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1
지난 2014년 여름의 일이다. 아내가 아이를 임신한 지 3개월쯤 됐을 때다.
우리 부부의 관심사는 아이의 성별이었다. 딸일까, 아들일까. 나 역시 많은 아빠들처럼 '딸바보'가 되고 싶었다. 아내도 딸을 바랐다. 아내와 함께 산부인과 병원에 가는 길, 장모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얼마 전 꾼 꿈의 해몽에 따르면, 아이가 아들일 거라고 하셨다. 철없는 사위는 "어머님 아니에요. 딸이에요"라고 우겼다.
장모님의 해몽에는 당신의 딸을 위한 마음이 담겼다. 난 장손이다. 내 부모님에게 아이는 첫 손주다. 노골적으로 얘기를 하지 않으셨지만, 부모님은 내심 아들이길 바라셨다. 장모님은 당신의 딸이 아들을 낳아야, 시집살이가 좀 더 수월할 거라고 생각하셨을 것이다. 난 장모님의 마음을 읽지 못한 철없는 사위였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났다. 병원에 갈 때마다 초조했지만, 그날도 의사선생님은 별 말씀이 없었다. '오늘도 안 알려주려는 모양이네.' 의사선생님은 진료를 시작했다. 모니터에 아내 뱃속의 아이 모습이 보였다. 의사선생님은 "아이가 잘 있네요. 이건 고추고..."라고 말했다. 무방비상태에서 큰 충격파를 맞았다. '아, 딸바보가 될 수 없구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내는 거의 울듯한 목소리로 "아이가 아들"이라는 사실을 가족들에게 알렸다. 난 아내를 토닥였다. 아들도 잘 키우면 딸 부럽지 않을 거라고. 아들이 나를 안 닮았다면, 엄마한테 잘할거라고 했다. 나는 사춘기 이후부터 집에서 말을 잘 하지 않았다. 엄마한테 살가운 표현도 잘 못했다. 아이를 낳고 난 뒤에야 엄마가 얼마나 서운하셨을까 깨달았다.
#2
아이가 태어난 지 어느덧 16개월. 아기였을 때는 아들이나 딸이나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 밖에 나가면 "딸이냐"고 묻는 분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확실히 사내아이답다. 참 활동적이다. 아, 이건 너무 순화한 말이다. 경상도 처가에서는 "나댄다"고 하고, 전라도 본가에서는 "참 부잡스럽다"고 한다.
아이는 사고뭉치다. 얼마 전에는 쌀통에서 쌀을 다 꺼내 온 집안에 흩뿌렸다. 마우스를 베란다 밖으로 던져,
산산조각 내기도 했다. 아이는 TV를 쓰러트리려는 시도를 종종 한다. 내가 막지 않았다면, 휴... 책상이나 의자에 어떻게든 낑낑대며 올라간다. 참 많이 넘어지고 부딪혀 울었다. 어제도 침대 프레임에 부딪혀 집이 떠나가라 울었다. 그럴 때마다 우리 부부는 가슴을 쓸어내린다.
사내아이를 키우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도 이제는 아들 없으면 못사는 아들바보가 됐다. 아이는 낯을 조금 가리지만 그것도 잠시다. 금세 잘 웃고 애교를 부린다. 어린이집에서는 귀염둥이로 통한다. 또 신나는 음악이 들리면, 리듬에 몸을 얹고 춤을 춘다. 이 모습에 웃지 않고는 배길 수 없다. 우리 집안의 활력소다. 아이가 없는 세상을 이제는 상상할 수 없다.
매일 밤 어린이집 대화장을 보는 게 낙이다. 그날 하루 아이의 모습을 기록한 선생님의 짧은 글에 울고 웃는다. 특히, 아이에게 호기심과 관찰력이 있다는 말에 기분이 좋았다. 마종하 시인의 시 <딸을 위한 시>처럼 아이가 관찰을 잘 하는 아이로 컸으면 좋겠다는 내 바람이 이뤄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딸을 위한 시 - 마종하
한 시인이 어린 딸에게 말했다.
'착한 사람도, 공부 잘하는 사람도 다 말고
관찰을 잘 하는 사람이 되라고.
겨울 창가의 양파는 어떻게 뿌리를 내리며
사람들은 언제 웃고, 언제 우는지를.
오늘은 학교에 가서
도시락을 안 싸온 아이가 누구인지 살펴서
함께 나누어 먹기도 하라고.'
- 마종하 시인의 시집 <활주로가 있는 밤>(문학동네, 1999)