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아빠와 갓 돌이 지난 아이가 낯선 방에 들어가 함께 놀이를 한다. 곧 아빠가 나오고, 낯선 사람이 방에 들어간다. 이를 본 아이는 자지러지게 울기 시작한다. 다시 아빠가 나타나면 어떨까. 어떤 아이는 아빠 품에 안긴 채 진정한다. 반면, 아빠가 와도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도 있다.
아빠와 자녀의 애착 실험이다. 지난 2013년 6월 EBS <다큐프라임> ‘파더쇼크’편 1부에서 방송됐다.아이를 낳기 전, 아빠가 되기 위한 준비를 했다. 그중에 하나가 육아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찾아보는 것이다. <파더쇼크>를 보면서, 아이와 안정적인 애착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하자고 다짐했다.
지금의 난 어떨까.
다행히 아이와 안정적인 애착 관계를 맺은 것 같다. 토요일마다 아내는 많은 시간을 학교에서 보낸다.나와 아이만 집에 남는다.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이는 엄마를 찾을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반대다.아빠만 바라본다. 내가 시야에서 사라지면, 아이를 울면서 아빠를 찾으러 기기 시작한다.
아이 때문에 외출 준비가 쉽지 않다. 그래도 익숙해지니 괜찮다. 밥을 먹는 것도, 옷을 갈아입는 것도 아이 앞에서 하면 된다. 그런데 딱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배 아플 때다. 화장실 문을 닫을 수 없다. 화장실 문을 닫는 순간, 아이는 말 그대로 젖 먹던 힘까지 짜내 운다. 어쩌랴. 문을 열고 아이가 보는 앞에서 변을 보는 수밖에.
보행기를 탄 아이는 화장실 문턱에서 10분 동안 아빠가 고뇌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뒤처리하는 모습까지…. 뭐가
그리 재밌는지 싱글벙글 웃는다.
네가 아빠를 졸졸 따라다니는 모습을 보면, 흐뭇하단다. 그런데 말이야. 다음부턴 화장실까지 따라오지는 말아줄래?
평일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은 하루 평균 1시간도 안 된다. 오후 6시 ‘칼퇴근’을 한다 해도 7시에나 집에 닿는다. 아이의 취침 시간 8시. 1시간밖에 못 본다. 조금이라도 늦게 퇴근하는 날에는 아이 자는 모습으로 만족해야 한다.
그럼에도 안정적인 애착 관계가 형성된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아이를 목욕시키는 일 때문이 아닌가 싶다. 아이가 자기 전에 내가 퇴근하면, 아이를 씻기는 일은 내 몫이다. 욕조에 물을 받고 장난감을 띄운다. 아이를 욕조에 앉힌다. 손으로, 가제손수건으로 아이 몸 구석구석을 씻긴다. 목욕시킬 때의 스킨십이 아빠와 아이의 살가운 관계의 원동력이 아닌가 싶다.
주말에는 어떻게든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려 하는 것도 안정적인 애착 관계에 도움이 된 것 같다.아이를 낳은 뒤 주말에 개인적인 약속을 잡은 적은 거의 없다. 최근에는 주중에 아이를 돌보는 아내에게 휴식을 줄 겸 해서, 내가 아이를 안고 외출한다. 일요일에도 아이를 데리고 강남의 친구 결혼식에 다녀왔다. 다행히 아이는 보채지 않고 아빠 품에 잘 안겨있었다.
5년 뒤, 10년 뒤에도 부자 사이가 안정적인 애착 관계였으면 좋겠다. 자신 있다. 아이에게 줄 사랑은 끝이 없기 때문이다.
아직 / 유자효
너에게 내 사랑을 함빡 주지 못했으니
너는 아직 내 곁을 떠나서는 안 된다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내 사랑을 너에게 함빡 주는 것이다
보라
새 한 마리, 꽃 한 송이도
그들의 사랑을 함빡 주고 가지 않느냐
이 세상의 모든 생명은
그들의 사랑이 소진됐을 때
재처럼 사그라져 사라지는 것이다
아직은 아니다
너는 내 사랑을 함빡 받지 못했으니
- 유자효 시집 <아직>(시학,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