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니까 양보할 마음 없어요?
이십오 년 동안 나를 만들어 가는 중 ing _(2) 과거의 나
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 처음으로 대외활동 면접에서 들었던 당혹스러운 말.
같은 나라, 다른 도시에서 취업준비를 하고 있는 과 선배 언니가 있다. 내가 독일에 나오고 싶어 부모님 설득을 할 때 가장 많은 힘을 준 언니이기도 하다. 첫 만남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교환학생을 나올 시절 학과장 교수님께 도장을 받고 지원을 했어야 했는데, 두 번의 지원 모두 한 교수님께 받게 되었고 두 번 다 합격하여 1년의 교환학생을 갈 수 있었다. 근데 그 두 번의 도장 모두 당시 다른 나라 또는 도시에 있었던 나를 위해 두 명의 친구가 고생을 해서 대신 받아줬었다. (이 고마움은 또 다른 글에서 쓸 예정이다) 그래서 교수님을 찾아뵙지 못했었는데 교환학생 출국 몇 주 전, 새내기 배움터에 교수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개인적으로 교수님과 엄청난 친분이 있었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과 정원이 작은 과로서 얼굴 정도는 다 알고 계셨었는데, 만나서 직접 찾아가지 못함과 흔쾌히 도장을 찍어주신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하고 싶었다. 그래서 18학번 새내기 배움터에 늙은이 15학번으로서 친구와 12학번 오빠 한 명을 섭외해서 가게 되었다. 정말 어색할 각오를 하고 갔는데 당시 15학번 복학생들도 몇 보여서 생각보다는 아는 얼굴이 있었다. 그렇게 불편함을 가지고 간 자리에서 교수님은 독일을 가면 유학도 당연 갈 것 아니냐며 응원해주셨다. 예상하지 못했던 응원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응원으로 있지도 않던 나의 계획과 작은 희망으로만 이루어져 흐릿하고 모양도 없던 꿈이 구체적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하는데 시초가 되었던 것 같다. 그때 마침 선배 중에 지금 독일에서 석사를 하고 있는 분이 있다고 연결시켜준다고 하셨고, 다음날 아침 나는 교수님과 나, 그리고 얼굴도 본 적 없는 높은 선배님과의 단톡 방에서 언니의 연락처를 얻게 되었다.
사람이 예상치 못하고 받은 기회에서는 많이 망설여진다.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얻게 된 정보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나는 지나가듯 얻은 정보들로 많은 경험을 쌓은 사람으로서 항상 최대한 그 정보를 놓치지 않기 위해, 그리고 그 정보를 최대치로 활용하고 싶어 한다. 이때도 내가 가고 싶은 길을 미리 간 사람이 잇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지만 아는 정보가 없어 방황하다가 이미 포기한 상태였기에 무슨 이야기를 가지고 어떻게 연락을 해야 할지 한 달 정도 망설였던 것 같다. 그 사이에 독일에 가서 정착도 하고 사기도 당하고 유심에 문제도 생기고 다양한 일들로 시간이 유독 빨리 가기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긴 고민 끝에 일단 연락하고 보자 마음을 먹고 고민한 것에 비해 별 내용 없이 톡을 보냈다. 교환학생 와있는 후배라고, 교수님으로부터 연락처를 받게 되었다고 자기소개 정도만 보냈던 것 같다. 정확하게 막 명확하게 기억나는 말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정말 뜬금없이 연락한, 얼굴도 한 번 본 적이 없는, 연관된 거란 학교밖에 없는 나에게 너무 반가워하면서 근처 도시에 계신다고 놀러 오라고 해주셨다. 지금 생각해봐도 낯선 날 뭘 믿고 그렇게 바로 집으로 초대까지 해주시고 재워주시고 했는지 얼떨떨한 마음이지만, 난 그렇게 하노버로 가는 기차에 혼자 몸을 싣게 되었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얼굴을 본 것은 그때 이틀뿐이지만 우리는 여전히 카톡이라는 문명으로 연락을 지속하고 있다. 그리고 그 언니가 오늘 면접을 보러 다녀왔다 독일에서 독일 회사에.
