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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이 Nov 19. 2016

예술가와 외로운 사람들을 위한
가을의 베를린

베를린 아트 풍경 #1




어떤 장소를 떠올렸을 때 이상하게 가슴이 뛰는 곳이 있다. 아직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 그 사람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설레하는 그때 그 기분같은 이상한 끌림. 베를린은 그런 감성을 건드리는 도시다.

나와 같은 디자이너 혹은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외로운 사람'이라면 더더욱.


물론 나는 모두 해당된다.


신혼 냄새가 아직도 폴폴 풍기는 서울 집에 사랑하는 남편을 홀로 남겨두고 홀홀 단신으로 밀라노에서 생활한 지 두 달이 다 되어가던 시점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 다 하겠다며 당차게 그리고 무모하게 떠나온 시작과는 달리 나는 벌써 두고 온 모든 것이 그리워 뚝 떨어진 기온만큼이나 쓸쓸해져있었다.


그러던 중 독립 영화 감독인 지인이 밀라노를 잠시 들르게 되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겼다. 

아티스트란 아티스트는 죄다 모인다는 베를린에 갈 예정이라는 그. 왠지모를 끌림이란 건 이렇게 늘, 언제나 그랬듯 급작스럽다. 홀린 듯 밀라노로 떠나왔듯이 

몇주 후 나는 베를린으로 향했다.




가을임에도 불구하고 27도의 낮기온을 자랑하던 로마, 그리고 적당히 쌀쌀한 정도의 기온이던 

밀라노와는 달리 베를린의 시월은 공항에서부터 차가웠다. 도착하자마자 25유로짜리 심카드를 구입하고 공항을 나서려는데 이것저것 자세히 설명해주며 너무나 친절하게 대해주는 가게 점원.

오자마자 피부에 닿았던 습기찬 추운 기온이 조금 누그러드는 듯 했다.밀라노에선 워낙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많지 않기에 '친절한 영어 설명'을 별로 기대 하지 않는 편인데. 자연스레 대화해주는 그에게 내심 참 감사했다. 


버스를 타고 숙소로 이동하며 처음 만난 베를린은 미스트 가득 머금은 뽀얀 공기에 선연한 청동빛이었다. 



여행한 도시가 주는 인상은 내가 갔을 때의 


날씨

도시를 구성하고 있는 건축물이 그리는 풍경

만난 사람과 먹은 음식


으로 이루어지는 듯 하다. 

특히 날씨와 건축은 첫인상을 결정한다. 

밀라노보다 2, 3도는 낮아보이는 차가운 가을 날씨에 고딕양식이 주는 딱딱함이 더해져 베를린은 내게 다소 차분하고 정적인 이미지로 다가왔다.




뿌연 공기를 뚫고 도착한 숙소에 짐을 푼 후, 허기가 진 나와 친구는 호텔 주변인 하인리히 롤러 스트라베(Heinrich-Roller-Straße) 로드를 정처없이 걸었다.


우연히 든 거리였는데 느낌이 이상하더라니. 

이 거리엔 소규모 디자인스튜디오와 복합 디자인 공간, 아티스트들이 운영하는 독특한 카페와 레스토랑이 낙엽 진 길을 따라 쭈욱 줄을 서 기다리고 있었다.


소규모 디자인 스튜디오와 카페, 공방이 있는 길_Heinrich-Roller-Straße 8, 10405 Berlin, Germany


나는 보통 여행 시작 전 부푼 기대감과 현실의 갭을 크게 느끼지 않을 정도로만 정보를 찾아보는 편인데, 이 날도 역시 메모해 둔 몇가지를 리스트 중 마음에 드는 것을 한가지 골라 그 장소를 시작점으로 주변을 탐색해 나갔다.


늘 그렇지만 구글링을 통해 더듬더듬 찾아둔 몇가지 장소 보다는 그것을 기점으로 주변을 돌아보다 우연히 발견하는 보석들이 훨씬 많다.


이 길 그리고 여기서 만난 'The Hidden'이 그렇듯이.


