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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bez Feb 15. 2019

클리프행어 엔딩과 서브스크립션


클리프행어 엔딩(Cliffhanger Ending)이라는 게 있다. TV시리즈(특히 미드)에서 에피소드가 끝날 때마다 궁금증을 남기며 마무리하는 기법을 말한다. 다음 편 앞부분이 궁금해 잠깐 틀었다가 어느새 'to be continued..' 를 보게 하는 그것. 우리 모두 "헐"과 "조지 마틴 개xx"를 외치며 왕겜 전 시즌을 섭렵하지 않았던가.


폄하의 뉘앙스로 흔히 낚시, 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폄하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영국 드라마 '리틀 드러머 걸'(Little Drummer Girl) 각본과 연출을 맡은 박찬욱 영화감독 또한 씨네21 인터뷰에서 "꼭 해보고 싶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TV시리즈는 에피소드가 끝날 때마다 궁금증을 남기며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다. ‘클리프행어’라고 부르는 이 기법을 TV드라마의 얄팍한 기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나는 클리프행어를 좋아하고, 드라마를 하게 된다면 꼭 해보고 싶었다."


내 견해가 박찬욱 감독급이라는 의미라면 좋겠지만 사실 내 이유는 단순하다. 나는 낚시가 좋다. 한 때 영어 이름으로 peter(베드로)를 골랐던 적도 있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리라 내게 클리프행어 엔딩은 '맥락이 있는 콘텐츠를 끊기지 않고 이어 읽게 만드는 매력'이다. 한 편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시리즈를 모두 다 봐야 이야기가 완성된다는 점만 이해하면 된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요즘 콘텐츠 생산자들의 가장 큰 고민은 유저가 한 편만 보고 가지 않는 것이다. 각각의 편이 연결되지 않는 유튜브 채널에서도 구독 읍소는 필수코스다. 영상마다 중간에 다른 관련 영상을 보러가는 링크도 제공한다.


영화에도 클리프행어 엔딩이 있다. 마블 쿠키영상이 대표적이다. 보통 이스터에그나 단순 재미 용도로 사용되던 쿠키영상이 이제 놓치면 안 되는 필수 영상이 됐다. 다른 영화를 예고하는 떡밥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지루하던 엔딩크래딧 시간에 자리를 박차지 않고, 검색창에 "영화 OO 쿠키 몇 개?"를 찾아본다. 꼭 후속편이 나오지 않더라도 MCU처럼 세계관을 공유하는 다른 영화들이 존재함으로써 가능해진 결과다.


글도 가능하다. 시리즈물이기만 하면 얼마든지 클리프행어 엔딩을 넣을 수 있다. 카카오페이지 등 웹소설 플랫폼에서 연재되는 장르소설에 이 기법이 훌륭하게 사용되고 있다. 무협지?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나고 결투는 다음 편에서 벌인다. 판타지? 전설의 아이템을 줍줍했지만 사용법은 다음 편에 터득한다. 로맨스? 꿈에 그리던 이상형을 만나도 작업은 다음 편에서 걸 수 있다.


브런치에도 좋은 사례가 있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봄바람님의 연재다. 내가 이 연재를 접했을 때 이미 16편까지 업데이트된 상태였는데 무심결에 1화를 읽은 게 실수였다. 내 주말이 사라졌다. 작가님 빨리 다음 편 주세요


그럼 맥락이 연결되지 않는 글에도 클리프행어 엔딩이 가능할까? 에세이는 어떤가. 에세이는 보통 한 편으로 종결된다. 다음 편에서도 동일한 화자가 동일한 삶을 살아가며 동일한 감성을 이야기하지만 각 이야기는 독립하여 존재한다. 이전 글을 보지 않고 읽어도 무방하다. 전문 용어로 피카레스크 구성(Picaresque Narrative)이라고 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피카레스크 구성에서는 클리프행어 엔딩이 있을 수 없다. 맥락이 없으면 떡밥도 없다. 이때 유저 리텐션을 위해 대신할 수 있는 장치가 서브스크립션(Subscription), 구독이다. 요즘 웬만한 콘텐츠 플랫폼은 모두 서브스크립션 기능을 메인 피처로 두고 있다. 브런치에서도 작가나 매거진을 구독한다. 최근 다시금 주목 받고 있는 뉴스레터 서비스도 서브스크립션이 핵심이다. 


에세이는 콘텐츠 간 연결성은 없지만 화자는 같다. 한 작가의 에세이를 읽다 보면 그 작가의 문체는 물론 지식, 가치관, 감성 등 다양한 측면을 보게 되고 다음 글이 예상 가능해진다. 기대감이 생기는 것이다. 작가의 글이 좋으면 구독하고 아니면 떠난다. 구독이 늘수록 독자의 리텐션은 늘어난다. 유튜브도 같은 방식으로 구독 시스템이 작동한다.


플랫폼에서 구독 기능 개선을 계속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플랫폼적으로 클리프행어 엔딩을 대신 고민할 수는 없다. 그건 작가의 몫이다. 콘텐츠의 역할이다. 서브스크립션 기능은 단순해보이지만 얼마든지 발전 가능하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유튜브, 미디엄, 참고 사례도 많다. 각 플랫폼에서 구독은 작가-독자 생태계(Ecosystem)를 유지하는 기능을 한다. 구독 경제(Subscription Economy)가 구축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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