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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대식 Sep 13. 2015

'국민 애벌레' 서식지 된 베이스기타

#27


꺼낼까 말까. 벌써 며칠째 같은 고민이다. 베란다 한 쪽에 놓인 베이스기타에 대한 이야기다. 누군가는 “거참,시답잖은 고민이네”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꺼낼까 말까’에 이어지는 생각의 연결고리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육아에 전념해야할 초보아빠가 취미를 가져도 될까?


결혼 전, 내게 세 가지 취미가 있었다. 첫 번째는 자전거 타기다. 주말에 자전거를 자주 탔다. 한강을 달리면 스트레스가 풀렸다. 한강에서 가까운 곳에 신혼집을 차리자고 아내에게 보챈 것도 그 때문이다. 앞으로 아이를 자전거 뒤 트레일러에 태우고 한강에 가는 게 아빠로서 가장 큰 소망이다.


결혼한 뒤, 아내와 난 커플 자전거를 장만했다. 하지만 몇 번 타지 못했다. 아내가 임신했기 때문이다. 언젠가 아내를 두고 혼자 자전거를 타고 한강에 나간 적이 있다. 그날은 유난히 집안에 있는 게 답답했다. 며칠 뒤, 나와 아내 둘 모두를 알고 있는 한 선배는 내게 말했다. “야, 이 한심한 놈아.”


난 사내 야구팀 소속이다. 운동신경은 ‘제로’였지만, 감독님의 입단 권유에 흔쾌히 “오케이”를 외쳤다. 맙소사,정말이지 내가 제일 못할 줄은 몰랐다. 내가 던진 공이 어디로 향할지 모를 정도니. 그래도 함께 땀 흘리고, 훈련 후 생맥주를 마시는 일은 무척 즐겁다.


올해 감독님께 열심히 야구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지키지 못했다. 하루 종일 아이와 씨름하는 아내를 두고 야구하러 나갈 수 없었다. 올해 한 번도 그라운드를 밟지 못했다. 그래도 몇 년 뒤 아이와 함께 나갈 날을 꿈꾼다.아이와의 캐치볼이 기대된다. 잘못 던지지 않을까 조금 긴장되기도 한다.


한강에서 너와 공을 주고 받는 날이 올까.


마지막으로 베이스기타 연주가 취미다. 학창시절 음악적 재능이 전무함을 깨달은 뒤, 악기를 다룰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다. 남들처럼 흥겨운 밴드 음악을 좋아하긴 했지만, 거기까지였다. 하지만 회사에 들어온 후 뜻 맞는 후배들과 의기투합했다. 밴드를 만들었다. 지금 돌이켜봐도 놀라운 일이다.


가끔씩 주말에 신촌과 낙원상가 연습실에 모였다. 합이 맞는 날은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우린 연말 공연을 꿈꿨지만, 이루지는 못했다. 난 아이를 낳았고, 다른 멤버들도 결혼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다들 바빴다.


베이스가 베란다에서 먼지를 뒤집어 쓴 것도 그 때문이다. 지난해 아내가 임신한 이후 아이 짐이 하나 둘 늘었다. 공간은 비좁은데, 내게서 멀어진 베이스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안 칠거면, 치워 달라”는 아내의 말에 순순히 베이스를 베란다로 옮겼다. 육아에는 베이스가 필요하지 않았다. 베이스를 팔아야 하나 하는 생각도 했다.


얼마 전 밴드 멤버들과 우연히 사무실에서 만났고, 몇 분 만에 다시 뭉치자고 의견을 모았다. 아이가 잠든 밤 9시 이후에 한 시간씩 베이스를 연습하면 큰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5월 중순 밴드 멤버들과 주말 연습날짜를 잡았다. 아내는 흔쾌히 허락했지만, 그래도 마음 한편에는 미안함이 앞선다. 아내는 육아와 일을 병행하느라 취미생활은 물론 친구조차 잘 만나지 못한다. 내가 너무 욕심을 부리는 것 아닐까. 베이스를 꺼낼까 말까. 며칠째 고민이다.


- 2015년 5월 12일 아빠가

브런치가 생기기 전, 티스토리에 썼던 봄이네 육아일기(0~29편)를 이곳 브런치에 옮겨 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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