레스토랑, 쿠킹스튜디오, 클래스, 공방, 팝업스토어로 활용되는 작업실_The Hidden by DANIEL’s EATERY




정말로 우연히, 그렇지만 본능적으로 들어가게 된 'The hidden'은 베를린, 뉴욕에서 활동한 셰프 다니엘과 아트 디렉터이자 그래픽디자이너인 수잔이 함께 운영하는 프로젝트 스페이스다.




매주 월,금 12:30분 점심 식사 가능함을 알리는 나무 간판



밖에서 보고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들어가 이것저것 물어보며 공간을 둘러보았는데 쇼윈도에 적혀있다시피 이곳은 먹고, 요리하고, 사람을 만나고, 배우며, 새로운 것을 기획해보는 곳이었다. 두 사람의 작업실인가 동시에 다니엘의 레스토랑이며 쿠킹클래스가 열리고 가끔 혹은 자주 주변에 거주하는 아티스트들이 모여 식사를 나눈다.때론 파티 장소로도 쓰이며 세미나를 하기도 하단다.




전경 이미지가 없어 홈페이지에서 참조한 이미지: http://thehidden-berlin.com/



우리는 월, 금요일에 셰프인 다니엘이 요리를 하는 시간에 맞춰 다시 찾아왔다.

들어가자마자 커다란 테이블이 놓여있는데, 여기 온 사람 모두가 함께 앉아 얼굴을 마주보고 식사를 하게 된다고 한다.







다니엘이 준비한 따땃한 베지테리안 메뉴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공간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이 공간은 자유롭게 쿠킹하고 큰 테이블에 모여 식사하거나 파티를 하기에 적격인 참 아늑한 곳이다. 

특히 무심한 듯 툭툭 배치되었지만 전체적으로 어수선하지 않고 정갈하고 정돈되어 보이는 점이 참 마음에 들었다. 


흐트러짐과 정돈됨, 특별함과 무던함, 따뜻함과 차가움, 부드러움과 거침, 모노톤과 컬러
이러한 상반된 성질의 것들이 한데 모여 조화를 이루고 있는 그런 곳


디테일을 보면 비싸고 화려한 소품이나 가구를 강조하지 않고도 담백하고 센스있게 자신들의 감성을 잘 드러내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특히 다이닝 룸 왼쪽 벽 전체를 페인트를 덧칠하거나 떼어내어 빈티지하고 그런지한 느낌을 살렸는데

거기에 미니멀하고 모던한 가구를 배치해 벨런스를 맞추고 있는, 세련된 센스가 느껴지는 인테리어였다. 

이런 느낌의 벽 데코레이션을 이후 다른 장소에서도 종종 발견했다.







벽에는 자신들이 작업한 그런지한 스타일의 아트웍-고기를 이용한 디저트 그래픽-을 걸어두었다.

빈티지한 벽 이미지에 자연스럽게 어울리면서도 동시에 위트가 보이는 부분이었다.







The hidden 내 다니엘의 키친



드디어 완성된 다니엘의 건강한 점심.

메뉴는 각종 야채와 너트류를 갈아 넣은 Chickpea soup 와 우리네 시금치 나물과 거의 흡사한 익힌 시금치에 각종 야채와 허브가 들어간 작은 샐러드 보울, 그리고 빵. 단출하지만 너무나 맛있고 평화로운 점심.


조용한 공간 안에 구운 빵 냄새, 수프 냄새가 가득했고 그릇이 달각대는 소리,

그리고 도란도란 말소리가 가끔 들렸다.







혼자인 사람도

둘인 사람도

여럿이 오는 사람도

그저 한 테이블에 앉아 같이 밥을 먹고

이따금 대화를 나누곤 했는데,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고 그저 함께 식사하는

그 사실만으로 이 공간의 따뜻한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듯 했다.







