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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림의미학 Oct 04. 2019

진부한 해피엔딩엔 성장이 없다.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 - 고레에다 히로카즈

진부한 헤피엔딩엔 성장이 없다.

행복한 일상보다는 놓쳐버리는 순간을 그려내는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Happly ever after" 그래서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를 외치는 영화에 환멸을 느꼈던 순간,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를 만났고, 그의 자서전을 접하며 비로소 "내가 왜 고레에다 히로카즈라는 감독을 좋아하지? 마블 보다 그의 영화가 왜 기다려지지?"라는 반문에 답할 수 있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1991년 다큐 멘터리로 시작해 1995년 환상의 빛을 통해 영화 세계에 입문했다. 첫 데뷔작인 환상의 빛이 베니스 영화제에서 촬영상을 받고, 최근 어느 가족을 통해 칸에서 황금종려상까지 받는 기염을 토해낸다. 


내 경우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라는 영화를 통해 우연히 그를 알았고, 영화를 보고, 감탄보다는 대체 이 천재 감독은 누굴까라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됐다. 그러던 중 한 독서모임을 통해 그의 자서전을 읽고, 그의 영화 철학 "의미 있는 죽음보다 의미 없는 풍성한 삶을 발견한다"을 조금이나마 발견할 수 있었다. 


고레에다 영화의 엔딩은 확실히 다른 착짓점에서 끝을 낸다. 표면적으로 보기엔 어딘가 부족하거나 아프거나 걱정되는 주인공의 마지막으로 보인다. 그 이면에는 보잘것없어도 잘 살아내는 우리들의 시작, 깨닫지 못한 그저 그런 일상에서 성장하는 것을 담아낸다. 


그의 영화엔 영화 캐릭터가 아닌 내가 주인공이 된 것처럼 어딘가 내제 돼 있던 나의 시궁창을 꺼내 주고, 피하고 싶지만 응원하고, 지지해주고 싶었던 내가 있었다. 감정이 과한 에세이들이나 "그래서 이렇게 행복해졌답니다"라는 영화에서는 절대 만날 수 없던 스토리 속에 내 삶을 대입하는 일. 아마도 그가 현장에서 배우에 맞춰 시나리오를 교정하고, 말로 대사를 전달하고, 다큐멘터리나 홈드라마처럼 촬영해준 것에 대해 답이 있을 수도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를 볼 때마다 '또 뒤통수 맞았구나'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 항상 엔딩 직전에 영혼까지 탈탈 털어 모든 눈물을 쏟은 기억 때문이다. 감동적이거나 새드 무비를 보다 보면 감독이 심어놓은 무한한 복선으로 언제쯤 울게 될지 파악하고, 미리 울 준비를 끝내 놓는다. 그의 영화는 지루하리만치 잔잔하면서도 먹먹하게 흐르다 엔딩에서 예상치 못한 소나기를 만난 기분을 느끼게 한다. 몇 번 당했으면 이젠 분명히 울 준비를 해도 될 것 같은데 그는 '새드'라는 화려한 복선을 영화에 깔지 않는다.


분명히 그가 얘기하고 싶은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이 아닌 오늘을 사는 기적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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