서론이 길었지만, 원래 사람의 경험을 말할 때 전후 사정없이 그냥 사실 - 결론 - 끝이 되는 것을 보면 글을 읽는 사람으로서는 부족한 정보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경험담이기도 하지만, 너무 긴 서론을 읽으면서 언제 결론이 나올까 답답해하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내 필명이 이딱다굴이인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집을 만드는 과정이 좀 시끄러울 수 있지만 그래도 예쁜 집을 얻는 것을 볼 수 있다면 그 소리 또한 즐기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이 면접에서 면접관이 이런 질문을 했다고 했다. '만약에 이번에 우리가 거절하면 어떡하실 겁니까?'
그 순간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른 나의 기억 속 '동기지만 동생이니까 양보할 생각을 없어요?'가 스쳐 지나갔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이게 왜 같은 맥락에서 등장하는 다른 이야기인가 싶기도 하지만 당시 언니가 보낸 톡을 보면서 받은 내 감정이 저 때 느낀 감정과 비슷했어서 생각이 든 것 같다. 먼저 언니의 면접 이야기부터 이야기하면, 언니는 '그럼 당연히 두어 달 더 공부해서 또 신청해야죠.'라고 했다고 한다. 질척거렸는데 그쪽에서 좋아해 줬다고 했다. 그리고 나 또한 그들이 바라던 반응이 질척거림이었을 것이라는 것에 동의했다. 하지만 내가 순간 했던 걱정은, 너무 쿨하게 대답하면 분명 이 사람은 미련이 없구먼 하고 떨어트릴 것 같고, 떨어트려도 또 지원할 거라고 하면 그럼 얜 또 지원할 것 같으니 다른 사람을 뽑아야지 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것이었다. 내가 엄청 뛰어난 수재라면 당연히 이런 것으로 인해 합격이 결정되지는 않겠지만 보통의 취준생이라면 한마디 한마디가 중요하니까 걱정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닐까. 일단 공채처럼 많은 사람들을 왕창 뽑는 것이 아니었고, 언니가 2달 전에 지원했다가 다시 지원한 곳인데 이전에 지원한 기록이 남아있는 것인지 그 2달간 언니가 어떻게 자기 계발을 해서 왔는지에 어필했더니 좋아했고, 이 맥락을 따라 이번에 떨어트린다면 어떡하겠냐고 물었고 그럼 더 발전해서 다시 지원하겠다는 대답을 듣고 우리 회사에 특히나 열정적이라는 것을 인정받은 것 같았다. 앞으로 포트폴리오 제출과 인턴 등의 과정들이 남아있고 그것이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고 언니가 말했지만 그래도 언니가 좋은 기회를 잡은 것 같아서 너무나도 기쁘다. 이렇게 기쁨 속에서 다시 과거로 돌아가 보자.
