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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대식 Sep 13. 2015

아이 위해 메르스 마스크 쓰려고요

#29


지난 월요일은 아내가 그토록 기다리던 문화센터(문센)에 처음 가는 날이었다. 며칠 전부터 조리원 동기(이른바 조동아리) 엄마들을 만난다며 들떠있었다. 무엇보다 아이와 하루 종일 같이 있는 아내에게 문센과 같은 바깥나들이는 잠깐이지만 숨 쉴 여유를 갖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출근하면서 달뜬 아내에게 “문센 잘 다녀오라”고 인사하며 집을 나섰다. 회사에 도착하고 얼마 뒤 아내로부터 카카오톡 메시지가 왔다. “문센 가도 될까?” 난 아무 생각 없이 “다녀오라”고 했다. 아내는 “메르스 때문에 취소하는 사람이 많다”며 걱정했지만, 난 계속 “괜찮을 것 같다”고 답했다. 아내는 결국 문센에 가지 않았다.


“내가 아픈 건 괜찮아도 아이가 아프면...”


이때까지만 해도, 아내가 호들갑을 떤다고 생각했다. 메르스 확진 환자가 십 수 명에 불과했다. 메르스에 걸릴 확률은 교통사고가 발생할 확률보다 적다. 설마 나에게도 그런 불행이 찾아올까. 널리 퍼지고 있는 유언비어가 괜한 공포심을 조장한다고 생각했다. 보건 당국이 잘 대처할거라 믿었다. 아니, 태어난 지 6개월도 안된 아이를 가진 아빠로서, 보건 당국을 믿어야 했다.


오늘 아침 아내가 다급하게 날 깨웠다. 메르스로 인한 첫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뉴스를 내보였다. 아내의 불안은 커졌다. 장모님도 “아이를 데리고 밖에 나가지 말라”며 포항에서 걱정스러운 메시지를 보내셨다. 하지만 내게 메르스는 여전히 남의 일이었다.


오늘 하루 휴가를 내고 아이를 돌봤다. 육아 탓에 손목이 아픈 아내에게 하루라도 육아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싶었다. 오전에 아이와 씨름을 하니, 지쳤다. 답답하기도 했다. 아이를 위해, 아니 나를 위해 잠깐 밖에 나갔다.아내는 “조심해서 나쁠 것 없지 않느냐”며 걱정했지만, 난 “아이가 집에만 있으면 답답해한다”는 논리를 폈다.집밖에 나서니, 왠지 거리를 한산해보였고, 마스크를 쓴 사람들도 여럿 눈에 띄었다. 괜히 고집을 피운 것 같아, 아이에게 미안했다.


5년 전 신종 플루가 유행했을 때,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때도 ‘설마 나도 걸릴까’라고 생각했다. 메르스에 대한 생각도 같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와 다르다. 그때는 내 행동에 대한 책임을 내가 졌다. 하지만 지금은 내 잘못 탓에 행여 아이가, 내 가족이 대가를 치를 수도 있다. 나 때문에 아이가 아프면 안 될 일이다. 아내는 이미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나는 이제야 그런 생각을 했다. 아빠로서, 참 갈 길이 멀다.


집으로 돌아와 아이를 재운 후, 메르스 관련 뉴스를 찾아봤다. 보건당국의 대처가 허술했다. 지금까지도 보건당국이 최선을 다하고 있고 곧 메르스를 통제 하에 둘 것으로 믿지만, 불안감도 느낀다. 정부가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병원 명단을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이미 병원 명단은 카카오톡 등을 통해 여러 건 받았다. 당국의 우왕좌왕은 한둘이 아니다. 특히, ‘중동여행 시 낙타와 밀접한 접촉을 피하세요’라는 보건당국의 예방법은 불안감을 줄이지 못했다.


아내는 내게 마스크를 건넸다. 얼마 전 황사 대비 마스크를 산 기억이 났다. 아내는 내일 사람 많은 곳을 다닐 때 마스크를 쓰라고 했다. 겉으로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아내는 내 표정을 읽었는지 한 마디를 보탰다.


“아이를 위해서라도 마스크를 써요.” 


아차 싶었다. 


- 2015년 6월 3일 아빠가


브런치가 생기기 전, 티스토리에 썼던 봄이네 육아일기(0~29편)를 이곳 브런치에 옮겨 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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