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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대식 Jan 25. 2016

대통령님, 누리과정 공약 잊으셨나요?

#45

박근혜 대통령 (c) 청와대


대통령님.


안녕하신지요? 혼을 다해 국정 운영에 전념하고 있으신 것으로 압니다. 특히 최근 대통령님이 역점을 기울이고 있는 여러 법안이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해 "걱정으로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한 말씀을 듣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저는 돌쟁이 아들을 둔 아빠입니다. 얼마 전부터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는 계속 울었습니다. 다행히 오늘은 친구들과 잘 놀았다는 얘기를 듣고는, 아이가 얼마나 대견해 보이던지요. 정부가 어린이집 비용을 보조해주는 덕분에 저와 아내는 큰 부담 없이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일을 하고 있습니다.


대통령 말씀처럼, 진실한 사람들이 국민을 위해 일을 한다면 좋은 정책이 많아지겠지요. 저 역시 진실한 사람들이 국민을 위해 일할 기회를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대통령님은 지난달 22일 국무회의에서 어떤 사람이 진실한 사람인지 말씀하셨지요.


옛말에 '들어갈 때 마음과 나올 때 마음이 한결같은 이가 진실된 사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취하고 얻기 위해서 마음을 바꾸지 말고, 일편단심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반대로 들어갈 때 마음과 나올 때 마음이 한결같지 않은 사람이 국민을 위해 일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국정은 삐거덕거릴 겁니다. 안타깝게도 지금 상황이 그렇습니다.


누구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느냐고요? 바로 대통령님입니다.


대통령님, 누리과정을 잘 알고 있으시죠?


누리과정은 이명박 정부 때인 2012년 3월 처음 시행됐습니다. 2011년 5월 김황식 국무총리는 누리과정(당시 만 5세 공통과정)을 도입하면서 "어린이들의 교육과 보육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보다 강화하려는 정부의 시책"이라고 강조했습니다.


2012년 총선과 대선 당시 대통령님은 '누리과정 강화 공약'을 내놓으며 "국가가 보육을 책임지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미 누리과정은 2013년부터 만 3~4세로 확대하기로 한 상황이었습니다.


대통령님의 대선공약집 첫머리에 '국민행복 10대 공약'이 나옵니다. '확실한 국가책임 보육', '만 5세까지 국가 무상보육 및 무상유아교육'이 눈에 들어옵니다. 272쪽을 볼까요? 예산 미반영으로 인한 헛공약 우려 탓인지 '3~5세 누리과정 지원 비용 증액', '국가책임 보육 및 유아교육을 위한 예산의 안정적 확보'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해 대선을 사흘 앞둔 12월 16일, 대통령님은 TV 토론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0세에서 5세 보육은 국가가 책임지도록 하겠습니다.


대통령님은 대선에서 승리했습니다


아이 키우기 좋은 세상이 올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2013년 1월, 대통령님은 전국광역시도지사들과 만난 자리에서 "보육사업과 같은 전국 단위로 이뤄지는 사업은 중앙정부가 책임지는 게 맞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 말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정부는 오히려 누리과정 확대에 따른 막대한 예산 부담을 회피하려고 했습니다. '들어갈 때 마음과 나올 때 마음이 한결같은 이가 진실된 사람'이라는 말씀을 적용하면, 대통령님은 진실한 사람이 아닙니다.


2013년 교육부는 이듬해 예산안을 짜면서, 1조6000억 원의 누리과정 예산을 반영했습니다. 하지만 기획재정부는 이를 모두 삭감했습니다. 안 그래도 부족한 예산 때문에 어려움을 겪던 시도교육청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공약인 누리과정을 시행하느라 더 큰 어려움에 부딪혔습니다.


지난해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습니다. '대선 공약 파기'라는 비판이 커지자, 그해 10월 최경환 경제부총리(기획재정부 장관)와 황우여 사회부총리(교육부 장관)가 나서 '누리과정은 시도교육청의 책임이고, 국고 지원은 없다'고 못 박았습니다. 내년 총선에 나가기 위해 부총리 자리를 던진 두 분에 대해 대통령님은 진실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더군요.


적반하장입니다


정부가 누리과정을 도입·확대하고 생색을 낸 것을 감안하면, 누리과정이 시도교육청의 책임이라는 말은 시도교육청 입장에서는 황당할 노릇입니다. 이런 일은 조금은 복잡한 제도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대통령님께서는 다 보고 받고, 알고 계신 내용이겠지요.


2011년 누리과정 도입 발표 때, 이명박 정부는 예산 부담을 일반 정부 예산이 아닌 지방교육재정교부금에 떠넘겼습니다. 교부금은 정부가 세금을 걷어 시도교육청에 내려보내는 돈으로, 시도교육청 예산의 70%를 차지합니다.

교부금은 법률에 따라 내국세 총액의 20.27%로 정해져 있습니다. 시도교육청 예산이 안 그래도 빠듯한데, 누리과정 예산까지 떠맡으라고 하니 반발이 나올 수밖에 없지요. 정부는 경제가 활성화되면 세금도 더 걷히고 교부금도 많아질 것이라며 밀어붙였습니다.


하지만 정부 말과는 달리 교부금은 뒷걸음질 쳤습니다. 정부는 2015년 전국 시도교육청에 49조4000억 원을 교부금으로 내려보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39조4000억 원에 불과했습니다. 시도교육청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갔습니다.


지금까지는 빚을 내거나 학교 시설 개선 예산을 줄이는 등 시도교육청의 임시방편으로, 보육 대란은 가까스로 피했습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내년 전국 어린이집 누리과정에 필요한 예산은 약 2조1000억 원. 국회는 지난달 본회의에서 누리과정을 우회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예비비 3000억 원을 통과시켰습니다. 이를 고려해도 1조8000억 원이 부족합니다.


보육 대란이 불가피합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수많은 부모는 가슴을 졸이며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처형과 제 친구들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대통령님, 지난 대선 때 한 표를 호소하며 많은 아이 엄마 아빠를 만났을 겁니다. 진실한 사람은 약속을 잊지 않는 법입니다. 그때의 약속을 잊지 않고 보육 대란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주셨으면 합니다. 대통령님이 이를 외면한다면, 진실한 사람이 아니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네요.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아이 아빠의 한 사람으로서 호소 드렸습니다. 이만 글을 줄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글은 한 달 전 제가 <오마이뉴스>에 쓴 글을 수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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