간지러운 것이 아니라 손가락이 들어가지 않는 귓속 깊은 곳과 식도 안쪽이 가려워진다. 반응이 심하게 나타나면 고막과 식도를 다 뜯어버리고 싶어질 정도로 급격하게 가렵고 예민해진다. 하지만 이것도 믿어주는 사람들이 없었다. 엄마는 늘 편식한다고 화를 내며 억지로 먹이려고 했다. 나는 내 괴로움이 내 탓인 것처럼 늘 주눅들어 있어야 했다. 어릴 때 친구들과 빙수를 먹으러 가면 친구들은 바나나가 가득 든 과일빙수를 먹고 싶어 했고 그럴 때마다 나는 눈치를 봐야 했다.  









나의 유난스런 체질은 이게 끝이 아니었는데, 가장 흔한 복숭아 털 알레르기도 있다. 하지만 그건 눈에 보이게 피부가 뒤집히기 때문인지 내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엄마가 먼저 알고 있었다. 먹는 건 괜찮고 복숭아 껍질만 피부에 안 닿으면 되었기 때문에 늘 깎아서 주셨던 기억이 난다. 나는 잘 이해가 안 됐다. 피부가 간지러운 정도는 그리 걱정을 하면서 귀와 목젖을 뜯어버리고 싶은 괴로움은 왜 믿어주지 않는 건지, 속의 내장이 다 입 밖으로 나올 것 같은 오이의 메스꺼움은 왜 믿어주지 않을까 늘 억울했었다. 세월이 많이 지나고 지금은 나랑 비슷한 체질을 티비에서 2명 정도 보았고, 인터넷에서도 몇 명 보았기 때문에 나만 유난하다 생각하고 자책하는 건 멈췄다. 그리고 누군가를 굳이 이해시키려 마음을 쓰는 것도 멈췄다. 







나쁜 것이 아닌 타고난 어떤 것이나 나만의 고유한 어떤 것. 직접적으로 누군가를 괴롭히지도 않고 위법도 범법도 아닌 한 사람의 체질이나 성향, 성격, 취향, 혹은 색깔 그런 것은 긴 시간을 통해 자신만이 변화시킬 수 있고, 죽을 때까지 변화시킬 수 없을 수도 있다. 그건 여러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게 되면 불편할 수는 있으나 그것이 그 사람을 괴롭히는 원인이 되어서는 안 되고, 이해하고 말고 할 것도 아니다. 그냥 그것은 그 사람 자체이기 때문에. 



내가 받아온 눈초리가 나에게 상처가 되었던 날들 때문인지 그 어떤 별스러운 이유로도 누군가를 다르게, 나쁘게 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그 사람이 가진 모든 것은 그 사람 자체이자, 그 사람을 만든 수많은 것들 중 하나 같은 것이니까. 



나는 오이를 좋아하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 오이를 얼굴에 붙여 마사지를 하고, 그것을 떼어서 먹거나 다이어트 한다고 오이만 먹는 사람들, 식당에서 피클을 계속 여러 번 리필해서 먹는 사람들의 마음과 기분을 나는 죽을 때까지 이해할 수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그런 사람을 폄하하거나 찡그린 채로 본 적은 없다. 카라멜마끼아또만 먹는 사람이 있고 아메리카노만 먹는 사람이 있듯이 오이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테니까. 많은 사람들이 그랬으면 좋겠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너도 좋아하면 좋겠다 라는 마음은 백 번 이해하지만,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치킨도 누군가에겐 무서운 조류일 수 있다는 것. 그냥 모든 차이와 다름을 그럴 수 있다, 그렇구나 정도로 생각해주면 좋겠다. 부디 그 정도의 마음의 여유는 누구에게나 일반적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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