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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슐랭을 읽는 여자 Nov 30. 2018

내추럴 그리고 와인   

Chapter 1. Natural 이란?  

내추럴 와인을 처음 접하게 되었던 때는 3년 전 뉴욕에서 대학을 다녔던 때다.

그 당시 때는 내가 추천받은 와인이 내추럴 와인 인지도 몰랐다. 사실 내추럴 와인이 뭔지도 몰랐고, 그냥 오렌지 와인을 추천한다길래...

 


그 날은 2015년 2월, 한참 새로운 레스토랑이 있으면 예약하던 열정 있는 블로거의 일상 중 하루였다.

브루클린에 핫한 나폴리 피자집이 생겼다는 소식에 부랴부랴 예약해서 도착하자마자 피자 두 판과 파스타를 시키고, 와인 추천을 부탁했던 기억이 난다.




부드러운 허니서클과 마른 살구, 버섯과 earthy 미네랄이 입안에서 깊고 부드럽게 자리 잡았다.


그 당시 때는 오렌지 와인이라 해서, 진짜 오렌지로 만드냐... 이런 헛소리를 서버한테 한 기억이 난다.창피한 기억이지만, 그 당시에 이런 호기심들이 하나둘씩 쌓여 지식이 되고 또 어디서 배울 수 없는 공부가 되기 때문에 서버가 나의 선생님이었고, 셰프가 나에게 교수님과도 같은 존재였다.


또한 나에겐 동갑이자 음식에 대한 열정으로 둘이서 먹는 얘기로만 하루를 다 보낼 정도로 친한 종훈이라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나에게 참 많은 것들을 가르쳐준다. '내추럴'이란 단어도 그가 나의 머리에 넣어준 사람이다.


"재인아, 너 혹시 요즘 유행하는 내추럴 와인이라고 알아?"


"뭔데, 그게"


"음. 설명하자면 복잡한데, 화합 첨가물을 넣지 않고, 최대한 와인을 "natural" 하게 만드는 거야"


"음. 무슨 말이야 그게. 일단 마셔볼래 렛츠고"



그렇게 처음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다.


종훈이의 추천으로 난 뉴욕 여행에서 가브리오 비니, GUT OGGAU 등 유명한 내추럴 와인을 구매하였고, 마시면서 내추럴이 무엇인지, 그 맛은 일반 와인과 어떻게 다른지 알고 싶었다.


난 그때의 그 기억, 그 맛을 잊을 수 없다.


,


Serragghia Bianco Zibibbo Vino Secco

남쪽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Zibibbo 품종으로 만든 화이트.마시자마자, 리치, 그리고 애플 망고, 캔 통조림이 아닌 과즙 팡팡 신선한 황도 복숭아의 향기들이 우르르 쏟아져 내렸다. 마치 내 입안의 계단에서 과일바구니가 쏟아져 내린 느낌이랄까.

그 많은 과일이 계단에서 떨어진 다음, 저 멀리서 자몽이 느지막하게 입안을 내려오는데 그 신선함, 약간의 쌉쌀 향긋한 향기가 이 와인의 화려한 마지막을 세련되게 장식했다.


정말 너무 멋졌다.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술을 잘 못 마시는 내가 저 와인을 중세시대 사람처럼 (내 상상 속 Game of Throne 이미지) 수돗물같이 퍼마시고 싶어 할 정도였으면 말 다 하지 않았나.




그렇게 아무런 지식 없이.. 아무런 생각 없이.. 내추럴이라는 단어에 대한 깊은 이해 따위 내려놓고 입안에서 느껴지는 행복의 계단 같은 와인을 열망하고 찾아 헤맸다.


여행을 갈 때마다 샌프란시스코, 뉴욕, 일본, 프랑스, 홍콩 등 나는 내추럴을 찾아다녔고, 각 나라의 레스토랑 소믈리에, 와인 샵의 오너, 국내에서 내추럴을 수입하시는 대표님들을 만나면서 몸으로 부딪치며 내추럴이 뭔지 감으로 느꼈다.


