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됐을 리가 없잖아?
시리나 구글 어시스턴트 등 음성 비서들은 자동으로 일어나게 되는 특정 언어 세트가 있다. 애플의 경우 “시리야 (Hey, Siri)”이고, 구글은 “오케이, 구글 (Okay, Google)”이다.
문제는 아이폰이나 안드로이드폰이 이 문구를 어디서라도 듣는 순간 알아서 켜진다는 것이다. 애플 이벤트를 시청하다가 시연자가 “시리야”를 말하는 순간 옆에 있던 아이폰의 시리가 켜져 버린다거나, 한 뉴스 리포트는 아마존의 인공지능 비서인 알렉사에게 인형 집을 주문하도록 해버린 사건도 있었다.
물론 이런 경우는 모두 우발적인 사건이다. 하지만, 이번 버거킹의 광고는 역으로 일부러 구글 어시스턴트를 깨워버리게 광고를 만들었다. 15초 정도의 이 광고는 버거킹의 직원이 “15초 안에 와퍼가 뭔지 설명하기는 어렵다”라면서 대신에 “오케이 구글, 와퍼 버거가 뭐지? (Okay Google, what is the Whopper burger?)”라고 말한다. 이 멘트를 들은 구글 홈이나 안드로이드 폰에 장착된 구글 어시스턴트가 자동으로 켜져서 와퍼의 위키백과 검색 결과를 알려주는 식이다. 이 광고는 오늘부터 미국의 프라임 타임 (우리나라로 치면 저녁시간의 주 시청 시간대) TV 프로그램의 광고로 편성될 예정이었다.
버거킹은 실제로 이 광고를 준비하기 위해 치밀하게 움직였다. 심지어 구글 어시스턴트가 읽게 될 위키백과의 첫 문장을 지난주에 일부러 바꾼 정황이 포착되기도 했다. 와퍼 항목은 원래 “와퍼 샌드위치는 국제 버거 체인인 버거킹과 호주 체인인 헝그리 잭에서 판매되는 대표 햄버거 제품이다”로 시작되었으나, 지난주에 “와퍼는 방부제나 필러가 없는 100% 소고기 패티를 불에 직접 구워 썬 토마토와 양파, 상추, 피클, 케첩, 마요네즈를 얹어 참깨씨 빵에 제공되는 버거이다”라는 광고 카피와 매우 유사한 문구로 바뀌었다. 더 버지에 따르면, 편집자의 아이디는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 등으로 미루어봤을 때 버거킹의 마케팅 담당자인 페르난도 마차도로 추정된다고 한다. 버거킹은 이에 대해 아무런 답변이 없었다고 하는데, 이는 아마 위키백과의 편집 정책에 “대놓고 자신을 광고하는” 문구는 자제해달라는 부분이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버거킹의 이 광고에는 한 가지 거대한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위키백과는 누구나 편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광고가 공개된 순간 누리꾼들은 위키백과로 달려가 와퍼 항목을 마구 편집하기 시작했다. 여기 기즈모도가 수집한 목록을 보면 다음과 같다:
“와퍼는 방부제나 필러가 없는 100% 쥐고기와 자른 발톱으로 만들어진 패티를 불에 직접 구워 썬 토마토와 양파, 상추, 피클, 케첩, 마요네즈를 얹어 참깨씨 빵에 제공되는 버거이다.”
“’와퍼’는 패스트푸드 국제적 레스토랑 체인인 버거킹이 만드는 암을 유발하는 햄버거 제품이다.”
“와퍼는 방부제나 필러가 없는 중간 크기의 어린이로 만들어진 패티를 불에 직접 구워 썬 토마토와 양파, 상추, 피클, 케첩, 마요네즈를 얹어 참깨씨 빵에 제공되는 버거이다.”
“’와퍼’는 패스트푸드 국제적 레스토랑 체인인 버거킹이 만드는 최악의 햄버거 제품이다.”
“[와퍼는] 크기 조정과 빵 변경 등 다양한 재공식화를 거쳤으나 여전히 빅맥과 비교하면 훨씬 수준이 떨어진다.”
“와퍼는 방부제나 필러가 없는 100% 소고기 패티를 불에 직접 구워 썬 토마토와 양파, 상추, 청산가리, 피클, 케첩, 마요네즈를 얹어 참깨씨 빵에 제공되는 버거이다.”
결국, 이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구글이 나서야 했다. 구글은 미국 시각 오후에 구글 어시스턴트가 위의 말에 반응하지 않도록 필터링을 걸어버렸다. 다른 사용자가 같은 질문을 하면 답하나, 저 광고의 목소리에는 반응하지 않는다고 한다. 버거킹은 구글과의 사전 협의도 거치지 않고 광고를 집행했었다고 하는데, 아마 이렇게 구글 어시스턴트의 이미지에 타격을 입힌 것에 대해 구글도 별로 기쁘지 않을 것이다. 거기에 위키백과는 관리자들만 와퍼 항목을 수정할 수 있도록 아예 해당 항목을 잠가버렸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라면 무엇일까? 다른 사람이 제어할 수 있는 요소가 포함된 마케팅 캠페인은 위험요소를 확실히 알고 집행해야 한다는 점이겠다. 아, 그리고… 누리꾼들을 얕보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