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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리메 Jul 12. 2021

직장인 2년차, 이제서야 날 보다.

2년간 몸 담근 패션을 걷어차고 새로이 찾은 길

2021.02.07


"축하합니다.

귀하의 입사를 환영합니다.-"


약 한 달간의 두 번째 이직 활동,

무사히 마침표를 찍었다.


올해 3월부터 나는, 게임 회사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

이전 나의 글을 읽어왔던 사람이라면 의아해할지도 모르겠다.

예전 글까지만 해도 패션 업계에서 일한다 했는데 갑자기 무슨 게임 회사?


그렇다.

2년간 이상향과 같은 꿈을 꾸면서도 악몽처럼 시달리던,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련'이라는 마음 하나 때문에 여차저차 버텨온 패션 업종을, 나는 미련 없이 보내기로 했다.


코로나라는 예기치 못한 상황이 들이닥친 것도 있었지만,

더 이상 내 자리가 아니라는 느낌이 나날이 갈 수록 강해졌던 게 하나의 이유였다.


대학 졸업할 경에는 그렇게 희망에 꽉 차보이던 세계도,

콩깍지가 벗기고 나니 그토록 볼품 없는 허물일 수가 없더라.


잠깐 좋아하는 마음으로 무턱대고 두드려본 패션 업계는, 

나의 천성을 바꿔가면서까지 희생해야 하는 부분이 참 많았던 것같다.


그걸 이제서라도 알아서 다행이라 해야 할지.


~


2021년 1월.

정말 오랜만에 자기 분석의 시간을 가져봤다.


사회인 3년차가 되는 첫달에 들여본 나 자신은,

대학생 때 헛바람 가득했던 두 눈으로 과대평가했던 나 자신과 참 많이 달랐다.


대학생 때는,

누구에게나 살갑게 웃고 어떤 역정을 내도 미소로 받아 칠 수 있는, 

바이탈리티와 호스피탈리티로 꽉 찬 외향적인 인간일 줄 알았다.


누구보다도 장사꾼 기질이 있고, 상대방의 어떤 까다로운 조건도 다 들으면서 만족시킬 수 있는

천하의 영업꾼인 줄 알았다.


그래서 나는 모두에게 사랑 받고, 사업을 키울 수 있는 기업가 체질인 줄 알았다.

그래서 나름 알바로 짬이 있었던 패션 업계에서 그런 호사를 전부 누릴 수 있을 줄 알았다.


~


그런데 실제의 나라는 인간은 그 모든게 정반대였던 것이었다.


나라는 사람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내성적이었고, 

먼저 나서서 사람들을 설득시키거나 매료시키는 걸 어려워한다.


0에서 1을 만들 수 있는 창조 능력은 볼품 없었으며, 

내가 대학생 때는 얼마나 머릿속에 꽃밭으로 가득했는지 헛웃음이 날 지경이었다.


~


그래도, 한번 냉정하게 나 자신을 돌이켜 보니 내가 잘하는 것도 보이기 시작했다.


내성적인 면이 주를 이루는 건 맞지만 나름 인싸들의 세계에서 2년간 쌓아온 담력 덕분에 

자연스레 외향적으로 보이게 제스처를 취할 수 있게 됬다.


내가 먼저 말을 시작해서 남을 납득시키는건 어려워도, 남이 하는 말은 그 속에 내포된 의미를

곧잘 알아 듣곤 한다.


0에서 1을 만드는건 잘 못해도, 1을 1-1~1-10까지 세분화하거나, 

1의 해석을 달리 해볼 자신이 있었다.


~


그렇게 해서 도달한 결론이 통번역이었다.


외향적인 면도 갖추어 사회 생활하는데에는 지장 없을 정도의 인간 관계를 구축하며,

남이 하는 말을 직역이 아니어도 다른 방식으로 정확하게 전달해야 하는 일,


적성에 100% 맞진 않겠지만, 

적어도 패션 업종보다는 나와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내가 전력으로 사용 가능한 언어라 하면 한국어와 일본어였기에

(프랑스어 전공자라면서 대체 프랑스어는 어디로 날려 먹었는ㅈ....)


한일 통번역으로 죽어라 찾고, 부딪히며 얻은 인연이 

바로 지금 다니는 게임 회사다.


~


사실...게임이라고는 

고등학생 때 나름 랭킹에 이름 올리는 데 열 올렸던 템플런이나 쿠키런이 전부였었기에,

하드 게이머의 세계인 MMORPG를 메인으로 하는 회사에 들어갈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렇지만 이것도 인연이고,

나의 가능성을 열어줄 새로운 길이라는 생각이 드니,

불안함이 큰 만큼 기대감도 컸다.


~


그로부터 약 5개월차.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필드에서 하루 하루를 전쟁처럼 보내고 있다.


나름 이제까지 다닌 2년간도 하드코어한 세계에서 버텨왔다 생각했는데,

역시 돈 버는 건 쉬운게 아니었다.


학생 때는 그토록 선망의 대상이었던 롯본기의 밤거리를 출퇴근으로 매일 매일 거닐고 있으니ㅎㅎ


~


경력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감사하게도 많은 일을 맡으며 악착같이 살고 있다.


이전만큼 내가 하는 일에 큰 꿈을 가지고 일하고 있는건 아니지만,

내 마음 속이 타들어가는 일은 없는 걸 보면, 성격적으로는 참 맞는 것같기도 하다.


이제는 게임만 잘 해보면 좋을텐데...


내가 이렇게 다시 글을 써보기로 한 걸 보면, 나름 심리적으로는 여유가 생긴 것같다.

앞으로는 종종 푸념도 하고, 다시 무언가의 꿈을 찾아볼 수 있는 공간으로 브런치를 재시작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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