한없이 부족했다. 그냥 10000피스의 직소퍼즐에서 중앙 이곳저곳 10개의 퍼즐 조각만 맞춘 느낌. 그들과 대화를 하면 할수록 내가 가진 와인에 대한 지식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고, 내추럴에 대한 정의는 한 걸음씩 두 걸음씩 더 나에게서 멀어져 갔다.

어쩌면 이 시기에 나는 'Natural'에 대한 뜻을 이해하고 싶어 안달이 났던 거 같다.



이쯤 되면 여러분도 '내추럴이 뭐길래?'라고 물어보실 듯하여 나 또한 내추럴이 무엇인지 설명하고 싶지만, 이건 마치 제다이, 포스, 시스, 퍼스트 오더 등 못 알아듣는 단어들에 멘탈이 붕괴되어 지나가는 스타워즈 티를 입은 오덕을 붙잡고 포스의 균형이 뭐냐고 물어보는 거랑 거의 비슷하다.


그러니 잠시만 그 궁금증을 고이 접어 내 이야기부터 들어주길 바란다. 지나가다 붙잡힌 와인 오덕이니, 천천히 설명해주겠다.


현재로서 내추럴 와인은 법적으로 제도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단어 자체에 대한 이해로 넘어가야 한다. 우리가 알다시피 여러 단어들이 '내추럴'을 묘사한다. '살아있는''순수한''진정한''개입이 적은''믿을 만한' 등등. 내추럴이라는 뜻은 와인 전문 용어이기 이전에 영어를 아는 사람이라면 쉽게 아는 단어이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유의어가 다 제각기 다를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내추럴'이라는 단어의 특성상, '내추럴'과 '내추럴하지 않은 것'의 차이는 굉장히 주관적이다.


예를 들어보겠다. 향수를 사러 들어왔다.

점원이 물어본다. "어떤 향수를 찾으세요?"

"저는 좀 내추럴한 향을 좋아해요"

"내추럴하다면 정확히 어떤 걸까요?"

"좀, 편안 하달 까요? 자연스러운?"

"그렇담 이 샌달우드가 베이스인 이 향수는 어떤가요?"

"아, 저는 샌달우드는 좋아하는데, 탑노트의 플로럴 한 노트는 좀 인위적인 거 같아요"

"그럼 좀 더 허브 계열이나 그린 계열의 노트가 탑인 것들을 보여드릴게요"


내추럴. 진짜 알면 알수록 다가가기 쉬우면서 모호한 단어이다. 21세기 현대 사회에, AI까지 발전된 이 시대에서 내추럴이라 함은... 나에게 얼마나 자연스럽게 그리고 편안하게 다가오냐의 차이인데, 그 차이는 실로 너무나 다르지 않을까?

향수 '자체를' 인위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저 대화를 보고 어이가 없을 것이다.

'아니 대체 향수 자체가 인공적인데, 어떻게 내추럴하다는 거야?'

또 어떤 사람은 일상에서 쉽게 느끼는 섬유유연제 냄새가 내추럴하다고 느낀다. 하지만 나는 싫다. 그건 내추럴하지 않다. 내 머릿속 내추럴은 무조건 나무가 들어가야 한다. 적어도 자연과 관계가 있어야 내추럴이라 말한다. 아 정말 애매하다.


와인 세계도 다르지 않다.

태초에 와인은 어떻길래, 그리고 지금의 와인은 어떻길래, 내추럴이 있고 언내추럴이 있으며, 왜 구분을 하는가?



Natural의 사전적 의미를 아래와 같다.

existing in or caused by nature; not made or caused by humankind.

자연에서 혹은 자연에 의해 존재하는; 인간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은


아니, 와인이라 함은 그냥 포도를 즙으로 짜서 발효한 술 아닌가. 포도는 자연의 것이다. 그리고 발효 또한 자연의 힘을 빌린다. 하지만 인간이 만드는 것이다. 그렇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내추럴을 의미하며, 인간이 만들기 때문에 애초부터 와인은 내추럴이라는 단어를 쓰지 못하는 거 아닌가? 와인은 애초부터 내추럴 아닌가? 왜 굳이 앞에 형용사 Natural을 붙이는가? 멘탈 붕괴될 거 같으니,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서 내추럴을 설명하겠다.


