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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리메 Sep 25. 2019

남의 삶을 평가할 이유 따윈 없다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며 만난 사람들이 가르쳐 준 진리

@Tokyo, Japan



난 지난 8월 말을 끝으로 첫 직장을 그만두고, 10월부터 새 직장 출근을 앞두고 있다.


일정이 그렇게 되다 보니, 졸지에 그 사이 달력 9월 한 달 분이 백지가 되어버렸다.


갑작스러운 1달 백수생활, 뭘 하며 지낼까 수없이 고민해봤다.


남들 다 한다는 1달 여행이나 1달 살기를 해볼까?

아니면 오랜만에 한국으로 귀국해서 그동안 못 만났던 친구들이나 친척을 만나고 올까?


이런저런 선택지를 떠올려봤지만, 아직 금전적으로 한 달씩이나 어디 가서 놀다가 올 여유가 없다는 걸 통장을 보고 깨달았다.


그래서,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했다.

얼추 한 달 안에 끝낼 수 있는 구인을 알아보니, 약 2주간 열리는 프랑스 초콜릿 브랜드의 백화점 팝업스토어 스태프를 모집하는 구인이 있길래, 덥석 하겠다고 연락을 했다.


업무내용은 단순했다. 

초콜릿과 피낭시에를 판매하고, 소프트크림도 만들고, 캐셔 업무도 하고.


그래도 이런 요식업에서 일해보는 건 처음이기도 했고, 사실 전 직장에서 그만두기 전에 건강상의 문제로 3개월이나 휴직하고 있었기 때문에, 직장인 복귀 차원에서 몸 풀기 딱 좋겠단 생각에 나름 들뜬 마음으로 첫 출근 날을 맞이했다.


함께 일할 사람은 브랜드 측 직원이 2명, 그 이외에 나처럼 단기 알바로 온 사람이 나 포함 4명이었다. 시간당 3명씩 출근할 수 있도록 시프트가 짜여 있었다.


처음에는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며, 오픈 전에 간단하게 직원한테 상품 설명을 듣고 계산대 작동 방법을 같이 배워갔다.


약 2주간 함께 하는 가운데, 처음 2~3일 정도는 정말 업무 대화만 하는 정도로, 깊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다. 다들 인상이 선 해 보이긴 했지만, 동시에 어차피 2주면 거의 안 만날 사이이기도 했기에 서로 적당한 거리감을 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하루 8시간 좁은 공간에 함께 있다 보니, 점점 긴장감도 풀리고, 서로 각자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틈새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1주일 다 돼서야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알바 분 3명 모두, 내가 여태컷 만나보지 못한 삶을 살고 있는 분들이었다. 


한 분은, 종이 감기 공예(페이퍼 퀼링이라고 한다더라)를 하시는 분인데, 그것 만으로는 밥 먹고 살 수가 없어서 틈틈이 이런 단기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고 있다고 한다.


또 한 분은, 2년 전까진 정규직으로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지만, 같은 직장에서 같은 사람들과 지긋지긋하게 오래 같이 일해야 하는 데에 매너리즘을 느껴서 일을 그만뒀다고 한다. 그리고 일단 단기 알바로 일하면서 다음 직장을 찾으려고 했다가, 그냥 단기 알바만 해도 생활에 지장이 없다는 걸 깨닫고 나선 주욱 프리터로 살고 있다고 한다.


마지막 한 분은, 어차피 결혼을 앞두고 있기도 하고, 원래 그러게 힘들게 일하며 살고 싶지 않아서 그냥 파견직으로 여유롭게 일하고 돈 버는 삶을 선택했다고 한다.



프리터로도 밥 먹고 살 수 있다던지,

어차피 결혼하니까 많이 일하기 싫다던지,


너무나 일본스러운 사회 속의 일본스러운 사고방식이 고스란히 드러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실제로 본 건 처음이라, 처음에는 내적 충격이 컸다. 


그런데, 매일매일 함께 일을 하다 보니 느낀 게 있다. 

고용 형태와 살아가는 방식이 다를 뿐이지 주어진 업무를 성실히 하고, 함께 일하는 데 있어서 매출 목표 찍기처럼 무언가 같은 목표를 가지고 일하는 건 매한가지였다.


오히려, 내가 예전 직장에서 만나온 상사답지 못한 상사들보다 훨씬 배울 점도 많기도 했다. 

수많은 경력과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부분을 그분들은 경험해왔기에, 내가 아직 많는 걸 몰랐구나,라고 새삼 반성하기도 했다.


솔직히, 알바 출근 첫날에 내심 무의식적으로 

'학생 때면 모를까 나름 정규직도 경험해왔는데 이런 데서 알바라니, 아무리 2주 만이라 해도 뭔가 현타가 온다...'

라는 생각을 해버렸다. 

그런데, 그 일자리를 누군가는 일종의 살아가는 수단으로 생각하고, 그게 자신이 원하는 삶이기도 한 거다.

그걸 곁에서 보고 나니, 첫날에 그런 생각을 무의식으로라도 해버린 내가 얼마나 무식한지를 깨닫고 반성하고 또 반성했다.



누군가는 안정적인 직장에 몸 담그는 게 평생을 생각하면 제일 좋다고 말하고, 나 또한 그렇게 배워오기도 했다.


그런데, 결코 그런 삶이 정답이고, 나머지 다른 삶은 틀렸다는 건 절대 아니라는 걸 이번에 배울 수 있었다.


애초에, 남의 삶은 옳고 그름을 판단할 평가 대상이 아닌 것이다.

남이 그 삶에 만족하고 살고 있으면 된 거고, 내가 거기에 뭐라 토달 이유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어제를 끝으로 이제 단기 아르바이트는 끝나고, 각자 자기의 삶으로 돌아갔지만,

2주 동안 인생공부를 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안 그랬으면 여전히 지금의 난 무의식 중의 편견으로 남을, 남의 삶을 

속으로 판단해버렸을지도 모른다.



이제 나도, 나의 삶의 시작을 맞이할 준비를 하며,

2주간 느낀 것들을 정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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