나는 어떻게 됐었을까? 이해를 돕기 위한 상황 설명이 또 들어가야 할 것 같다. 프로그램은 방학동안 진행하는 것으로 학기중에 지원동기로 지원하고 면접 후 합격자들은 준비기간을 통해 6박 7일의 시간 동안 장전캠퍼스 기숙사와 강의실을 부여받아 26명 정도의 중학교 1~3학년 학생들과 활동을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리고 대학 가서 다양한 것을 하고 싶었지만 어디서 찾는지 몰라 헤매던 나의 첫 대외활동 지원이었다. 당시 가장 친했던 동기 언니와 함께 지원을 했고, 면접이 서로 다른 팀으로 잡혔었는데 뒤에 다른 강의를 참석해야 했던 우리는 전화를 해서 첫 번째 그룹으로 둘 다 당겨서 면접을 보게 되었고 4명씩 들어가는 면접에 같이 들어가게 되었다. 면접으로 13명을 뽑는 것이었는데, 면접 동안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한 팀에서 그냥 무조건 2명 붙이고 2명을 떨군다고 했기에 면접자는 대략 26명이었을 것으로 기억된다. 하필 우리와 함께 들어갔던 면접에서 영어교육학과 2명과 조경학과 2명 이렇게 붙게 되었다. 물론 원래는 안 이랬지만 우리가 바꾸는 바람에 같이 들어가게 된 것이라 이 부분에 있어서 원망할 생각은 없지만 혹시나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있다면 엄청 바쁜 것이 아니면 그냥 짜인 그룹에서 면접은 보는 것이 평균은 할 것 같다고 꼭 말해주고 싶다. 결국 우린 자진해서 서로 경쟁구도로 몰아넣은 것이 되어버렸으니까 말이다. 나부터 지원동기를 이야기했고, 자신의 전공이 이 활동에 도움될 것 같은 이유를 반대 순서로 이야기를 했다. 지원동기를 처음으로 말하게 되어서 엄청 긴장했지만 말하다 보니 술술 나와서 긴장한 것에 비해서 잘 말했던 것 같다. 솔직히 상대편 영어교육학과 중에서는 남자분은 너무 더듬거리셨고 명확한 주제가 없는 반면 언니분이 엄청 말을 잘하셔서 아 떨어질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그 두 개의 질문 후 면접관 분께서 다들 너무 잘 말을 해서 누굴 선택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며, 하지만 미리 4명 중 2명씩은 떨어트리기로 하고 들어왔다면서 고민이라고 말씀하셨다. 팀마다 평균적인 것이 다를 건데 불공평한 것이 아닌가 했지만 이 또한 내가 순서를 바꾸고라도 면접을 보러 온 것이기에 그냥 속으로 나 자신을 원망하고 있었다. 지금에서야 쓰는 것이지만 솔직히 나와 동기 언니는 과가 같아서 내용 자체가 특별히 다를 것이 없었다. 둘 다 1학년이고 다른 활동을 한 경험 또한 없었고, 성적은 언니가 더 좋았고 나는 토익 점수가 있었다. 그래서 당연히 둘 다 붙을 줄 알았다. 무슨 자신감인지는 모르겠지만 면접 보러 오라고 했을 때 당연히 될 것 같은 느낌이 왔던 것 같다. 다시 돌아가자면 그렇게 고민이라고 말하시면서 '혹시 자진해서 양보할 사람은 없겠죠?'와 비슷한 질문을 하셨던 것 같다. 그래서 솔직히 누가 이 상황에서 제가 그럼 자진 포기하겠습니다라고 말을 할 거라고 생각하시는 건지 의문이었다. 그리고 원래 이렇게 면접이라는 것이 기준도 없이 애매한 것인가에 대해서도 불만이었다. 그러면서 서류를 계속 보시더니 날 보고 그렇게 말하는 거 아닌가. '둘이 동기인데 이딱다굴씨가 한 살 동생이네요? 혹시 둘 중 한 명만 붙어야 한다면 양보할 생각 없어요?' 정말 순간 머리가 새하얘졌던 것 같다. 솔직히 동기 언니를 이겨서 난 꼭 되어야지라는 생각은 없었다. 우리는 당연히 둘이 같이 하려고 지원한 것이었으니, 물론 지금 생각하면 너무 순진했나 싶기도 하다. 나중에 언니는 나와 같은 맘은 아니었던 것을 알게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는 너무 당황스러웠고 그분은 내 대답을 기다리셨다.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계속 기다리셔서 '어 글쎄요....' 이렇게 애매하게 그렇지만 양보할 생각은 없다는 것을 조금 내비쳤던 것 같다. 왜냐면 여기서 언니가 되면 좋죠 하면 난 떨어질게 여실히 보였고, 그렇다고 제가 붙었으면 좋겠습니다 이건 내가 너무 욕심이 많은 사람처럼 보일 것 같았다. 게다가 언니가 바로 옆에 앉아 있는데 잘못 말했다간 우리 사이도 갈라지겠는데 싶었다. 그렇게 첫 면접은 정말 실망스럽게 끝이 났고 결과는 언니는 합격 나는 불합격이었다.