 

마스터 소믈리에와 더불어 와인 전문가로서 최고의 명예를 가진 Master of Wine의 이자벨 르쥬롱은 내추럴 와인의 바이블이라 불리는 Natural WIne에서 이렇게 말한다.


"어쩌면 '내추럴 와인'은 최적의 용어가 아닐지도 모른다. 사실 사전적 정의로 보면 그냥 와인인데, 구분 짓기 위해 꼭 어떤 수식어를 붙여야 한다는 것 자체가 수치스러울 정도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세상이 변하여 오늘날의 와인은 단순히 '발효된 포도즙'이 아니라 '포도즙에 X, Y, Z를 넣어 발효시킨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 따라서 그 특정한 부류를 일컫기 위해서는 와인이라는 용어만으로는 부족한 것이다"  

                                                                                                                          - Natural Wine, 이자벨 르쥬롱




그렇다. 내추럴 와인은 그냥 와인이다.

하지만 현대시대에 대다수의 와인들이 이미 '그냥 와인'이 아니다. 그들은 포도즙에 산화방지제, 설탕, 배양 효모 등 다양한 것들을 넣어서 맛을 상업화하였다. 그리고 우리들은 그 맛을 좋아했고, 그 맛을 좋아했기에 더 많은 XYZ 와인들이 생겨났다. 정말 Natural 한 현상이다. 수요가 있기에 공급이 있었고,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나도 실로 맛만 있으면, 와인에 뭔 짓을 하든 간에 일단 마시고 본다. 내 혀한테 뭐라 할 수 없다. 인간의 본능이다. (맛있으면 장땡. 새콤달콤, 바나나맛 우유, 홈런볼 영원해라.)



내추럴이라는 형용사를 붙인 '내추럴 와인'은 사실,

태초의 '와인'을 묘사하는 단어였는데 이제는 XYZ 와인들의 비중이 높아졌고, 소비자 중 특정 대상들이 XYZ를 뺀 와인들이 아직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데 그런 와인들만을 마시고 싶어 그냥 '와인'이라는 단어에서 '내추럴'을 붙이게 되었다. 와인 메이커가 자기 스스로 붙인 이름이 아니다. 바로 소비자가 그런 와인들을 마시고자 붙이게 되었다.

다 먹고 마시고 즐기자고 한 일이다.

 


그렇담, 이제 가장 골치 아픈 이야기를 하겠다.

그 XYZ를 '얼마만큼' 빼야 '내추럴'이냐에 대한 문제이다.


정답은, 없다. 아무도 모른다. 공식적으로 정해놓은 게 없다. 어떤 곳은 산화방지제인 SO2를 넣지 않으면 무조건 Natural이다 하는 사람이 있고, 어떤 곳은 SO2를 최소한의 양만 넣으면 Natural이다 하고,

어떤 곳은 필터도 하지 말아야 Natural이다 하고,

또 어떤 곳은 Racking 까지는 Nautral로 받아들일 수 있다 하고.


사실 이런 논쟁이 무의미한 게,

처음부터 내가 아는 내추럴 와인메이커들은 자기 와인을 스스로 내추럴 와인이라 부르지도 않는다.

그리고 모든 와인메이커는 제각기 다 다른 양조방식을 가지고 있다. 양조를 하지도 않는 소비자가 이렇게 만들어야 내추럴이네 아니네하며 왈가왈부할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어떻게 보면, 그냥 다 자기 취향에 비슷한 걸로 우기는 거다. 내 정의에 맞는 와인이 더 맛있다고.나도 그랬던 시절이 있었다. 얼굴 빨개지도록 우기면서 진정한 내추럴이란 이런 거다 하면서 빽빽 질러댔다. )



하지만 현실에서, 우리가 자주 가는 레스토랑에서, 와인 샵에서, 소비자를 위해 내추럴 와인은 존재한다. 그러기에 MW의 말을 인용해 내추럴 와인에 대한 정의를 설명하겠다.


