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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대식 Sep 13. 2015

한 번 나간 손목은 쉬 돌아오지 않는다

#25


2주 전, 포항 친정집으로 왔다. 이유는 많았다. 부정맥 진단으로 우울해진 아빠가 아이를 보고 싶어 하셨다. “아이가 있으면 웃을 일이 많을 것 같다”는 엄마의 말을 외면할 수 없었다.


지인의 결혼식도 있었다. 결혼식은 부산이었지만, 내려가야겠다는 마음을 굳히고 나니 부산쯤이야 옆 동네처럼 느껴졌다. 마감을 한참 넘긴 일거리도 마무리해야 했다. 낮 시간에 엄마가 아이를 잠시만 봐줘도 밤을 새우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무엇보다 쉬고 싶었다. 누군가 아이 낮잠만 재워줘도, 아니 분유만 한 번 먹여줘도 살 것만 같았다. 또한 이런저런 이유로 가지 못한 한의원도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얼마 전부터 엄지손가락부터 시작된 통증이 손목을 넘어 팔뚝까지 번졌다. 급기야 아이를 안는 게 두려워질 정도였다. 엄마들의 손목, 무릎, 어깨 통증을 익히 들어온 터라 조심한다고 조심했지만, 매번 올바른 자세를 취하기엔…. 난 그리 기억력이 좋지도, 침착하지도 않았다.


아이가 울면 습관적으로 엄지손가락과 손목에 무리가 가도록 안았고, 수유를 할 때나 원고 작업을 할 때면 거북이 목을 하고 어깨에 통증을 가중시켰다. 결국 남편의 연차 휴가일에 아이를 맡기고 한의원으로 향했다.


“왜 이렇게 아픈 거 같아요?”

“아이를 안아서요?”

“맞아요. 최대한 쓰지 말아야 해요.”


누가 모르나요. 헌데 우는 아이를 그냥 둘 순 없지 않은가. “쓰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는 한의사도 멋쩍어 웃었다. 안 되는 걸 모를 리 없으니 말이다.


“남편 퇴근 시간이 어떻게 돼요?”

“들쑥날쑥이라….”

“화요일, 목요일에 야간진료하니깐. 8시까지 꼭 오세요. 그렇게라도 진료 받아야지, 뭐.”


그 말이 참 고마웠다. “알겠다”고 답했지만 그 날 이후로 한의원을 가지 못했다. 남편의 퇴근이 늦은 날도 있고, 못다 한 살림을 하느라 게으름을 피우기도 했다. 틈만 나면 "한의원 가라"는 남편의 말에도, 남편의 퇴근 후 홀로 식탁에 앉아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는 그 시간이 어찌나 달콤한지, 쉬이 엉덩이를 떼지 못한 것도 하나의 이유다.


그러다 포항으로 왔다. 부모님은 생글생글 웃는 손주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셨다. 밀린 원고도 3일 만에 끝냈다. 엄마가 아이를 업고 낮잠을 재워주실 땐, 나도 침대에 대자로 누워 잘 수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한의원을 갈 수도 있었다.


“애기 혼자 봐요?”

“도와줄 사람 없어요?”

“서울 언제 가요?”

“서울 가면 또 혼자 애기 보겠네?”


한의사와 간호사들은 내가 한의원에 갈 때마다 되물었다. ‘왜 이렇게 돌아가며 같은 질문을 하나’ 싶다가도 왠지 고맙기도 했다.


나는 아이를 낳고 3개월이 넘어서도 체력이 돌아오지 않았다. 자꾸 축축 늘어지고 온 몸엔 힘이 빠졌다. 겉으론 멀쩡한데 속이 텅 빈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러다 안 되겠다 싶어 “나 약 좀 먹을래”를 외쳤고, 결국 엄마에게서 흑염소를 ‘득템’했다.


육아는 체력전이라던 선배 맘들의 충고를 귓등으로 흘린 대가였을까. 아이를 낳기 전에 체력을 키웠어야했는데, 내가 직접 겪지 않으면 그 말의 뜻을 체감하지 못하니…. 참으로 한심한 노릇이다.


손목과 어깨 통증도 그렇다. 친구들은 아이를 안는 방법부터, 손목보호대를 꼭 착용하라는 충고까지 귀가 닳도록 말해줬다. 하지만 실전에 돌입하니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 결과 내 손목과 어깨는 이 모양 이 꼴이 됐다. 어깨는 너무 아파 밤잠을 설칠 정도다.


다행히 2주간의 치료로 통증은 많이 호전됐다. 하지만 육아는 끝난 것이 아니다.


“올라가면 애기 맡길 때 없죠? 치료받으러 가기도 힘들겠네. 지금이 한참 힘들 때야. 한참…. 애기 좀 더 크면 괜찮아질 거예요.”


손목과 발에 꽂혀 있던 침을 빼며 던진 간호사의 말이 이상하게 뭉클했다. 다들 하는 육아라지만, 다들 힘든 육아라지만, 누군가가 무심한 듯 툭! 던진 말에 다들 하는 육아라, 다들 힘든 육아라, 차마 엄살을 피우지 못한 마음에 따뜻한 위로가 됐다.


30대 중반에 접어든 나와 내 친구들은 모두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다”고 말한다. “나라에서 출산 연령을 법적으로 제한해야 한다”며 침을 튀기기도 했다.


“아이를 낳을 사람들을 미리 신청 받아서, 20대에 자기가 원하는 시기에 아이를 낳고 어느 정도 기를 수 있는 시간을 줘야 한다. 아이는 팔팔한 20대가 키워야지 30대가 넘으면 본인도 힘들고 나라도 손해다.”


뭐 이런 되도 않은 소리를 외치며 ‘누가 누가 더 힘드나’를 경쟁했다. 아이 하나도 이렇게 힘든데, 둘, 셋,넷…을 키우는 사람들은 오죽할까. 정말 경의를 표한다.


이제 갓 5개월 신입 맘에 접어든 나는 이 길을 걸어간 선배 맘이 참으로 대단하고, 이 길을 걸어갈 후배 맘이 참으로 걱정이다. 오지랖도 풍년인지라 “육아는 체력”이란 말을 꼭 후배 맘에게 해주고 싶다. 그리고 한 번 집 나간 손목은 쉬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도. 세상의 엄마들, 파이팅!


- 2015년 4월 28일 아빠가


브런치가 생기기 전, 티스토리에 썼던 봄이네 육아일기(0~29편)를 이곳 브런치에 옮겨 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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