불합격자에게는 따로 연락이 오지 않는다. 그렇기에 나는 언니가 당연히 나도 붙은 줄 알고 금요일에 같이 가자는 실언 아닌 실언으로 나의 불합격을 알게 되었다. 담담한 척했지만 나도 면접을 잘 봤다고 생각했었기에 실망감 또한 컸었다. 그 후로도 계속 진행 상황을 언니가 알려주면서 이거 했는데 재미있었고 이런 프로그램이라고 한다며 상세한 것을 이야기해줄 때마다 난 왜 붙지 못했는가에 대해서 자가 반성이 이어졌다. 그렇게 2번의 사전 미팅 후 우울해져가고 있는 나에게 한 통의 전화가 왔다. 한 명이 계절학기와 겹치는 관계로 포기를 하게 되어 대기 번호 1번인 나에게 연락한 것이라고, 혹시 아직 할 마음이 있냐고 연락이 왔었다. 당연 예스를 외친 나는 추가합격이라도 너무 행복했다. 나를 마음 아프게 했던 언니의 후기 또한 앞서 빠진 2번의 사전 미팅 동안 무엇을 했는지 다 알게 된 것이라 3번째 미팅부터 합류하는데 큰 무리가 없게 도와준 것이 되었다. 그리고 행복함을 다 느낀 후 든 생각은 내가 대기번호 1번이라면 정말 언니는 한 살 많아서 붙여준 것인가라는 의문이었다. 그때 당시의 면접관님 외에는 그 누구도 모를 답이지만 5년이 지난 지금 생각을 해도 조금은 의심이 가는 상황이다. 아마도 너무 우리에게 솔직하게 말씀하셨던 탓이라고 생각하지만, 한살이라는 나이가 이런 활동에 뽑히는 기준이 될 수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그 외에도 다른 경험으로 인해 학교에 오래 계신 분들은 어리면 다음연도에 또 지원하면 되지라는 마인드가 있는 것을 느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그럴 수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무엇인가를 계속 그렇게 지원하고 도전하는 사람들은 다음연도 그 시기에는 또 다른 것을 지원하고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며, 5년 간의 대학생활 동안 공지사항 지박령이었던 나로서 느낀 것은 그 프로그램이 오래되었던 신생이던 매년 지원금이 달라질 수도 인원수가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많이 보았다. 결국 조그마한 글 한 줄, 조건 한 줄만 바뀌어도 나에게 똑같은 기회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결국 나는 합격을 해서 즐겁고 의미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기에 이런 생각도 할 수 있었던 것 같지만, 지원동기와 자신의 과의 장점을 살려서 이 프로그램 기여도에 대해 말하라는 두 가지의 질문으로 판단하기는 당연히 어려웠을 것 같다. 성적이 조금 좋다고, 토익점수가 있다고 누군가를 고르기도 애매하다. 이 프로그램을 그 사람이 잘할 것이라는 보장이 없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기발한 또는 클리쉐 하더라도 의미 있는 질문을 던져서 지원자들의 이 프로그램에 대한 마음가짐을 보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 면접관의 할 일이 아닌가. 지원자들이 준비해 가는 만큼 면접관도 노력을 해주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다. 친구들과 나의 경험으로 보면, 사기업과 관련된 활동들은 정말 사람의 능력을 탈탈 털어서 엄청난 기준치를 자랑하며 사람의 멘탈을 흔드는가 하면, 학교에서의 활동들은 가끔 다른 방향으로 진을 빼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모든 활동들이 그랬던 것은 아니었고 지금은 또 다른 방향으로 발전했을 수도 있지만 이러한 경험 또한 있으니 한 번쯤은 저런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는 것이 센스 있는 답일지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