보증이 됐든 안 됐는 간에, 내추럴 와인은 존재한다. 최소한 이것은 유기농법을 사용하는 포도밭에서, 병입 과정에서 소량의 아황산염을 넣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첨가하거나 제거하지 않고 생산한 와인이다. 구글에 나와 있는 와인에 대한 해석, 즉 옛날 방식대로 자연스럽게 발효된 포도즙에 가장 가까운 것이다.

                                                                                                                          - Natural Wine, 이자벨 르쥬롱



그렇다. '옛날 방식대로 만든 그때의 와인'과 가장 가까운 방법. 소량의 아황산염(산화방지제)을 쓰는 곳도 있기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독자들은 아황산염이 무엇인지 물을 수 있을 것이다.

짧게 설명하면, 산화 방지제고, 와인을 산화로부터 보호해준다. 사실 와인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와인 스스로 소량의 아황산염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와인에는 아황산염이 존재한다. 그래서 굳이 넣지 않아도 된다 생각하지만, 와인을 생산하다 보면 그 양이 와인메이커의 기준에 적을 수 있다.

그럴 때 그들은 인위적으로 아황산염을 더 넣는다.

 


아황산염이 인체에 치명적이다라는 발표는 없다.

모르셨겠지만 우리의 몸은 이미 아황산염 섭취에 익숙하다. 감자튀김, 쨈, 말린 과일, 탄산음료 등.

단지 아황산염 알레르기가 있는 분들에게 아황산염은 치명적일 것이며, 몇 와인 애호가들은 아황산염을 적게 넣은 와인들이 숙취가 없다카더라.

아직까지도 논란의 대상이다.



사실 와인을 만드는데 정석의 규칙은 없다.

그리고 어디까지 '인위적'인지, 그리고 '인위적'인 것이 과연 나쁜 것인지. 그 누구도 답할 수 없으며, 나 또한 나쁘다 좋다 이렇게 흑백논리로 와인을 보고 싶지 않다. 그냥 와인이 좋고, 맛있는 것이 좋다.

그중에서는 '통상적으로 말하는 내추럴 와인'도 많았고, 아황산염이나 그 외 XYZ를 넣고 만든 와인 중에서도 내 정신을 깜짝 놀라게 했던 와인도 상당했다.



나는 와인을 분리하고 싶지 않고, 편을 가르고 싶지 않다. 와인은 그냥 와인이다. 맛있으면 더욱이 좋은 것이 와인이다. 그리고 그렇게 맛있게 만들 수 있는 와인 메이커들이 존경스럽다.

그들의 열정은 와인을 만들기 앞서, 포도를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물론 그들 중에는 통상적으로 소비자가 부르는 '내추럴 와인 메이커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 또한 나의 생각이며 판단이지, 정해진 것은 없다.




몇 가지 확실한 건,

그들을 내추럴 와인 메이커라 부르면서, 기존의 와인 메이커들로부터 분리되고 싶지 않고, 대다수 그렇게 불리기 꺼려한다. 그들도 내 생각과 같다. '내추럴'이라는 단어 자체가 굉장히 모호하고, 그 단어에 대한 선입견이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그들은 '와인 메이커'이고 와인을 만든다. 이것이 사실이다. 그중에서는 자기만의 철학과 방식을 통해 맛있는 와인을 생산하는 와인 메이커가 있고, 그들의 와인을 나는 좋아한다. 그리고 와인을 만드는 방식과 철학은 모든 와인메이커가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다른 점을 와인으로부터 느끼고, 제 각기 다른 결을 하나하나 즐겨주면 된다. 와인을 좋아하기 앞서, 그 생산자의 열정이 와인을 통해 느껴지고 그 맛이 내 마음을 기쁘게 해 준다면 내추럴이라 불리고 안 불리고 가 그렇게 중요할까 싶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와인을 사랑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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