식사를 다 마치고도 우리는 이곳에 오랫동안 머물렀다. 그리고 수잔에게 공간 디자인을 어떻게 하였느냐고 물었다 부러움만 가득 가지게 됐다. 이유인 즉슨, 그들은 이곳의 모든 가구를 협찬을 받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베를린에서는 아티스트들이 모여 공간을 기획하고 가구 회사나 인테리어 회사에 기획안을 보내면 컨셉에 따라 지원해주는 것이 드물지 않은 일이라고 한다. 이 두 사람도 공간 스타일과 어울리는 이탈리아 가구 회사 메이드 닷컴에 제안했고, 키친과 다이닝룸을 포함한 전체 공간의 가구들을 협찬받아 지금까지 잘 사용하고 있다고. 크리에이티브한 사람들이 활동하기 참 좋은 곳이구나 싶어 그저 부러울 따름이었다.




메이드닷컴

http://www.made.com/

 

더히든베를린

http://thehidden-berlin.com/








히든을 나온 후엔 거리를 좀더 걸으며 느긋하게 시간을 보냈다. 어딜가나 마주치는 가죽, 의류, 디자인 공방들과 페인팅 샵들, 작업실들. 베를린은 파인아트를 하는 사람들의 천국인 듯 하다.









오후엔 한 화가가 운영하는 음식점엘 들르기로 했다. 날이 춥고 사방이 어둡다보니 금새 허기가 지고 따스한 공간이 필요해지더라. 온기가 느껴지는 노란 불빛 아른 거리는 곳에서 좋은 음악과 함께 좋은 사람과 맛있는 것을 먹는 것 만큼 오감을 만족시키는 행복하고 즐거운 경험이 더 있을까.

특히 베를린에서는 말이다.




레스토랑 뮤즈




이곳은 바르셀로나 출신의 화가가 운영하는 맛있는 레스토랑이었는데, 과연 온 벽과 벽에 걸린 그림들, 놓여진 소품들이 하나의 거대한 작품을 방불케하였다. 










소스와 커트러리 케이스도 슬쩍 각도를 틀어두었다. 무심한 그 느낌이 참으로 맘에 들었다. 붉은 벽과 초록 갓등의 조화 그리고 타일을 넣은 벽, 작은 자연물들. 마치 정물화를 보는 듯한 공간.





 아랫층에는 댄스플로어가 있던 모양. 닫혀 있었다.




히든에서 본 것과 마찬가지로 군데군데 덧칠해진 페인트들이 가득해 마치 벽이 커다란 캔버스처럼 보였다







분위기에 질세라 주문한 음식 또한 아름다운 예술처럼 준비되어 나왔다.

특히 고수, 감자, 양파, 마늘, 페페론치노, 견과류 등이 들어간 야채 수프는

얼었던 손을 사르르 녹이면서 그 자리에서 눕고 싶은 충동이 들게하는, 그런 맛.

아직도 매콤하면서 뜨겁게 입안에 퍼지던 수프의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다.






레스토랑을 나서는 길에 주인과 이야기를 나눈 겸 다녀볼 곳도 우리같은 디자인하는 사람들은 어딜가야 할까? 하고 추천을 받으려 물으니 그저 웃으며 말하더라.


나도 화가지만 이곳은 오히려 영감을 받을 곳이 지나치게 많아서 문제인 것 같아.



그렇다. 

이곳 베를린은 지나치게 많은 영감과 아이디어가 넘치는 곳이라, 그래서 오히려 소화하지 못할 것이 걱정이 되는 그런 곳이다. 이곳은.



새로움을 바라고 외로움은 잊고 싶었던 내게 억지로 노력하지 않아도 마음의 빈 곳을 채우게 만드는 그런 곳. 생각하고 느끼고 기억하게 만드는 그런 곳.





뮤즈 베를린

http://www.museberlin.com/





이후 우린 베를린의 많은 소, 대규모 컨템포러리 아트 갤러리와 

브랜딩을 샘날 정도로 참 잘해둔 카페들, 힙스터들이 모여드는 간판 없는 레스토랑들,

패션전공인 친구의 리드 하에 베를린의 독특한 패션 편집숍과 빈티지 숍 등을 다녀왔다.

외로움과 영감에 대한 허기짐을 단숨에 없애버린 이 곳 베를린.


이 내용은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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